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스며든 피난민들 아픈 세월의 흔적들 담겨 … 초입에 자리잡은 대폿집 소시민 고단한 하루 달래 12월이 눈앞이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들이치는 바람의 감촉이 며칠 전 그것과는 사뭇 그 느낌 자체가 다르다. 혹시 '웃풍'에 대해서 아시는지. 젊은 세대들은 무슨 바람(?)을 얘기하나 하겠지만 40여년 전 그때 그 시절 제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도 천장이나 벽 사이를 타고 들어오는 찬 기운, '웃풍'은 있었다. 그 기세가 겨울철 방 안, 그릇에 담긴 물이 꽝꽝 얼어버릴 정도라면 상상할 수 있겠는가. 방은 쩔쩔 끓고, 윗 공기는 한없이 냉랭하니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웃풍'이었다. 변변한 단열재 하나 없던 시절, 어찌 보면 우리들 삶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웃풍은 심하지 않나요?”는 새롭게 살 집을 찾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럼 꼭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요즘 웃풍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여긴 그나마 괜찮아요.” 그래도 살 집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지 못한 이가 많았던 1970년대에는 말이다. 등 붙이고 편
유배 풀려나 두차례 춘천 찾아 석금강이라 불린 '삼악산' 유람 유유자적 배 띄우던 '신연강' 댐에 막혀 인공호 '의암호'로 금강산이라 찬사한 '문암'은 찻길에 잘리며 옛 모습 잃어 오래전부터 많은 시인, 묵객은 춘주(春州·현 춘천)를 방문해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다. 그중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년)은 두차례나 북한강 물길을 타고 올라 춘천을 찾았다. 공교롭게 정약용 집안과의 혼맥(婚脈)이 춘천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조카, 다른 한번은 손자의 며느리를 맞이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춘천과는 꽤나 깊은 인연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춘천이 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詩) 수십 수를 남겼다. 200년 전 그의 발자취를 쫓아가 본다. 그가 춘천의 초입에서 본 '금강(金剛)'의 자태는 지금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구분하는 콘크리트 결계(結界)만이 산 옆구리를 타고 죽 늘어서 있을 뿐이다. ■다산 돌로 이뤄진 '금강'을 조우하다 석금강(石金剛)은 춘천의 '삼악산(三岳山)'을 이르는 별칭이다. 춘천을 소개한 인문지리지 '수춘지(壽春誌·1953년)'는 삼악산에 대해 '모두 돌산으로서 웅장하면서 아주 험준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잠업(蠶業·누에를 치는 사업)을 국가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884년 '잠상(蠶桑·누에와 뽕나무)공사'를 설치하고 선진 잠상기술을 보급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중국에서 잠상기술자를 초빙하고 새로운 품종의 뽕나무와 누에를 수입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이후 6·25전쟁 상황에도 누에씨를 생산해 보급할 정도로 정부는 그 중요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1960~1970년대에 들어서도 '양잠사업'을 장려하고 육성해 농가 소득을 늘리고 국가경제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던 것은 전쟁 이후 1차 산업에 의존하던 우리의 산업구조와도 연관 있어 보인다. 당시 육 여사 축사 후 직접 누에치기 시범 보여 기념 식수 후 소양강댐 향해 물고기 방류행사도 잠업에 대한 국가적 기대감 상당했다는 방증 서거 이후인 제4회 대회부터는 규모 축소돼 사진은 1974년 5월28일 춘성군 신북면 산천리 오동국민학교(현 춘천시 신북읍 오동초교)에서 개최된 '새마을 양잠 시범대회' 모습이다. 1972년 경기도 가평군을 시작으로 이듬해 충북 청원군 잠엄기술연수원에서 열린 대회에 이은 세 번째 행사다. 서슬 퍼
영동고속도로 개통 강원인의 삶을 가장 많이 바꿔 놓은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1975년 10월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을 들 수 있다. 산들로 가로막혀 보이지도 않던 강원도가 온전히 외부에 드러날 수 있는 최초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남긴 '상봉집(三峰集)'에는 강원도 북부와 함경도를 잇는 철령고개를 지나면서 남긴 그의 시(詩) '철령(鐵嶺)'이 실려 있다. 그는 철령고개를 지나면서 높고 험한 산세를 두고 '칼날' 같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모습에 대해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해천동망정망망(海天東望正茫茫). “동쪽 하늘과 바다는 아득하다”는 뜻이다. 동해~서울 3시간30분 획기적 단축 '강원도=오지' 등식 바뀌기 시작해 경제·사회·교육 균형발전 전기 마련 철령은 서울의 북쪽 관문이었고, 이곳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강원도를 '관동'이라고 불렀는데 선인들이 생각하는 강원도에 대한 거리감은 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득'한 곳,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 강원도에도 철길이 놓이기는 했지만, '강원도=오지'라는 등식을 조금이라도 바꿔 놓은 데는 영동고속도로의 공(功)이 거의 절대적이다. 영동고속도로는 4년여에 걸쳐 완성됐다. 197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