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사통팔달 뚫린 교통망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도시다. 지역이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의 이중고 속에서 시름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원주는 강원 남부 지역으로 통하는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권과 직접 통하는 교통의 요지다. 출신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그 사람들을 품어낸 도시. 시장 역시 그런 원주의 포용력과생활력을 닮았다. # 원주김치만두=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지역의 정체성을 가장 둥글게 드러내는 음식이 있다. 바로 만두다. 이곳에서 파는 ‘원주식' 만두는 원주 사람들, 더 나아가 강원 영서지방 사람들의 생활력과 끈기가 느껴지는 맛이다.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군사물자를 받아 만두피를 만들고, 한국인들의 ‘소울푸드'인 김치를 넣어 속을 든든하게 채운 ‘사연 있는' 만두다. 1970년 개업한 ‘원주김치만두'의 메뉴판에 남은 ‘칼국수'와 ‘칼만두'는 그 흔적이기도 하다. 원주사람들의 재치와 생활력이 느껴지는 또 하나의 메뉴는 튀김만두다. 만두를 튀겨서 먹는 식문화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김치가 들어간 큼지막한 만둣국용 만두를 튀겨 판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젓갈보다 소금과 양념으로 깔끔한 맛을 배
길을 잃어도 괜찮아 길이 나오겠거니 무작정 걷다가는 아차차, 막다른 길을 마주하기 일쑤 잃으면 잃는 대로 보석 같은 가게들 만나 40년 된 양복점부터 신생 공방까지… 헤매는 게 이렇게 정겨운 일이었던가 북적이는 장터 한가운데 무지개 빛깔 계단이 있었다. 그곳을 한 발, 두 발 걸어 올라가면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시장이 하나 더 등장한다. 오래된 철학관부터 새로 생긴 공방까지, 가게마다 시나브로 시선이 닿는다. 길을 잘 찾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당황스러웠다. ‘미로(迷路)'. 대체 어디로 가야 목적지가 있는 걸까. 길이 나오겠거니 생각하고 무작정 걷다가는 막다른 길을 마주하기 일쑤. 내가 방금 지나온 골목이 어딘지도 잘 모르겠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헨젤과 그레텔처럼 빵조각이라도 남겨야 하나? 하지만 미로예술시장 안에서만큼은 길을 잃어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길을 잃으면 잃는 대로 개성 넘치는, 보석 같은 가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로예술시장은 특이하게도 원주 중앙시장 2층에 있다. 중앙시장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모인 3개 시장 중 하나다. 예로부터 강원도의 관문이자 거
도내 첫 문학 전문공간인 제주문학관이 개관 이후 첫 입주작가 모집을 시작으로 올해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제주문학관 창작공간에서 작품 활동을 할 작가를 개관 이후 처음으로 모집한다고 13일 밝혔다. 올해 입주작가는 5기로 나눠 기별로 8명씩 총 50명을 모집한다. 입주작가 활동 기간은 ▲1기 3월 2일~4월 30일 ▲2기 5월 3일~6월 30일 ▲3기 7월 2일~8월 30일 ▲5기 11월 1일~12월 30일이다. 창작 공간은 제주문학관 3층에 마련됐고 2인 1실에 유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단 개인 노트북은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창작공간 사용료는 전액 무료다. 입주작가는 기성작가와 예비 작가 모두 가능하며 시(시조), 소설, 수필, 평론, 희곡, 아동문학 등 장르에 제한이 없다. 접수는 오는 17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제주문학관 홈페이지(www.jeju.go.kr/liter)를 통해 가능하다. 지난해 10월 23일 제주시 도남동(연북로)에 문을 연 제주문학관은 총 사업비 97억원이 투입돼 지상 4층 규모로 조성됐다. 주요 시설로는 전시실, 수장고, 대강당, 세미나실, 북카페 등을 갖췄다. 제주 근대문학의 태동부터 현대문학에 이
예술은 감성을 통해 불특정 이성에 대항할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술을 통해 차오르는 기대와 감흥, 희망을 얻으며 세상의 이치를 순탄하게 순종시키려는 의지를 담는다. 누구나 감성에 의해 마음은 좌우된다. 때론 흥겨운 음악을 들으며 기세를 높이기도 하며 감미로운 선율로 자신을 위로받기도 한다. 조물주는 태초에 세상 모든 만물을 같게 짓지 않았다. 고로 인간은 같음을 노력하지만, 이해의 인식 부족과 성찰의 미흡으로 많은 실망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래서 세상 누구나 한 번쯤은 감정에 상처받고 아파하며 의지와 다르게 마음 한편 날카로운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방법으로 인간은 예술을 선택하였고 그러한 예술을 통해 느끼며 함께 공유했다. 예술의 경험은 아픔에 충분한 해답으로 다가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나오지 못한 감성은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글귀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포용적인 음의 길이를 나타냄도 아니며 창법의 기교를 멋지게 구성하고자 하는 표현도 아니지만, 거부감을 동반한 국문학적 보편성과 융통성의 회유가 실마리를 쥔 고민의 잣대로 다가서기
