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산 자체 험준하지 않지만 큰지붕(정상)을 중심으로 첩첩산중을 이룬다. 빼어난 절경은 아니지만 참나무류 단풍나무 산벚나무 철쭉 진달래 등 다양한 식생물들이 봄가을 등산객들을 즐겁게 한다. 회문산을 둘러싸고 삼면으로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하천들이 섬진강과 합류해서 빚어내는 풍경도 특별하다. 여기에 빨치산, 의병, 종교, 명당 등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이런 자연과 역사적 자원을 가진 회문산이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이 운영 중인 자연휴양림 정도가 회문산을 상징한다. 역사적 자산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보존되거나 아예 방치돼 있다. 빨치산은 치욕의 역사로 꽁꽁 가둬두고 있고, 의병활동 무대는 산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
회문산의 잠자는 역사를 깨워야 한다. 역사의 깊이를 더하는 재조명 작업과 함께 흩어진 역사를 모아야 한다. 각계 의견을 종합하면, 도립공원화가 답이다. 회문산권이 순창 임실 정읍 3시군에 걸쳐 있고, 회문산이 품고 있는 역사·문화적 자산 성격이 각기 달라 하나의 테마로 삼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제화 된 회문산 역사관

회문산의 중심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은 회문산이 갖고 있는 역사·문화적 자산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말 그대로 산 속 휴양림에 머물고 있다. 회문산 역사관이 설치됐으나 역사적 장소임을 간략하게 소개한 패널이 사실상 전부다. 의병·빨치산·종교발상지·동학농민혁명·명당 등 테마별로 구분해 각각의 전시실을 갖추고 관련 내용을 유물과 사진 등으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

현재 30평 남짓한 회문산 역사관은 빨치산 역사관으로 쓰기에도 왜소하다. 산림청은 당초 회문산 자연휴양림에 빨치산 전북도당 총사령부 건물과 빨치산 숙소인 움막, 통신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활용했던 물레방아 발전시설 등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부 복원된 사령부마저 붕괴위험이 있다고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회문산 역사관’을 신축했다.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던 자리에 6.25 양민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고, 빨치산 교육시설인 ‘노령학원’이 있던 곳을 물놀이장으로 만들었다.
지리산 빨치산 활동과 관련해 경남 하동과 산청은 그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경남 하동군과 산청군은 각각 ‘지리산역사관’과 ‘지리산빨치산 토벌전시관’을 만들어 당시 빨치산 생활상과 총기류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함양·산청·하동군 등 경남 3개 군은 6,25전쟁 50주년을 앞두고 지난 99년 잊힌 빨치산의 자취와 이동통로를 발굴, ‘빨치산 루트’까지 조성해 역사교육장과 테마등산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폐허의 의병 훈련장
회문산에서 의병의 역사가 묻혀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북에서 의병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순창의 의병 활동을 종합적으로 체계화시킨 연구가 미약하고 역사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 또한 미흡하다. 순창군이 회문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양윤숙 의병장 생가와 흉상공원·다목적 운동장 등을 갖춘 의병공원 조성을 추진하다가 이마저도 중단했다. 순창에서 면암 최익현과 함께 눈부신 의병활동을 했던 돈헌 임병찬이 의병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던 회문산 서북쪽 기슭의 훈련장은 풀이 무성한 채 당시 역사를 소개한 유적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회문산 정상 부근에 돈헌의 무덤이 있으나 이 역시 역사적 자산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양대 거봉이었던 전봉준과 김개남의 피체지가 공히 회문산권이지만, 행정권역에 따라 기리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순창군은 전봉준 장군 피체지인 쌍치면 피노리에 기념관을 만들고 피노마을에서 회문산을 따라 구림면 금상마을까지 압송루트를 복원하고 있다. 반면 정읍 산내면 회문산 기슭에서 붙잡힌 김개남의 피체지는 그저 장소 표시만 남아 있다.
문예작품 관광자원화
회문산의 역사적 자산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문화예술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남부군’을 통해 회문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회문산에 관련 문학비 하나 없다. 한국전쟁에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의 장으로 삶기 위해 휴양림 내 ‘비목의 숲’과 ‘해원의 숲’을 조성했으나 감흥을 줄 콘텐츠가 없다. 한명희 시 ‘비목’과 김소월 시 ‘산유화’ 등의 작품을 돌에 새겨두고 있으나 역사성·지역성과 거리가 있다. 이태와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한 후 전향했던 순창 출신 김영 시인의 문학적 성과를 조명하고 시비를 건립한다면 회문산의 문학적 자산이 될 것이다.
영화 ‘남부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데도 인색하다. 영화 줄거리의 중심 무대며 실제 영화 촬영 분량이 적지 않았던 회문산에 영화 관련 안내문조차 없다. 고창과 장수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영화‘남부군’촬영지라고 관광홍보에 활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까지 회문산을 소재로 간간이 학생백일장과 작가회의 연수 등 문예활동이 열리기도 했으나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된 것도 아쉽다. (끝)
회문산과 천주교 - 이영춘 호남호남교회사연구소장(용진성당 신부) 기고문
천주교 교우촌의 역사문화적 의의

회문산은 박해를 받던 초기 천주교 신도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 천주교 교우촌은 박해시대에 형성된 종교인 취락으로서 독특한 취락형태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그 모습이 사라져 자취만 남아 있지만, 특정한 시대·특정 집단의 취락구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역사문화사적 의미가 크다. 경계지역에 자리잡은 위치성, 세속과 떨어져 영적인 가치를 추구한 진정성(수도자적인 삶), 교우촌에서 이루어졌던 여러 가지 독특한 종교문화, 선교사들도 감탄한 이상적인 공동체성 등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의미들을 천주교 교우촌은 담고 있다.
일본의 경우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고토지역을 보존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전라도 지역은 교우촌이 가장 많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취락형태의 현장을 잘 보존한다면 역사문화적, 교육적, 관광문화적으로 훌륭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회문산에 묻힌 김난식은 김대건 신부의 유일한 형제이다. 최근의 성지순례는 이름난 성지보다는 신자들이 살았던 교우촌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적지들을 순례하는 추세이다. 이런 기회에 김난식과 김현채를 조명함은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는 김대건 신부의 집안들이 가장 많이 내려와 살았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로 내려온 그의 집안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김난식과 김현채를 기억하는 일은 순교자와 순교자적 삶을 함께 기억하는 중요한 자리매김이 될 것이다. 특히 동정(부부)으로 산 삶은 치명자산의 복자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부부의 맥을 잇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회문산 역사문화유적과의 연계 발전 방향
회문산은 피난처이자 희망처이다.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회문산으로 피신해 희망을 키웠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세상을 향한 희망을 꿈꿨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이런 곳들을 연계하여 ‘회문산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회문산은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품고 있으며, 가까이 옥정호를 끼고 있어 현재에도 많은 도민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이 지역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면 더 확장된 역사문화관광 활성화에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전라북도 전체를 보면 이 지역에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도립공원이 지정되면 도민들에게나 지역민들에게 경제적·문화적 유익의 창출에 크게 도움되리라 생각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원용 kimwy@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