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출신 한국화가 안용선(47·사진)은 그림 그리는 철학자다. 아니 철학하는 한국화가라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까지 한국화를 전공한 후, 박사과정에서는 동양철학을 선택한 것도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 심오함도 한 몫하고 있다.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谷-姿(곡-자)’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부터다. 대자연, 그 중에서도 계곡을 자신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재해석해 풀어내는 이 시리즈를 통해 그의 독특한 화법은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상대적인 개념’을 자신의 작품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방법론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러던 그는 돌연 작품의 주제를 ‘천음(天音)’으로 변경한다. 안 작가의 표현대로 풀이하면 천음은 ‘자연의 천연적인 예술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정의하자면 상대성의 합일(合一)을 통해 터득한 회화적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용선 작업의 서사 속에서 단절이 아닌 연속성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곡-자’와 ‘천음’은 표현양식과 의미상의 차이가 다소 있어보이지만 사실 지향하고 있는 곳은 같다고 볼 수
"애들아, 같이 교육 받으면서 친해지진 못 했지만 어느 정도 너희들의 성격은 파악하고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 앞으로 밖에 나가서는 더 이상 사고 치지 말고 내가 보고 싶다고 일부러 사고 쳐서 들어오지 마."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고 전북대 예술대학의 청소년 아트 세러피를 수강한 한 학생의 말이다. 법정에서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청소년들이 예술과 만났다. 처벌 대신 미술 체험을 통해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 치유 프로그램 '청소년 아트 세러피 J.AT' 2기 과정 전시회 '나는 비행 청소년이다'가 오는 9일까지 전북대 컨벤션센터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 과정은 전북대 예술대학이 전체 총괄했다. 지난해 9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10명의 학생이 집단예술치유 프로그램을 받았다.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 판단을 위해 자신의 범죄를 되짚어 보게 하고 자기성찰에 이르게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진행했다. 전시장 곳곳에는 청소년들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의 아픈 상처에 직면하고 자기성찰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 작품들이다.
새해를 맞아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에 있는 화랑 2곳에서 열리는 전시가 눈길을 끈다. 도든아트하우스는 개관 3주년을 기념해 새해 첫날부터 이달 말일까지 '2023 신년초대전'을 개최한다. 강형덕·고정곤·김종열·김채원·신재연·신정순·신찬식·양윤·엄영예·오성만·유태수·이세우·이용애·이환범·임원빈·정혜승·조희경·황은자 등 18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도든아트하우스 개관 3주년 신년초대전 강형덕 등 18명 작가 폭넓은 개성 표현 개관 3주년을 맞는 동안 도든아트하우스가 미술 문화 매개 공간으로써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작가들을 초대한 전시다. 도든아트하우스는 2020년 1월 개항장 골목에 문을 열고 미술의 심미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발현하는 다양한 기획과 실천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려 노력하고 있는 하우스갤러리다. 