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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솨솨~ 대숲 사이로 가을이 내려앉는다

 

 

가을을 만나러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갔다. 2019년 7월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태화강 국가정원은 1호 순천만과 달리 울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태화강변을 따라서 있다. 햇볕이 느긋해지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리는 이맘때는 국화축제의 인파가 몰리기 전에 너른 정원 곳곳을 여유있게 탐색하기 좋을 때다.

 

2019년 대한민국 2호 국가정원 지정

쭉쭉 뻗은 대나무 50만 그루 십리대숲

온몸으로 느끼는 피톤치드 ‘초록 샤워’

밤엔 점점의 LED조명 은하수 내려앉은 듯

강변 빙 둘러서 있는 대나무 가벽 장관

삼호대숲선 소박하고 호젓한 낭만산책

 

63종 대나무 아기자기 ‘생태원’ 품 안에

24종 2만 4000여 그루 무궁화 정원도

 

 

 

 

 

■십리대숲의 낮과 밤

 

태화강 국가정원은 83만 5000여 ㎡, 축구장 117개를 넘는 면적이다. 처음 방문한다면 어디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원의 지도를 보면 태화강을 사이에 두고 크게 위쪽의 태화지구(중구)와 아래쪽의 삼호지구(남구)로 나뉜다. 태화지구 면적이 좀 더 넓은데, 대표 전경 사진에서 보이는 둥그런 반원형 정원이 이 곳이다. 십리대숲과 대부분의 테마정원이 여기 속한다. 강을 건너는 도보 다리는 은하수다리와 십리대밭교를 기억하면 된다. 은하수다리를 경계로 강 아래 서쪽의 길쭉한 지역이 삼호지구다. 십리대밭교는 태화지구의 동쪽에 있다. 십리대밭교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누각 태화루다.

 

태화강 국가정원의 얼굴이라면 아무래도 십리대숲이다. 구 삼호교부터 태화루 인근 태화교까지 10리, 약 4km에 걸쳐 대나무 50만 본이 늘어서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 삼호교는 삼호지구의 서쪽 경계 지점에 가깝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십리대숲은 삼호지구와 태화지구의 대숲을 모두 아우르는 명칭이지만, 대개는 태화지구의 대숲을 십리대숲이라 하고, 삼호지구의 대숲은 삼호대숲이라고 따로 부른다.

 

여정의 시작은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로 하자. 울산 시민 120만 명의 절반이 주변에 모여살고, 하구의 공단과 조선소에 공업용수를 대주는 울산의 상징, 태화강과 국가정원의 역사를 전시로 만날 수 있다.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을 딛고 1급수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태화강의 변화와 일대 생태를 지켜 끝내 국가정원 지정을 이끌어낸 시민들의 노력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의 정원 감상은 확연히 다르다. 80년대 홍수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한 번, 90년대 주거지역 용도 변경으로 또 한 번 사라질 뻔했던 대숲을 만날 준비도 끝난다.

 

안내센터를 나서면 곧 십리대숲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나타난다. 하늘을 찌를듯 키큰 대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사이로 폭 20m 남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대나무는 수직으로 쭉죽 뻗었지만 간혹 사선으로 기대서있고, 길은 직선처럼 보이다가도 숲길 밖 보이지 않는 강줄기를 따라서 부드럽게 방향을 꺾어서 돈다. 대숲을 걷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시야가 녹음으로 가득차면서 바람 소리가 소음을 덮는다. 현실의 시공간 감각도 일순간에 사라진다. 피톤치드의 공기정화작용이나 음이온을 몰라도 온몸으로 느끼는 효용이다. 대숲 산책로는 십리대밭교 가까이에서 끝난다.

 

십리대숲은 숲길 사이 산책로도 좋지만 산책로를 나와서 숲 바깥에서 보면 또다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산책로 안에서는 마디를 이룬 대나무 줄기 부분의 존재감이 더 크지만, 밖에서 볼 때는 벽을 이루고 바람의 방향으로 기울어진 채 한몸처럼 솨솨 흔들리는 꼭대기의 가지와 잎 부분이 완전히 다른 인상을 자아낸다. 이런 대나무 가벽은 태화지구의 강변을 빙 둘러서 있어서 공원 어디에서 보든지 전경의 배경을 이룬다.

