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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바다 품은 ‘카페 건축’ 경연장…스타 건축가도 속속 ‘참전’

[부산 새 문화벨트가 뜬다]
(하) HOT-플레이스 ‘기장 해안길’

 

 

 

 

 

 

 

 

 

그곳에 가고 싶다. 해변의 운치가 남다른 곳. 바다에 접한 수많은 바위가 만들어 내는 절경, 탁 트인 바다, 여기에 아름다운 카페와 달콤한 커피향까지. 살랑거리는 바람에 가슴까지 시원하다. CF 광고가 아니다. 해변의 운치가 남다른 곳, 오감(五感)이 살아 숨 쉬는 곳, 바로 부산 기장 해안길이다.

 

부산 기장 해안길은 이제 부산에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다. 과거에는 관광객들이 짬짬이 찾을 정도의 포구였고 해변이었지만, 근래 개성 강한 카페 건축물들이 앞다퉈 들어서면서 부산의 핫 플레이스(Hot Place)가 됐다. 일찍부터 영화, 드라마, CF 등 각종 미디어 촬영 장소가 된 것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보고 카페를 직접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임랑해수욕장에서 동부산 해변까지 펼쳐지는 20km 안팎의 해안길은 온통 카페 천지다. 흔히 ‘갈맷길 1코스’로 불리는 지점이다. 이곳 해안길 인근에 2010년 이후 기장군청에 영업 신고를 한 카페만 해도 무려 88곳에 이른다. 기장 해안길을 따라 걷거나 드라이브 하다 보면 줄지어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이들 카페다.

 

임랑~동부산 해변 20㎞ 해안길

탁 트인 바다·해변의 여유로움

해안 카페 수십 곳 관광객 발길

지역·서울 건축가 설계 건물 각축

상업성 집착 절경 사유화 비판도

“지역색 묻어난 공간 많아져야”


 

 

 

■지렛대도 있고, 촉매제도 있고

 

기장 해안길에 카페 건축 붐을 일으킨 데는 카페 ‘로쏘’(Rosso·기장군 죽성리)와 ‘웨이브온’(Wave On·기장군 월내리)의 역할이 컸다. 먼저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엘 올리브(부산 수영구 망미동) 등 맛집 디자인으로 유명한 PDM 파트너스(대표 고성호)에서 설계·디자인한 로쏘였다. 2013년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손님을 모으자, 해안길을 따라 소위 ‘예쁜 건물’을 지향하는 카페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장 해안길을 따라 다방 스타일의 커피숍이 많았다.

 

근래 로쏘 인근에는 경기도 마인드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카페 ‘메르데쿠르’(Merdecour·기장군 죽성리)가 성업 중이다. 하지만, 로쏘는 여전히 해안선을 따라 낮은 채로 펼쳐진 건물, ‘3채 같은 1채’라는 독특한 공간이 기암괴석의 바다 풍경과 어우러져 절제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촉매제 역할은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주택을 설계한 서울의 곽희수(이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가 웨이브온을 설계, 수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면서부터다. 웨이브온은 2016년 12월 문을 열었다.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덩어리 두 개를 엇갈려 올려놓은 게 흡사 거대한 맷돌처럼 보이는 이 카페는 해암(海巖)과 절벽, 그리고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건물의 아름다움에 한 번, 바다 풍경에 또 한 번 취한다. 어쩌면 커피 향은 덤이다. 취재에 동행했던 건축사사무소 아체 ANP 강기표 건축가는 “밖에서는 마치 2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3층에, 360도에 가깝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구조. 바다의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도록 한 게 이 건물의 포인트다”고 설명했다. 이런 건물의 독특함이 사람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여기에 2018년 한국 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본상도 받았다. 건축주 허장수(67) 씨는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3000명, 연간 90만 명이 찾았고, 이중 해외관광객이 40%를 차지했을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 가이드북’을 발간하면서 국내 건축물 56곳을 소개했는데, 웨이브온은 누리마루, 영화의전당과 함께 부산지역 아름다운 건축물로 선정됐다. 이렇다 보니 국내외서 찾아오는 관광객은 물론, 건축 학도나 건축가에게도 꼭 한 번은 들리는 곳이 됐다. 디자인이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공간이 사람을 불러 모았다.

 

 

■카페 건축 “이곳으로 오라”

 

카페 웨이브온은 기장 해안길 카페 건축의 불을 댕겼다. 기장 해안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카페는 이미 전국 유명 건축가들의 경쟁의 장이 됐을 정도다. 지역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건축가는 물론이고, 서울의 유명 건축가에다 최근에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 건축가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2018년 문을 연 ‘투썸플레이스’(기장군 삼성리)는 근래 가장 핫한 지역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오신욱(라움건축) 건축가가 뛰어들었다. 카페는 새 날개 모양의 두 개 덩어리를 살짝 엇갈리게 얹힌 구조로 일광 해수욕장 모래사장 곡선을 건물이 자연스럽게 휘감아 도는 형상이다. 이는 효율적인 바다 조망을 끌어냈다. 2층 외부 테라스와 건물 루프탑은 바람 소리, 파도 소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연출한다. 2018부산다운건축 금상을 수상했다.