미술 감상에 소외된 계층을 관람객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경력이 단절된 작가를 발굴해 전시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창구 도든아트하우스 대표는 "이번 2023 신년 초대전은 다양한 연령층과 표현 장르로 폭넓은 작가군을 이루며 저마다의 창작열과 개성 있는 작품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아트 갤러리 '송년 감사 선물전' 열려 유미정 초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야 할까? 이런 생각쯤은 옛 어른들이라면 다들 해봤을 거라고 Hey가 알려줬다. Hey는 가정용 인공지능로봇이다.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도와주었다. 설거지나 분리수거 말고도 갓난쟁이부터 백 세 노인의 돌봄까지. 단순한 서류정리뿐만 아니라 복잡한 서류를 직접 꾸려내기까지. Hey는 나날이 똑똑해졌다. 그래서 현재 2100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인간 선생님보다 ‘헤이로봇’이 더 똑똑하니까. “Hey,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다면 몇 학년이야?” “순이님은 3학년입니다.” “그래? 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을까?” “네, 순이님은 인싸니까요.” “인싸?” 이럴 수가! 인싸라니! 외할머니가 또 언어 설정을 바꿔 놨나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학교에 다녔던 외할머니, 김희율. 나는 희율이란 이름도 인싸나 아싸란 말도 전부 촌스러웠다. 하지만 내 이름 ‘순이’가 외할머니의 할머니뻘쯤 되는 시대에서 흔했던 이름인 걸 알았을 때에는 기분이 많이 이상했다. 아무튼 나는 Hey의 언어 설정을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친구모드로 바꿨다. 딱딱했던 Hey는 곧바로 해맑게 웃으며 친근하게 팔짱을 꼈다. “순이야, 우리 떡볶이 먹
남자의 두꺼운 손이 소년의 머리를 치던 날, 쇠기둥에 이마가 깊게 패었다. 핏물이 눈물처럼 소년의 얼굴로 흘러내렸다. 피를 닦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저쪽 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믿을 수 있었다. 소년은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낯선 곳에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밤새 멈출 것 같지 않았던, 어둠을 뚫고 쏟아지던 눈은 이제 흰 빛으로만 남았다. 이마를 덮은 젖은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바람은 남동쪽에서 불어온다. 지금 그가 가려는 곳, 그는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본다. 어둡고 거대한 산에 가려진 미지의 공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숲의 냄새가 폐로 스며온다. 발목까지 쌓인 눈이 달빛에 드러난다. 바람은 쉬지 않고 틈새를 파고든다. 주머니 속에서 뻣뻣하게 얼어가는 양손을 빼내 천천히 비벼 본다. 감각이 사라진 손끝에 통증이 밀려온다. 그는 하얗게 눈이 덮인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서 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들이 꺾이며 눈 속으로 파묻힌다. 도착할 때만 해도 검게 드러나던 아스팔트 길은 눈에 덮여 사라졌다. 나무들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내들이 초조하게 몸을 뒤척인다. 사내들이 움직이면
“나는 그림 그리고 색을 만드는 것이 좋아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레인보우에요. 알록달록 색들을 나만의 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에요. 내가 만든 색은 참 아름다워요. 나도 참 아름다워요” 2016년생 리틀 아티스트 조유빈 작가 초대전 ‘Color is Beautiful’이 지난 24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이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블랙, 블루, 옐로우, 핑크 등 색상의 아름다움을 조 작가의 시선으로 나타낸 작품 47점이 선보이고 있다. 조 작가는 “제주도에서 보는 바다색, 예쁜 노을, 주렁주렁 달린 귤, 목장을 달리는 말, 모든 자연은 내가 만든 색으로 더욱 근사해진다”며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술사”라고 말한다. 1월 3일 열리는 오프닝 리셉션에서 조 작가의 드로잉 퍼포먼스가 준비됐다. 작품 판매 수익금 일부는 제주백혈병소아암협회로 전달할 계획이다.