 

밤의 십리대숲에서는 은하수길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부터 순차적으로 조성된 야간 조명등 구간이 안내센터 쪽 초입부터 총 600m 길이로 이어진다. 점점의 LED 조명이 어두운 대나무숲 위로 드리워지면서 만들어내는 빛은 반딧불이처럼 은은하게 빛나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름처럼 은하수 같기도 하고, 요정 마을 같기도 한 풍경이다.

 

 

■또다른 대나무와 이 계절의 꽃

 

태화지구의 십리대숲은 태화강 국가정원의 대표 명소지만 절대 전부는 아니다. 십리대숲 외에도 정원 곳곳에는 종류도, 크기도, 규모도 다른 대나무와 대숲이 제철 꽃밭과 조화를 이뤄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일단 태화지구에서는 강변을 에워싼 십리대숲 안쪽으로 대나무테마정원이 있다. 산책로의 대부분을 점하는 키큰 왕대가 아니라 맹종죽, 야차죽, 금명죽 등 10여 종 대나무와 죽순 모형, 원두막과 놀이터 등이 공원으로 조성됐다. 한쪽으로는 불타듯 붉은 꽃무릇이 레드카펫처럼 펼쳐져있다.

 

아직 꽃이 올라오지 않은 국화정원을 지나서 실개천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대나무생태원이 있다. 국내 대나무뿐 아니라 일본, 중국의 외래종까지 63종 대나무가 아기자기한 정원을 구성하고 있다. 대나무생태원 옆 초화원에는 빨강, 노랑, 분홍의 백일홍이 한창이다. 초화원 너머로는 2018년 정원 박람회에서 조성된 시민정원과 작가정원이 있고, 더 동쪽으로 가면 길쭉한 무궁화정원이다. 울산 출신의 무궁화 육종가 심경구 박사가 육성한 울산 지명 품종 11종을 포함해 24종 무궁화 2만 4000여 주를 심은 1만 ㎡ 규모 테마정원이다. 어른 허리를 훌쩍 넘는 키로 만개한 무궁화가 태화루와 빌딩 숲을 배경으로 빽빽히 선 장면은 쉽게 만나기 힘든 풍경이다.

 

걸어서 삼호지구로 이동하려면 안내센터 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안내센터 앞으로 조성된 오산못과 오산광장에는 소풍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이 가득하다. 오산못에서 뿜어져나오는 분수에는 무지개가 비치고, 대나무 가벽을 뒤로 하고 펼쳐진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엽서 같은 장면이다. 어려움 끝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지킨 울산 시민들의 자부심도 느껴진다.

 

은하수다리를 건너면 삼호지구다. 은하수다리는 오산대교 아래 만들어붙인 인도교다. 강 건너 삼호지구의 삼호대숲은 태화지구의 대숲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간벌하지 않은 자연 대숲이 빽빽한 밀도로 모여있고, 푸른 대나무 속에 죽은 대나무가 섞여있어서 여름에는 백로, 겨울에는 떼까마귀의 서식지가 된다. 지금은 백로는 거의 떠났고, 떼까마귀는 10월부터 찾아와 이듬해 4월까지 여기 머문다. 철새를 보려면 삼호지구의 서쪽 끝에 있는 철새공원이나 산책로를 빠져나가 도로변에 있는 철새홍보관을 찾으면 된다.

 

삼호지구의 주변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태화지구와 달리 인공적인 조경이 거의 없이 소박하고 호젓하다. 사람들은 대숲와 시가지 사이로 난 한적한 산책로를 걷거나 대숲 반대편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탄다. 태화지구의 전경을 보기 좋은 태화강전망대와 일제시대 일본군이 보급물자 창고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에 여러 볼거리를 꾸민 태화강 동굴피아도 이 쪽 연안에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