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기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공신들의 충성 맹세를 담은 조선 최대 규모 문서인 ‘이십공신회맹축’이 국보로 승격됐다. 총 길이 24m에 달하는 이 문서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고려시대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정리한 ‘고려사’ 6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고대와 조선 관련 중요 문헌들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상황에서 이번 ‘고려사’ 보물 지정은 고려의 역사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 사료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19세기 중반 전주서 간행한 ‘홍길동전’ 원간본(초간본) 2종이 처음으로 발굴돼 눈길을 끈다.
문화재청은 조선 숙종 때 공신들의 충성 맹세 서약이 담긴 왕실문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고려의 문물과 제도 등 풍부한 자료가 수록된 ‘고려사’를 보물로 지정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번에 국보로 승격된 ‘이십공신회맹축’은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회맹제(會盟祭)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제작됐다. 회맹제는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칭한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공신(功臣) 중 개국공신부터 보사공신(保社功臣·지위가 복훈된 공신)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충성을 맹세했다. 회맹제가 거행된 시기와 회맹축을 조성한 시기가 다른 것은 당시 정치적 변동 때문이었다.
문화재청은 “서인과 남인의 정쟁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며 “공예품의 백미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해 국보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고려사’는 역사·학술·서지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에 따랐다.
현존 판본 중 가장 오래된 을해자 금속활자본과 목판 완질본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해자 2건, 목판본 2건) 소장본을 비롯해, 연세대 도서관(목판본 1건), 동아대 석당박물관(목판본 1건) 등 3개 소장처에 보관된 총 6건이다.
문화재청은 “비록 조선 초기에 편찬됐지만 고려시대 원사료를 수록해 사실관계 객관성과 신뢰성이 뛰어나다는 점과 해당 판본들이 지금까지 전해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자 목판 번각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이밖에 19세기 중반 전체 내용이 갖춰진 완판 ‘홍길동전’의 원간본(초간본) 2종이 최초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전주의 대표 방각본 출판사인 완서(完西)와 완산(完山) 두 곳에서 간행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춘동 강원대 국문과 교수는 인천과 강릉에 거주하는 개인들이 완판 ‘홍길동전’ 원간본 36장본과 35장본을 각자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완판본은 전주에서 간행된 책을 말한다. 홍길동전은 서울에서 인쇄된 경판본 외에 안성판본, 완판본, 필사본 등 네 종류가 있다.
조선후기 소설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목판으로 인쇄한 ‘방각본 소설’이 출현했는데, 서울과 안성 그리고 전주처럼 경제활동이 활발한 곳에서 간행됐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