2023년 계묘년의 수호동물, 토끼 2023년 계묘년의 주인공은 토끼다. 토끼는 십이지 띠동물 가운데 넷째로 을묘(乙卯) 정묘(丁卯) ․ 기묘(己卯) ․ 신묘(辛卯) ․ 계묘(癸卯)의 순으로 육십갑자가 순환한다. 십이지의 토끼[卯]는 방향으로는 정동(正東), 시간적으로는 오전 5시에서 7시, 즉 해가 떠오르는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시간신과 방위신이다 토끼는 장수의 상징(an emblem of longevity)이며, 달의 정령(the vital essence of the Moon)이다. 조그맣고 귀여운 생김새, 놀란 듯이 쫑긋 세운 양쪽 귀를 가져 연약하고 선한 동물로 보이지만, 토끼는 영특하고 슬기로운 꾀보, 꾀쟁이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그리며, 토끼처럼 천년만년 평화롭게 풍요로운 세계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이상세계(理想世界)를 꿈꾸어 왔다. 달의 정령이자 장수의 상징, 토끼 토끼는 달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토끼는 달 속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고 있다. 계수나무는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목(不死木)이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2023년에도 K콘텐츠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한국 영화·드라마는 해외 시상식을 휩쓸 정도로 세계적인 ‘주류 문화’로 떠올랐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 확대로 K콘텐츠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영상 도시’를 외치는 부산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한국은 세계 콘텐츠 기업 격전지가 됐고, 전국 지자체는 ‘콘텐츠 도시’를 표방하며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부산에는 성장을 이끌 매력이 많지만, 변화 없이 ‘장밋빛 미래’만 기대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직은’ 영화·영상 도시 부산은 전통적으로 매력적인 촬영지로 꼽힌다. 푸른 바다와 수려한 산, 새로운 도시와 구도심까지 다양한 배경을 두루 담을 수 있다. 부산영상위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영상물은 총 1754편이다. K콘텐츠 세계화와 OTT 콘텐츠 확대로 실질적인 촬영 빈도도 높다. 부산영상위는 2022년에만 영화·영상물 138편을 부산에서 촬영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는 역대 최다 편수인 142편을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1년(60편)과 비교하면 배 이상 많은 수치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흙바닥 파닥대던 녀석 귀한 대접 '가문의 영광' 다시 태어나다 태생은 '흙'… 맛을 알면 재벌집 막내아들급 대우 토하(土蝦)는 말그대로 흙새우다. 1급수의 청정 민물에서 다 자라봐야 3㎝ 정도인 갈색의 이 새우는 주로 젓을 담가 먹는다. 우선 토하를 잘게 다진 후 천일염으로 염장한다. 숙성과정을 거친 뒤 고춧가루·마늘·생강 등 갖은 양념에 찹쌀죽을 넣으면 비로소 토하젓이 완성된다. 토하젓은 예로부터 고급 식재료였다. 남도한정식에도 종지그릇에 작은 티스푼 한 숟가락 정도가 놓인다. 밥 위에 올려 쓱 비벼 입에 넣으면 오돌토돌 씹히는 민물새우의 달콤·고소함과 양념의 짭짜름한 맛이 입안에서 섞이며 탄식이 나올 정도다. 농약 단 한방울만 들어가도 살아남지 못해 첩첩산중 산골 서식지 필수 요건중의 하나 숙성 거쳐 양념으로 무친 '젓' 고급 식재료 남도 한정식도 종지에 티스푼 정도만 놓여 은은하게 올라오는 특유의 흙냄새 '포인트' 전남에서는 특히 강진 토하의 명성이 자자하다. 강진은 동·서·북 삼면이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둘러싸여 비교적 높고, 남서쪽에는 강진만이 있다. 탐진강과 그 지류인 금강, 이외에도 동남류하는 강진천과 도암천, 서남류하는 칠량천과 대구천
"태어나 지금까지 아버지의 이름은 나의 수식어였다. 아버지의 삶이 내 생에 고스란히 포개졌으나 그 운명이 억울한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아버지는 내 세계를 밝혀준 수원(水源)이었고 내 삶을 형성한 존재였다."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맏딸 조호정(1928~2022) 여사는 인천시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가 30일 발간한 조 여사의 기록집 '바위에 새긴 눈물, 삶으로 피어나다' 서문에서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조호정 여사는 죽산 선생의 맏딸이자 정치 동지로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겪었다. 조 여사는 생전 기록과 구술을 정리한 이번 책이 나오기 두 달 전인 지난 10월26일 새벽 작고했다. 인천시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가 이번에 펴낸 책은 조 여사 기록집과 함께 이택선 서울대 정치외교학 박사가 쓴 '죽산 조봉암 평전: 자유인의 길', 죽산의 생애를 만화로 재구성한 '강화 소년 조봉암 대한민국을 세우다' 등 3권이다. '바위에 새긴 눈물, 삶으로 피어나다'는 조봉암 선생이 독립운동을 펼쳤던 상하이에서의 기억, 귀국 이후 인천에서의 학창 시절, 한국전쟁 중 국회부의장이던 아버지의 비서 활동, 진보당 사건 이후 사법살인을 당한 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