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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잃어버린 도시의 활력 되찾기 '분투하는 사람들'

"도시재생은 방법 아니라 방향… 누구도 마을밖으로 쫓겨나지 않는 게 핵심"

 

 

부천 원미┃턱없이 짧은 사업기간 마을관리협동조합 결성으로 돌파구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구현"
인천 용현2동┃'비룡공감 2080' 주민 의견 충분히 사업 반영에 공들여… "합의 이루는 과정에 집중"
부평 11번가사업┃미군 정화조부지 '혁신센터'-굴포천 '생태하천' 환골탈태 "자긍심 회복 초점"

 

 

 

도시재생이 법률상 용어로 등장한 시점은 2013년 12월이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법)이 제정되면서 도시재생은 법률에 근거한 정의를 갖게 됐다.

도시재생으로 통칭할 수 있는 국가 주도 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노무현 참여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마을)만들기, 이명박 실용정부의 도시활력 증진 지역개발사업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 선도·일반사업은 2015년,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2018년 들어 본격화했다. 그렇게 따져보면, 도시재생은 성패를 섣불리 예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주거복지의 실현과 도시경쟁력 강화,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4대 목표다. 잃어버린 도시의 활력을 되찾는 도시재생의 길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경기도와 인천시 도시재생의 속살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 5년짜리 도시재생은 없다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 원미(遠美).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 장소는 원미동 23통 5반이다. 23통은 실제 존재하는 행정구역은 아니지만, 원미1·2동 곳곳에 소시민들의 팍팍한 삶을 느낄 수 있다.

부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부흥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1978년 지어진 원미동의 2층짜리 연립주택을 맞닥뜨리게 된다. 낡은 연립주택 1층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기둥만 남기고 외벽을 허물어 약초, 야채를 파는 시장 점포로 활용되고 있었다.

원미는 소설이 그린 1980년대 중후반에 멈춰있었다. 주민들은 '심곡천으로 다시 쓰는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경기도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사업비 도비 50억원, 시비 50억원)에 공모해 소설의 배경이라는 상징성을 내세워 대상지로 선정됐다.

 

 

문제는 5년에 불과한 사업 기간이다. 2018년 첫발을 뗀 원미동 사람들의 도시재생은 올해 4년 차를 맞았다. 내년까지 시한인 도시재생 사업이 끝나면, 이후 주민들은 자력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남긴 공간을 운영해야 한다.

긴 호흡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주민 의견 수렴만 수년을 거치는 일본과 영국의 도시재생에 비해 턱없이 짧은 사업 기간이다.

사업이 끝나더라도 도시재생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마을관리협동조합 결성이다.

박혜성 원미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도시재생 사업이 남긴 공간을 어떻게 해야 주민들이 잘 운영할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며 "올해 최대의 관심과 최고로 집중해야 할 과제는 마을관리협동조합 결성"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원미마을이 본래 공동체성이 짙은 동네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지역공동체 활동은 마을관리협동조합 결성에 좋은 기반이 된다.

신상현 주민상인협의체 위원장은 7년 전부터 원미지역에서 마을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과 강사 양성 공모사업도 도맡아 해온 마을 활동가다.

그는 "마을관리협동조합을 도시재생 지역 안에 사는 주민과 상인, 부천시의 사회적 경제 조직이 기획 운영을 함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원미에는 도시재생 사업을 기반으로 경기도 예비마을기업에 선정된 지역 공동체 3곳(행복한한땀, 마을손, 미오떼)도 활동하고 있다. 행복한한땀은 원미·심곡동에 거주하는 40~50대 여성 5명이 섬유공예 생필품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마을기업이자 협동조합이다.

행복한한땀 이사장 김선희(54) 섬유공예작가는 "나이 대가 비슷한 여성들이 모이는 동네 수다방 역할을 하면서 장기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도 있으니 우리가 바로 주민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 아니냐"고 말했다.

# 방법이 아닌 방향이다

도시재생 사업은 기획부터 의사 결정까지 모든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한다. 참여 자격에도 제한이 없다. 소위 건물주든, 세입자든 마을 살리기에 관심 있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토지 등 소유자'인 주민만 참여 가능한 재개발 사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도시재생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주민들이 참여하는 만큼 원하는 사업도 천차만별이다. 신속한 사업을 추진하고자 특정 주민들의 요구를 임의로 배제하긴 어렵다.

주민 주도로 이뤄지는 도시재생 사업 특성상 다양한 의견을 수용한 뒤,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재생 사업이 민주성은 담보하고 있으나, 효율적이진 않다는 평가를 받는 원인이 된다.

인천시는 미추홀구 용현2동에서 '비룡공감 2080'이라는 이름의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 현장지원센터는 지난해 주민 1천명을 대상으로 '주민 여가 활동 조사'를 진행했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문화 공간과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도시재생 사업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조사 결과, 주민 10명 중 4명은 생활권 내 공공 여가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체육·공원·문화 시설 등을 이용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욕구도 파악됐다. → 그래프 참조

 

 

이처럼 센터는 설문조사 외에도 정기적인 간담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이 사업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주와 세입자, 주민과 상인 등 참여자에 따라 관심 정도와 요구 사항이 다른 탓이다. 그럼에도 센터 측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그 과정에서 도시재생 사업의 의미를 찾고 있다.

 

 

정혜영 센터장은 "도시재생은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라며 "주민들이 의견을 내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사업의 여파로 그 누구도 마을 밖으로 쫓겨나가지 않도록 고민하는 게 도시재생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도시재생 사업의 방향은 사업지마다 다르게 설정된다.

인천시 부평구 '부평 11번가' 도시재생 사업은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접근이 어려웠던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주민이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 조성해 개방한다. 도심의 외형적인 변화가 큰 만큼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과거 부평 미군기지(캠프 마켓) 오수정화조 부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화조 부지 인근 주민들은 이곳이 "미군의 뒷간이었다"는 자조적인 표현을 지금까지 쓴다고 한다.

 

 

 

도시재생 사업은 이런 역사를 간직한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상가, 공영주차장 등이 밀집한 혁신센터를 건립한다. 또한, 산업화 여파로 복개돼 칙칙함을 자아내던 굴포천 1.5㎞ 구간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생태 하천으로 만든다. 서울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은 '청계천'과 같은 공간이 부평구에도 곧 조성되는 것이다.

조유미 부평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미군 오수정화조 부지나 굴포천처럼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지역의 자산을 주민들이 바라는 공간으로 조성함으로써 고장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도시재생 사업의 끝은 정주의식을 가진 주민들이 스스로 도시를 가꾸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김대현차장, 배재흥, 손성배기자
사진 :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김동철차장, 장주석기자
그래픽 : 박성현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