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 즉 한몸, 한마음이라 했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가정의 달 5월 21일을 '둘이 하나 되는 날'이라며 '부부의 날'로 정해 기념도 한다. 옛 유교에서는 부위부강(夫爲婦綱) 즉 남편은 아내의 벼리(뼈대)라 했으니, 아내도 남편의 벼리였으리다. 그래선지 독립투쟁사에는 독립운동의 가시밭길을 동행한 부부가 즐비하다. 한국인 남편을 둔 외국인 여성도 부창부수(夫唱婦隨)로 함께했고, 나라는 서훈으로 보답했다. 또 부부 인연처럼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와 피를 나눈 자식, 자매(姉妹)와 남매(男妹) 역시 혈연(血緣)을 고리로 독립운동에 나선 일도 숱했다. 그러다보니 집안 식구 모두 독립투쟁의 운명을 감수하고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독립의 염원이 공통분모인 이들 운명공동체의 삶은 고난과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들 삶의 온전한 추적과 자료 파악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만 국가보훈처 공훈록 등을 통해 그들 행적의 일부나마 살펴본다. ◆남편과 아내 가시밭길 동행 국가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외국 여성으로 한국인 남편과 독립운동을 펼친 경우,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애국장)와 경북 문경 출신의 박열(대통령장) 부부가 있다. 중국 여성 가운데는 김성숙(독립장)의 부인
『삼국유사』에는 신라 원효스님이 중국 당나라 암호를 풀어 김유신 장군의 병사들 목숨을 구한 이야기가 전한다. 김유신이 고구려 출병 당군(唐軍)과 만날 일로 연락한 결과, 소정방은 종이에 송아지(독·犢)와 새끼 봉황새(란·鸞)의 그림을 보냈다. 김유신이 그림의 뜻을 몰라 원효스님께 묻자 '서둘러 철수하라'는 뜻이라며 철병(撤兵)을 권했다. 신라군은 앞다퉈 강을 건너 고구려군의 추격을 피해 큰 화를 면했다. 난독(鸞犢)의 암호 사연이 얽힌 김유신과 태종 김춘추, 원효스님은 서로 혼인의 인연을 맺은 사이로 통일과정에서 함께 돕고 보살폈다. 원효스님은 그림을 보고 화독화란(畵犢畵鸞)의 출처가 떠올라 '화독'과 '화란'을 반절음으로 해석해 보니 '혹환' 즉 '속환'(速還)의 뜻임을 깨닫고 서둘러 철수하라고 독력해 김유신 병사를 구했다. 송아지와 난새는 어미와 떨어져 사는 동물인 만큼 원효스님의 해석은 그럴 듯했다. 암호(暗號)는 전쟁터처럼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도 널리 쓰였다. 특히 한글 자모(子母)를 이용한 암호가 많았고, 감옥 안에서 벽(壁)을 두드려 정보를 퍼뜨리는 '벽치기전보' 등 기발한 통신법도 등장했다. 신라 설총이 이두로, 조선 세종이 한글로 백성의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