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광주일보) 등 토닥이고 손 잡아주는 따뜻한 부처미소, 무각사 석불 전시

석불조각가 오채현…1년간 석불·호랑이 등 50점 눈길

 

도심 속 사찰 무각사(주지 청학스님)엔 가을이 한창이다. 붉게 물든 단풍과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어우러진 절집엔 신자 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느끼려는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지금 무각사에서는 석불조각가 오채현(58) 작가의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내년 10월말까지 1년간 진행되는 대장정으로 작가는 25t트럭 6대로 파주 작업실에서 작품을 싣고 왔다. ‘돌에 새긴 희망의 염화미소’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기획전은 인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친근한 부처님을 만나, 그 미소에 위안을 받는 전시다. 아름다운 경내 곳곳과 로터스갤러리 1층에선 모두 50여점이 전시중이다.
 

경주 출신으로 경북대를 거쳐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한 오 작가는 거친 화강석으로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해낸다. 바티칸한국대사관에 설치된 한복 입은 성모상을 제작했고 월정사 ‘Happy Buddha’전 등을 통해 한국 불교미술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무각사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 속 부처님은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경외심보다는 친근함과 따뜻함이 먼저 느껴지고 온화한 미소를 접하면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소설가 윤후명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돌에 피가 돌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수더분한 자세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석불과 석탑을 접한 이들은 삶의 편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동전을 이곳저곳에 올려두었다.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대형 사방불(四方佛)이다. 말 그대로 동서남북 사면에 부처가 조각된 작품은 높이 3.5m, 무게는 18t에 이르는 대작이다. 고향 경주 남산의 25t 원석을 다듬어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돌 속에 어떤 부처님이 들어있을까, 바라보기만한 3년 세월이었다. 절집의 석불을 보면, 사람들이 수없이 만져 맨질맨질해진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오 작가는 아예 ‘사방불’에 사람의 손바닥을 조각하는 특별한 시도를 했다. 사람들은 그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어본다.

“불교 미술이라는 게 진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줘야하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적으로 감각적이고 자유롭게 작업하려합니다. 제 작품은 부처님을 향한 염원을 쉽고 친근하게 표현하는 게 특징이예요. 그래서 미소 짓는 표정이 많고 편안함과 천진함이 주가 되죠. 교리를 표현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부처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21세기 사람들은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두 지쳐 있어요. 우리를 토닥여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부처가 우리 시대가 원하는 부처의 모습이라 생각해요. 전시작들에는 코로나 극복의 의지도 담았습니다.”

 

 

대웅전 바로 앞에 세워진 대형 미륵불 역시 높이 5m, 무게는 16t에 이르는 대작이다. 머리에 갓을 쓴 부처상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납작한 코와 가식 없이 부처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벌거벗은 동자승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한국적 정서가 담긴 소재를 우리 땅에서 나는 화강석’으로 표현해 온 오 작가는 호랑이도 즐겨 조각한다. 무각사 경내서 만나는 ‘해피 타이거’는 투박한 재질미를 그대로 살려 조각한 해학적이고 재미난 표정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로터스갤러리에서 만나는 작품도 흥미롭다. 영월 창령사터에서 출토된 오백나한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양복입은 사내 등 꾸밈없고 익살스런 나한상 5점과 함께 화강석판석에 연꽃, 동자, 구름, 현대인의 모습 등을 담은 부조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토함산 자락에서 태어난 오 작가는 천마총, 분황사 인근에 살며 자연스레 불교와 친숙해졌고, 이는 불교미술 작가의 삶으로 이어졌다. 31살 되던 해 서양 조각의 근본인 그리스·로마의 조각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까라라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던 그는 4~5살 어린이가 그린 그림 같은 원시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현지에서 대형박물관보다는 공원, 벤치, 화장실 등에서 ‘발견’한 그림을 수없이 스케치했고, 그 천진난함은 그의 작업의 근간이 됐다.

그는 화강석 조각엔 왕도가 없다고 했다.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돌에 ‘달라붙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천 수만번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작품이 막힐 때면 다락에 숨겨 둔 꿀단지를 꺼내듯 운주사를 찾는다고도 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어느 범주에도 들지 않는 운주사의 석불은 그에게 영감을 준다.

느긋한 산책, 경내와 갤러리서 석불과의 만남, 조용한 북카페에서 커피 한잔까지 어우러지면 ‘행복한 절집 가을여행’의 완성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