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천연기념물 458호 전나무 군락지 내금강 상징… 1,000살 넘은 나무 장관 이뤄
2.5㎞ 산책로 지나면 표훈사 … 전쟁의 피해 전혀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간직
932년 ‘강원도 금강'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이성계 발원문을 발견했다. 백자 대발 4점과 향로 1점, 은제 도금 탑형사리기, 은제 8각 원당형감, 청동완, 은제 귀이개 등이다.
사리 외함으로 사용된 백자 대발 굽 주위에 ‘방산사기장 심의(方山沙器匠 沈意)'라는 글이 적혀 있다. 새로운 나라 발원을 꿈꾼 이성계 발원사리구는 양구에서 고려 말부터 방산사기장에 의해 만들어져 사용됐음을 알리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은 강원도 흙과 강원도 사람, 그리고 강원도 자연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나라였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 금강산의 자연은 조선의 내로라하는 선비, 시인, 화사들을 불러들였다. 교과서에 실려 전 국민에게 알려진 여행기 정철의 ‘관동별곡'을 비롯해 그림으로는 표암 강세황의 ‘풍악장유첩',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단원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복헌 김응환의 ‘해악전도첩', 임전 조정규의 ‘해악팔경도' 등은 금강산의 자연이 조선의 대표적인 경치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북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 통천군 일대에 있는 금강산은 크게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특히 남측 강원도에서 내금강 가는 길은 분단 전에는 다른 길에 비해 더 수월했다. 철원에서 금강산 전기철도를 타고 가거나 화천-양구 육로를 통해 가면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과거 춘천고보(현 춘천고) 학생들이 농성을 벌일 장소를 금강산으로 선정했을 정도였으니 춘천에서도 쉽게 접근했고 심리적으로도 가깝게 느꼈던 모양이다.
내금강의 수려한 계곡과 전나무 군락지(북측 천연기념물 458호)는 내금강의 상징물이다. 온정령 106굽이를 돌아 만물상, 장안사 터를 지나 표훈사까지 가는 길가에 전나무들이 마중 나와 있다. 북측 안내원은 표훈사로 올라가는 중간에 만난 아름드리 전나무는 나이가 1,000살이 넘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 주듯 나무 안은 텅 비었고 하늘을 향해 줄기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금강군 백천골은 하천부지에 생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장안사 터, 그리고 표훈사 주차장까지 이어진다. 부도와 주춧돌만이 절터임을 말할 뿐 70여동의 건물이 있었던 장안사 터엔 야생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 전쟁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던 표훈사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지켜 온 전나무 숲은 아름드리나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침엽수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향이 머릿속을 상쾌하게 휘돌아 감는다. 청량감을 주는 이 길은 2.5㎞가량 되며 표훈사까지 이어진다. 전나무 숲길은 남측 집 앞에 갖다 놓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난다.
하늘 높이 올라간 기둥을 따라 눈길을 보낸다. 까마득하게 솟아 있었다. 두 사람이 팔 벌려 안을 정도의 크기다. 비어 있는 나무 안쪽은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 공간이다. 1,000년의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소원을 받아주다 보니 속이 썩었을까? 빈 공간이 안쓰럽게 보인다.
남 강원도에도 명품 전나무 숲길이 있다. 평창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길로 주말이면 숲을 찾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과거 시멘트 길을 걷어내고 흙길로 단장돼 걷는 맛이 담백해졌다. 남과 북에서 갖고 있는 전나무 숲길은 모두 명품 반열에 들어가는 길이다. 남과 북의 전나무 숲은 남북강원도의 자랑이다. 하나 된 강원도에서 두 개의 전나무 숲길을 하루 코스로 걷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글·사진=김남덕 사진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