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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양구 펀치볼]전쟁의 아픔 오롯이 담고…평화의 생명력 지켜내는 땅

 

 

누가 시래기를 하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래기는 땅 가장 바깥에 서서 무를 키워내고 낡아가며 깊어진다. 세찬 바람과 눈을 맞고 몸에 있는 수분을 보내며 오랜 시간을 나면서도 몸속에 영양분을 축적한다. 이처럼 양구는 비무장지대와 마주하며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을 지켜내면서도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다.

■양구 DMZ펀치볼둘레길, “평화” 되뇌며 16.2㎞=하얗게 피어난 별 같은 감자밭을 따라 난 구불구불한 농로를 지나가면 금세 산길이 나온다. 이곳이 본격적인 ‘DMZ펀치볼둘레길'의 시작이다. 둘레길은 총 4코스로 이뤄져 있는데, 모두 미확인 지뢰지대가 있어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뒤 숲길등산지도사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상징성이 가장 강한 코스는 먼멧재길이다. 지뢰지대임을 알리는 빨간 역삼각형 경고판과 군데군데 놓여 있는 군사시설이 분단의 현실을 다시 한번 알려준다. 산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랐을까. 양구 해안면과 인제 서화면을 가르는 경계가 등장한다. 전쟁 이후 철책으로 덮이고 불편한 교통 오지로 전락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산을 가로질러 이웃 마을로 향하던 길이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그 시절 주민들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사이, 급격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펀치볼 분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먼멧재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맑은 날 오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올라 왼쪽을 보면 저 멀리서는 금강산이 보이고, 뒤로 돌면 설악산이 보이는 드문 경관이다. 여기서 실향민들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북녘의 피붙이를 그리며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그리움의 높이가 먼멧재봉 907m보다 높이 쌓여있으리라. 어느 코스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코스의 백미인 ‘숲밥'이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시래기며 각종 나물로 차려주는 ‘진수성찬'인데, 단돈 만원에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진정한 자연밥상을 누릴 수 있다. 메뉴는 매일 바뀌지만 시래기, 파프리카잎, 돼지감자잎, 직접 담근 장아찌와 젓갈 등으로 차린 반찬은 ‘정성의 맛'이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20인 이상 예약자가 차면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반드시 맛보기를 권장한다.

■아름다워 슬픈 두타연=바위 사이를 흐르는 차디찬 계곡물과 울창한 숲이 너무 아름다워서 반대로 마음 시리게 아픈 곳이다. 양구 방산면 금강산가는길 안내소에 들러 서약서를 작성하면 위치추적목걸이를 준다. 목걸이를 걸고 군부대 초소를 지나 지뢰가 있어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을 마주하면 자못 진지하게 된다.

이어 주차장에 내리면 푸르른 자연이 반긴다. 숨통이 좀 트이나 싶었는데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면 다시 마음이 가라앉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뒤가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단장(창자가 끊어진다)의 능선', 그 앞이 피로 물들었다는 ‘피의 능선'이란다. 전쟁으로 폐허였던 곳은 울창한 원시림이 됐다. 지뢰 때문에 사람의 손·발길이 닿지 않아 오히려 더 아름답게 자란 숲. 쓰러진 나무가 많지만 들어가 치울 수 없다는 푸른 숲은 전쟁의 날카로운 상처다. 숲길을 걷다 위령비 앞에서 묵념하고, 전쟁의 아픔을 표현한 조각들도 만날 수 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열심인 산양들도 인사해준다. 이렇게 삶과 죽음이 아름답고 슬프게 교차하는 길을 따라가면 두타연이 기다리고 있다. 휴전선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고 흘러 한반도 모양을 만들어 내다가 폭포가 되고 다시 연못이 되는 곳. 휴전 후 50여년간 통제되다가 개방된 두타연을 만나는 것을 반갑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 단장의 능선 위로 투구를 쓴 병사 형상을 한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두타연에서 금강산까지는 32㎞.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그 모습이 먹먹하기만 하다.

■명품 ‘시래기' 길러낸 양구의 힘=‘명품'으로 불리는 양구 시래기는 고산지대에 일교차가 극심한, 펀치볼의 혹독한 지형이 빚어내는 맛이다. 낮에는 따뜻한 해를 받아 영양소를 생산하고, 밤에는 추운 날씨 탓에 영양소를 소비하지 못한 채 간직하기 때문이다. 펀치볼 덕장에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며 부드러워지고 향도 그윽해진다.

양구 시래기는 시장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지만, 기왕이면 시래기 맛집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양구 주민들 사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시래기 맛집' 중 하나가 시래정이다. 감자와 으깨 먹는 솥밥의 시래기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시래기 조림은 첫입엔 질긴 듯 하지만, 어느 순간 사르르 녹아 목 뒤로 넘어가는 식감이 묘하다. 고기를 얹은 상추 쌈에 시래기 쌈장은 이 식사의 화룡점정. 시래기의 다양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색다른 ‘블랙푸드' 오골계=양구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음식이 있다. 바로 오골계 숯불구이다. 보통 오골계하면 백숙을 떠올리게 되는데, 숯불구이라니 외지인이 보기엔 색다른 조합이다. 양구군 웅진리의 한 가정집에서 오골계 살을 발라 양념을 묻혀 구워 먹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팔아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시작으로 양구, 인제, 화천 등 주변 지역으로까지 퍼졌다고. 그중에서도 석장골 숯불구이는 가장 먼저 정통 비법을 이어받은 제2의 원조집으로 불린다. 식감은 일반 닭보다 단단하지만 질기지 않고, 특히 껍질은 바싹 구워 먹으면 뽀드득뽀드득 고소한 맛이 제일이다. 숯불구이를 먹다 보면 탕이 나온다. 살을 발라낸 오골계 뼈와 감자 등을 넣은 탕은 한번 들이키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군인·어린이가 대만족하는 맛집도=얼핏 보기에 ‘호불호'가 강한 식당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군인과 어린이들이 크게 반기는 맛집도 곳곳에 가득하다. 중국집 ‘풍미식당'은 볶음밥 재료와 밥알 하나하나에 얇게 코팅된 기름이 60년 내공을 가늠케 한다. 돼지고기와 오징어가 들어간 짬뽕은 기름기가 적어 깔끔하면서도 얼큰해 자꾸 국물을 들이키게 된다. 카페를 찾는다면 지역에서 드물게 직접 베이커리류를 구워 내는 카페 ‘배꼽제빵소'도 있다. 고소한 맛의 소금빵과 담백하고 달콤한 ‘피칸 엘리게이터'를 추천한다.

이현정·김현아·박서화기자 / 사진=신세희기자 / 편집=강동휘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