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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연못이 가장 아름다운 절 수선사

산골 평온한 연못 정원 같은 사찰
연못 돌아나오는 나무다리 매력
다리 밟으며 한 바퀴 돌면 무념무상
신발벗는 화장실 유명, 소박해도 마음 달래주는 공간

세상에 이런 절이 있었나 싶었다. 사찰이라기보다는 조용한 산골의 평온한 연못 정원 같았다. 종교시설이 마음을 다스리는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이야말로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연못이 가장 아름다운 경남 산청 수선사 이야기다.

 

 

 

■절 앞의 아름다운 연못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IC에서 내려 산청군청 앞을 지난다. 내리교를 지나 응석봉로 154번길을 따라 달린다.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펜션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2~3분만 올라가면 목적지인 수선사 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장 앞에 아주 기다란 창이 달린 갈색 건물이 보인다. 도대체 절 입구에 세워진 특이한 저 건물은 무엇일까.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할 수밖에 없다. 건물 입구 쪽으로 돌아가면 대답이 나온다. 여기는 놀랍게도 화장실이다. 절은 물론 전국 모든 유원지를 통틀어도 가장 이색적이고 깨끗한 화장실이 아닐 수 없다. 거의 특급호텔 수준의 화장실이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화장실을 지나자마자 감동적인 풍경이 먼 길을 달려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절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의 연못이 푸른 숲과 파란 하늘을 가득 담고 있다. 이색적인 풍경에 놀란 나그네를 보고 숲과 하늘은 빙긋 웃으며 다소곳이 손을 내민다.

 

연못에는 나무로만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간 것인지 닳고 닳아 하얗게 색이 바랜 목조 다리다. 많은 사람이 다리 위를 걸어 연못을 둘러보고 있다. 다리는 연못 한가운데를 둥글게 돌아 나온다. 둥근 부분에는 너와집처럼 나무로 지붕을 씌워놓았다. 잠시 앉아 쉬었다 가라고 벤치도 설치해 두었다.

 

다리를 밟으면서 연못을 한 바퀴 돌면 모든 고민을 다 잊게 만드는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들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에 다리를 건너면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다리 위로 올라가 걸어본다.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수많은 연못을 둘러봤고 많은 나무다리를 건너봤지만 이곳의 연못다리 같은 곳은 구경한 기억이 없다. 이곳이 왜 SNS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이유를 알 만하다.

 

연못 한쪽에는 연이 자라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연잎과 연꽃이 연못을 가득 메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다소곳하다는 인상을 주는 봄의 풍경과 판이하게 다를 듯하다.

 


 

■잔디 마당의 작은 사찰

 

연못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수선사가 나타난다. 입구에 나무로 만든 갈색 건물이 보인다. 벽은 온통 하얀 글씨로 도배돼 있다. 전국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소망을 적어둔 것이다. 단순히 다녀갔다는 내용에서부터 시험 합격, 가족 건강 등을 기원하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연못만큼이나 수선사도 참 독특한 사찰이다. 너른 절 마당은 푸른 잔디로 깔려 있다. 대부분 사찰 마당이 흙이나 자잘한 자갈로 덮여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풍경이다. 마당 한쪽 구석에는 구부정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작은 연못이 조성돼 있다. 마당 가운데에는 석탑이, 그 인근에는 작은 마애불이 서 있다.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은 아담하다. 넓고 푸른 잔디 마당의 풍경을 방해하지 않고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사찰 건물은 핵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포인트’에 불과한 인상이다.

 

극락보전 뒤에는 삼성각이 보인다. 마당 쪽에서 보면 극락보전에 완전히 가려져 있다. 뒤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걸 모를 정도다.

 

극락보전과 삼성각 외에 눈에 띄는 다른 건물은 없다. 마당 한쪽 구석에 스님 숙소와 종무소가 조용하게 다소곳이 서있는 게 전부일 뿐이다.

 

수선사를 창건한 분은 여경 스님이다. 1993년 문을 열었다니 아직 30년도 안 된 젊은 사찰이다. 여경 스님이 동생의 도움으로 논을 사서 작은 건물을 지은 게 사찰의 시작이었다. 논에서 나온 돌과 뒷산의 물을 활용해 만든 게 연못과 정원이었다. 절이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13년 산청한방엑스포 때였다.

 


 

절 맞은편, 연못 위에 제법 아담한 카페가 있다. ‘커피와 꽃자리’라는 이름도 예쁘다. 연못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코로나19 상황인데도 카페에는 적지 않은 손님이 앉아 있다.

 

따뜻한 대추차 한 잔과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아주 평범한 팥빙수에 얹은 콩가루가 매우 고소하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실제 재료가 좋아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빙수를 먹은 뒤 음미하는 대추차는 몸을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바깥쪽 연못을 향해 놓인 의자에 앉아 연못을 내려다본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귓가를 간질이고, 봄이라는 걸 알리려는 듯 팔랑팔랑 나비 한 마리가 카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연못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평온하다.



 

 

 

큰돈을 들여 화려하게 꾸민 곳은 아니지만, 나무다리와 연등 외에 다른 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이보다 아름답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장소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 한 분이 커다란 바위에 앉아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다리를 느긋하게 건너고 있다. 연못 위의 다리 같은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일까.

 

산골 작은 사찰의 봄날은 정지화면 같은 두 어르신의 느린 동작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