미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림 그리기와 흙장난 등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 장르다. 이처럼 가까운 장르임에도 일률적인 교육 과정으로 감상법에 대한 학습과 견학 등이 이뤄지지 않아 미술을 멀게 느끼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미술을 우리의 삶 속으로 초대하기 위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준비돼 있다. 지난해 8월 개관한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는 내달 28일까지 대전신세계 6층 신세계갤러리와 아트테라스 일원에서 'ART 대전: 나의 첫 번째 아트 컬렉션'을 선보인다. 국내외 124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500 여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를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참여작가와 출품작의 규모도 클 뿐 아니라 국내외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거장과 미술시장의 블루칩으로 평가받는 작가들이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화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를 비롯해, 특유의 인물 연작을 선보이는 알렉스 카츠(Alex Katz, 1927-), 걸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줄리안 오피(Julian Opie, 1958-)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 19 확산으로 공연은 취소되거나 연기되기 일쑤였고, 이러한 위기를 타계하고자 공연계에서는 온라인 생중계를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스킹’(busking)만은 예외였다. 버스킹은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광주 지역 버스킹 커뮤니티이자 플랫폼인 ‘광주버스킹’은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지역 곳곳에서 악기, 작은 마이크, 휴대용 앰프 등을 들고 다니며 거리 곳곳에서 음악으로 관객과 꾸준히 소통했다. 최장백씨가 2015년 만든 ‘광주버스킹’에는 현재 버스커 34명이 참여하고 있다. 최 씨를 중심으로 박성태·박경범 씨가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는데, 처음 결성 당시에는 참여자가 100명이 넘었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19가 덮친 후 대부분이 생계 등 여러가지 이유로 떠났고, 남은 멤버들만이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20대부터 40대, 대학생부터, 취업준비생, 간호사, 교사, 공무원, 택배기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또, 가요는 기본이고 팝을 비롯해 마술, 피아노·기타·색소폰 연주 등 선보이는 장르도 다채롭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최 씨는 “음악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대학에
특유의 파격적이고도 유쾌한 예술세계를 구축한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그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 등이 올 한 해 펼쳐진다. 그야말로 '백남준의 해'이자 '축제의 장'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대체 불가능한 백남준'을 보여주기 위해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기획을 준비했다. 기술을 통해 현실 세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예술과 인간, 세상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낙관적이었던 그의 세계관을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다. 1977년 백남준이 마흔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선언한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라는 경계를 허물고 올해 1년을 풍성하게 채울 백남준아트센터의 선언이기도 하다. # '다정한 기술, 백남준답게'…올해의 전시는 백남준은 아방가르드에 대한 관심이 본래 자신의 성격에 새겨진 것임을 깨닫고, 이것이 예술로 이끄는 근원적 이유였음을 고백한 바 있다. 2022년의 첫 번째 전시인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는 백남준의 당당하고 끝없는 도전의 모습을 시간의 역순으로 보여주는 전시이다. 백남준아트센터 '대체 불가' 기획 준비 '삼원소'부터 시간 역순으로 작품 조명 2000년 구겐하임 회고전에 출품된 작품 '삼원소'를 시작으로 1997년
