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중국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 영리병원 개설에 따른 논란이 재 점화됐다.
영리병원은 기업이나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운영하며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국내 의료법은 의사나 정부, 지자체, 의료법인 등에서만 비영리로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8년 12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한다는 조건부 개설로 영리병원을 허가해줬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과로 한정했고,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아서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들은 우리나라가 미국식 의료 영리화로 가는 길을 터줘 의료비 폭등과 돈이 없는 환자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등 공공의료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반발했다.
보건의료단체들 또한 외국 영리병원 설립 시 환자 안전을 위해 규제해온 줄기세포 및 유전자 치료도 매우 비싼 돈을 받고 환자한테 시행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해왔다.
양영수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도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영리병원은 환자의 건강과 치료에 앞서 수익창출을 목적에 두고 있다. 의료기관이 ‘돈벌이’에 나설 경우 코로나19로 공공의료 강화가 더욱 요구되는 시점에 가난한 환자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제주에서 영리병원이 개설돼 본격 운영될 경우 인천과 부산 등 다른 지방에서도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외국 영리병원 규제를 대폭 완화, 치열한 경쟁에 예상된다.
아울러 의료관광을 추진하는 지자체마다 영리병원 개설 여부에 대해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해 녹지그룹 한국지사 관계자는 “본사와 최고 결정권자가 중국에 있어서 2심 승소에 따른 병원 개설 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대법원 상고를 통해 최종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녹지병원 개설 문제는 2006년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에서 중국계 의료기관 설립이 추진되면서 의료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의견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며 지역사회에 큰 논란이 됐다.
2018년 12월 조건부 허가로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내 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당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향후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허가 취지 및 목적 위반 시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하겠다.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고려해 도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성명을 내고 “영리병원 개설 허가는 국내 공공의료체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의료영리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인 환자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본연의 설립 목적을 벗어나 국내 의료체계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그 책임은 개원을 허가한 제주도와 이를 방관한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녹지그룹은 2017년 8월 778억원을 투자해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 내 지상 3층·지하 1층 건축 연면적(1만8223㎡)에 47개 병상과 4개 진료과목을 갖춘 병원 건물을 신축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