 

아직 가오픈 상태지만, ‘메이크 시 커피’(Make Sea Coffee·기장군 문동리)도 ‘기장 해안 카페 건축’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로재’ 출신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안용대(가가건축) 건축가가 설계한 이 카페는 지난해 11월 말 오픈 하우스 때 이 건물을 보기 위해 90여 명이 찾았을 정도다. 장식성을 배제한 4층 구조의 이 건물은 1, 2층은 어촌 마을, 3, 4층은 마을 뒤 도로길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옆 주택과 8m 차이가 나는 지대를 3, 4층 건물을 뒤로 살짝 물리는 설계로 극복해 냈다. 마을 주민들이 카페를 통해 도로로 갈 수 있게 배려 했다. 소통의 건축이 느껴진다.

 

웨이브온 곽희수 건축가에 이어 지난해 11월부터는 전국구 스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카페 ‘로와 맨션’(Lowa Mansion·기장군 학리) 도 성업 중이다. 학리 바닷가 해암(海巖) 절경을 바라보며 ‘숲카페’(기장군 학리, 제하건축 이승도 건축사) 인근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3개 동이 중정을 안은 구조로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기장 해안길을 따라 이어지는 카페 중 상당수는 기암괴석과 함께 바다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카페는 바다를 지나치게 에워싸거나 속박하지 않는다. 어쩌면 관람자의 시선에서 바다를 조망하는 모양새다. 이곳에 온 관광객은 먼저 아름다운 카페 건축에 한 번, 이국적인 해변 풍광에 또 한 번 취하게 된다. 커피의 맛과 향은 여기선 덤이다.

 

 

■해변의 변신? 유죄! 무죄!

 

카페 건축이 만들어 낸 해변의 변신은 눈부시다. 깨끗하게 단장돼 있거나 새롭게 조성된 길에는 어김없이 카페들이 보인다. 기장 해안길은 이미 카페 건축의 화려함을 뽐내는 장이면서 카페 건축의 성지가 돼가고 있다. 카페 건축을 보려면 이제 기장 해안길을 꼭 가봐야 할 정도가 됐다.

 

분명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는 있다. 카페 웨이브온이 그것을 증명한다. 안용대 건축가는 “바다에 가까이 살아도 정작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해변 카페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선 순환적이다”고 설명했다. 팍팍한 도시 삶의 탈출구랄까. 고객으로선 공간도 즐기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하지만 명(明)이 있다면 암(暗)도 있는 법. 공적인 측면에선 아쉬운 점도 있다.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 절경이 카페의 앞마당처럼 돼 버렸다는 점이다. 해안을 따라 5~6개 카페가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이어져 있어, 그 공간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바다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수고로움도 더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너무 많은 카페가 들어서다 보니 없어지는 카페도 있고, 경쟁에서 밀려나 문을 닫는 곳도 생긴다. 또 주택을 리모델링해 카페로 운영했던 ‘연화당’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휴업 중인 카페도 보인다. ‘과함’이 버거움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도 여기에 카페가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 강기표 건축가는 “드라이브하는 맛에 탁 트인 바다와 제주도 같은 느낌의 공간, 여기에 해변이 주는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이곳으로 카페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안용대 건축가는 “건축가 입장에선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주택 건축을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발돋움했듯이, 카페 건축을 통해 건축적인 자기 언어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세계적인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에 카페 건축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카페 건축이 시대적 흐름으로 건축가들 사이에 비즈니스 모델이 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기면 문제는 없을까? 자연경관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경관을 잘 활용하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웨이브온에서 만난 한유진(34·서울 서초구) 씨는 “웨이브온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커피도 마시고 건물도 보려고 왔다. 와서 보니 앞이 탁 트여 너무 좋다. 카페가 자연(소나무)과 바다 경관을 너무나 잘 활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건축은 대부분 온라인상에서 보는 것으로 끝났지만, 카페 건축은 직접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선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도 지나치게 카페 건축만이 성업해 건축이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또 마을 주민의 입장에선 커뮤니티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땅값 상승도 불가피하다. 모든 지역이 그렇지는 않지만, 10년 전만 해도 평당 100만 원 하던 곳이 이제는 2000만 원을 호가하는 곳도 생겼다.

 

동명대에서 실내건축설계와 공간분석을 가르치고 있는 이승헌 교수는 “공간을 보는 대중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상업적 요소에 너무 집착해 비슷비슷한 공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역색이 더 묻어나면서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가 향후 관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금 기장 해안길엔 동전의 양면처럼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