예로부터 산삼은 하늘이 내린 영약이라고 전해진다. 이에 함양군은 지난 2003년 산양삼을 지역특화 임산물로 정하고 민족의 영약 ‘삼(蔘)’의 문화를 전승하기 위한 항노화 작물인 산양삼을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지리산과 덕유산 등 1000m 이상 고산이 15개나 달하고 전체 면적 724㎢ 중 78%가 산인 함양지역은 전국 최대 게르마늄 지대로 산양삼이 자라는 데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산양삼에는 암세포 전이 억제, 항암효과, 생체기능 항상성 유지하려는 항노화 효과 등이 뛰어난 ‘유기 게르마늄’과 ‘컴파운드 K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함양군은 산양삼 재배사업을 시행할 당시 300만원을 투자하면 3년 후부터 5년생 산양삼 뿌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인 36명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임야의 잡나무를 제거하고 산을 개간해 군에서 보급한 2년산 산양삼 20만 포기를 시작으로 오늘날 산간 오지가 산양삼 메카로 성장했다. 지난 2015년 중소벤처기업부는 함양을 ‘지리산 산양삼 산업특구’로 지정됐으며, 2019년 최초 함양산양삼 지리적 표시등록을 신청해 2년에 걸쳐 철저한 서류 심사와 현장 검증 등을 통해 최종 임산물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됨으로 함양산양삼의 브랜
강원일보 창간 77주년 취재사진 현장 속으로 1970년대 집배원의 애환 인스턴트(Instant) 시대다. 바쁘고 또 빠르게 사는 삶에 제대로 적응해야 무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올랐다고 하고, 자연스레 초(超)연결 시대를 이야기하곤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조금 익숙해지나 싶었더니 메타버스(Metaverse) 세상이 도래했다고 시끌벅적하다. 모든 것이 느긋하게 돌아가던 시절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과 제도를 겨우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지경이지만 이미 빠른 속도와 변화, 혁신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그대로 일상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조금은 느리게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 안부를 묻기 위해 DM이나 톡을 보내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이메일의 존재 조차 모르던 그때. 우리는 직접 쓴 손편지로, 또 엽서로 누군가에게 소식을 알리고, 마음을 전했다. 그 시절 편지는 항상 기다림과 등치관계였다. 편지를 쓰고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배달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다시 답장으로 돌아오기까지 글쓴이는 초조하게 ‘받은 이'의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제주올레 16코스 시작점인 고내포구를 벗어나면 잠시 오르막 끝에 애월 해안도로변 시원한 언덕에 이른다. 서쪽 절벽 아래로 방금까지 지나온 해안선과 쪽빛 바다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다락쉼터’라는 표지석이 서 있고 여러 석상들과 정자와 벤치 등이 잘 배치된 공간이다. 다락쉼터 초입에 가지런히 놓인 벤치들 옆에는 ‘애월읍경은 항몽멸호의 땅'이란 문구가 적힌 대형 비석이 서 있다. 이곳 애월 지역이 ‘몽골에 맞서고 오랑캐를 없앤 땅’이란 뜻이겠고, 양쪽에 소박한 자태지만 호위무사인 듯 서 있는 두 명의 장군 석상이 이 비문을 뒷받침해준다. 비석 왼쪽은 ‘항파두리’ 안내석과 함께 김통정 장군의 석상이고, 오른쪽으론 ‘새별오름’ 안내석과 함께 최영 장군의 석상이다. 이곳에서 10㎞ 떨어진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애월 하면 떠오르는 역사적 명소이기에, ‘몽골에 맞서’ 싸웠던 삼별초의 수장 김통정 장군이 왜 여기 서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연결이 된다. 그러나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새별오름’ 안내석과 함께 이곳에 서 있을 이유에 대해선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다.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고 몽골과 결사항전을 준비했던 삼별초와 김통정 장군이 바다 건너 들이닥친 여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