강원도 울진 출생 지역 자연·문화에 애착
일본문화학원서 추상미술 접해 빠져들어
전업작가 전환 압축조형 추상회화의 절정
강렬한 색채의 잔상 추상 절창 맛보게 해
1970년대 후반부터 투병 속 창작열 빛나
화폭속 채색변화 온기·서정적 회화 도달
지난 봄, 울진에서 시작되어 삼척으로 번진 산불은 10일간의 사투로 마무리됐다. 울진 금강송 군락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산불로 피해를 입은 ‘산'과 ‘산(生)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로 애를 태웠다. 필자는 그 참상을 뉴스로 접하면서 추상적인 산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화가 유영국(1916~2002년)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울진 산불을 보는 그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통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평생 ‘강원도 울진' 태생으로 산 화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우리나라 1세대 모더니스트인 유영국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강원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울진'이 아니라 ‘강원도 울진'이다. 1963년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편입되는 바람에 현재는 행정구역상 강원도 소속이 아니지만 화가는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도 자신을 ‘강원도 울진 출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화가에게 ‘울진'과 ‘강원도'는 일체화돼 있었고, 이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는 4남 4녀 중 여섯째였다. 울진은 그 시절에도 뛰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었지만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교통 불편으로 주변과의 교류가 어려웠다. 울진보통학교를 졸업한 유영국은 1935년 일제의 문화 중심지였던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해 추상미술을 접한다. 그때 당대 전위적 예술운동의 최전방이었던 추상미술의 대가들과 교류하며, 20세기 전반의 전위적인 미술 경향이었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에 깊이 빠져든다. 그 매혹의 강도는 그늘진 외부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즉,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에 일제의 강화된 군국주의 정책과 전위미술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유영국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모색할 정도였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을 흡수하고 표현의 다양성을 궁구하던 그는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수학하며 사진을 통한 조형질서의 신경지를 탐구한다. 한편으로는 점, 선, 면, 형, 색 등의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품어서 자연 추상이라는 강렬한 추상세계를 발효시킨다.
그러나 유영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귀국한다. 그가 향한 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고향인 울진으로 가서 해방 전후 기간과 6·25전쟁 동안 한 가정의 가장이자 어부로, 그리고 양조장 경영인으로 생활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붓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도 틈틈이 작품을 하며,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등의 미술단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승화시킨 ‘산' 추상
48세이던 1964년 그는 돌연 모든 미술단체 활동을 중단하며, 전업작가가 된다. 작업에만 몰두한 만큼 이 시기에 다양한 드로잉과 산을 소재로 한 대형 추상화들을 집중적으로 제작한다. 이것은 그가 ‘잃어버린 시간'이라 형언하는 지난 20년을 만회하는 일처럼 보인다. 대범한 구상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자연을 압축하고 정제하는 대신 에너지의 강도를 극대화시켰다.
1964년 첫 개인전 이후 유영국은 다시 한번 도약한다. 철저하게 계산한 구도와 엄정한 색채 선택으로 마티에르를 두텁게 조성하며 조형세계의 외연을 깊고 넓게 빚는다. 단순한 구도와 강한 색채가 돋보이는 ‘Work'(1969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서서히 ‘산'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환원하고, 선과 면으로 압축 조형함으로써 추상회화의 절정에 도달한다. 특히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삼원색을 기반으로 하되, 군청과 초록, 보라, 검정 등의 다양한 색채 변주로 추임새를 더하며 활기찬 조형언어를 연출한다. ‘날것'의 강렬한 색채를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으면 일어나는 색채의 잔상처럼 유영국의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지속적인 색채의 순간들은, 깊이와 공감각을 동시에 부여해 추상의 절창을 맛보게 한다. 이에 대해 이용우 큐레이터는 “전업작가로서 절제의 삶을 지향하던 작가의 개인적 철학에 내재한 절대적인 것을 향한 욕망, 미적 절정을 향한 집요한 의지와 부단한 조형실험, 추상의 근원과 정수를 탐구하기 위해 조형의 기본 요소들을 끊임없이 고심한 그의 구도자적 삶의 궤적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방탄소년단 RM'이 반한 ‘유영국의 색깔'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지극히 서사적인 자연 추상의 세계를 다양한 화폭에 담아내던 작가는 1970년대에 이르러 조금 다른 경향을 선보인다. 색채를 서로 대비시키기보다 서로 비슷한 색을 써서 면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방탄소년단 RM(김남준)'의 인증사진으로 더 유명해진 ‘Mountain'(1974년)이다. 유영국은 1970년대 후반 심장박동기를 단 채, 삶을 마감한 2002년까지 투병생활을 했다. 투병은 길었지만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뜨거운 불길에 힘입어 도자기가 완성되듯 고통 속에서 작품은 뜨겁고 따스하게 무르익었다. 온기 어린 빛으로 채색된 평화롭고 서정적인 회화들은 유영국 예술이 도달한 ‘조형의 유토피아'였다.
어떤 색을 일컬을 때 자신의 이름이 수식처럼 붙을 수 있다는 건 화가에게 큰 영광이다. 유영국은 그런 영광을 확실히 거머쥔 주인공이다. 빨강과 노랑, 파랑은 물론 초록과 검정색에도 그만의 감각이 투영된 탓에 많은 사람이 ‘유영국의 색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올해 8월 중순까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유영국 20주기전의 제목 역시 ‘Colors of Yoo Youngkuk'(6월9일~8월21)일이다. 이 전시는 유영국의 색채와 기하학적 추상의 실험 및 변형 과정 등 작품세계 전반을 망라하면서 식민시기, 해방 정국, 6·25전쟁, 냉전기, 반공 시기 등 시대적인 상황을 병치해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는 또한 끊임없이 작가적 존재 의미를 되묻고, 유영국이 보여준 새로운 조형적 실천과 창작 방법을 통해 지금 이곳의 예술을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산불이 꺼진 자리마다 싱그러운 산 기운을 포개가며 화가의 말이 싹처럼 움튼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 편집=신현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