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치유(Healing)와 아웃도어(Outdoor), 비대면(Untact), 안심(Safe-stay), 자연친화(Eco-tourism) 여행이 전남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남 관광재단의 ‘블루 투어’(BLUE TOUR) 정책을 ▲탄소중립(ESG) ▲스마트 관광 ▲로컬 관광 ▲원조 한류관광 등으로 나눠 살펴본다.
◇섬과 섬, 노둣길로 이어진 ‘순례길’
‘천사(1004) 섬’은 신안군의 별칭이다. 신안군은 전남 서남해에 흩뿌려진 1000여 개의 섬들을 천사(天使)를 연상시키는 숫자 ‘1004’로 브랜드화했다. 또한 관내 여러 섬들에 특색 있는 스토리텔링과 꽃을 이용한 자연색채 마케팅을 함으로써 밋밋한 섬을 보석으로 탈바꿈시켰다. 섬과 섬을 잇는 노둣길을 따라 작은 예배당을 짓고 순례길을 조성한 ‘기점·소악도’와 섬 전체를 보라색으로 꾸민 ‘퍼플섬’이 대표적이다.
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 ‘12사도(使徒) 순례길’ 또는 섬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합한 ‘섬티아고 순례길’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곳은 요즘과 같은 ‘위드 코로나’ 시대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한 ‘치유’(Healing)와 ‘생태·청정’(Eco-tourism), ‘안심’(Safe-stay) 여행지로 적격이다.
특히 순례자들이 자동차 대신 녹색 교통수단인 은륜(銀輪) 또는 ‘뚜벅이’ 걷기를 통해 지구를 살리는 ‘탄소중립’(Carbon neutral) 여행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2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여행하는 인간’(Homo Viater)의 본능을 억제할 수 없다.

자전거 애호가인 50대 문동호·노명희 부부는 10월초 황금연휴 기간 중 하루 날을 잡아 기점·소악도 은륜 여행에 나섰다. 부부는 3년 전부터 건강관리를 위해 함께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동료 라이더들과 어울려 ‘영산강 자전거길’을 비롯해 광주·전남의 여러 자전거 길을 따라 페달을 밟아왔다.
부부는 신안군 압해읍 송공항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항하는 ‘드림 아일랜드호’(Dream Island)에 승선했다. 여객선은 송공항~대기점도 항로상에 놓인 당사도와 소악도, 매화도, 소기점도를 차례로 들려 1시간 후 순례길의 시작점인 대기점도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에는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 섬 건물 스타일의 ‘건강의 집’(베드로)이 서 있었다. 하선한 여행자들은 둥근 푸른색 지붕과 하얀 회벽을 한 이국적인 건축미술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작은 종을 울린 후 순례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부부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페달을 밟아 선착장과 대합실 역할을 겸하는 방파제를 빠져나와 ‘생각하는 집’(안드레아)으로 향했다. 방파제 입구에 순례자들에게 전기자전거를 빌려주는 컨테이너가 놓여있다.
둥글고 네모난 두 건물을 연결시킨 ‘생각하는 집’ 앞과 첨탑에는 이채롭게도 하얀 고양이상이 수호신처럼 세워져 있다. 수십 년 전 농사에 피해를 입히는 들쥐를 퇴치하기 위해 고양이를 섬으로 들여와 키웠던 북촌마을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순례 나서기전 물때 확인 필요
‘기점·소악도’는 크게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5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각 섬과 섬은 노둣길로 연결돼 있다. 오래전 주민들은 썰물 때 이웃 섬을 왕래하기 위해 갯벌에 바윗돌을 징검다리처럼 놓은 노둣길을 만들었다. 현재는 갯벌 위에 석축을 놓고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놓아 차량이 오갈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노둣길이 만조 때 바닷물 속에 잠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순조롭게 순례를 마치려면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 해양조사원(https://www.khoa.go.kr) 홈페이지에서 만조·간조 시간을 참고해야 한다.
대기점도와 북쪽에 위치한 병풍도 역시 1.1㎞ 길이의 노둣길로 연결돼 있다. 썰물 때면 병풍도에서 딴섬까지 6개의 크고 작은 섬이 한 몸처럼 변신한다. 병풍도는 비록 ‘12사도 예배당’이 설치돼 있지 않지만 순례길에 나선 여행자들의 발길을 절로 이끈다. ‘불타는 사랑’과 ‘열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형형색색의 맨드라미 꽃밭이 대규모로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병풍도 맨드라미 꽃밭을 돌아본 후 다시 노둣길을 건너 대기점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정표를 따라 ‘그리움의 집’(야고보)과 ‘생명평화의 집’(요한), ‘행복의 집’(필립)을 차례로 찾았다. 소기점도내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과 ‘인연의 집’(토마스) 또한 인상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한국작가 6명과 프랑스, 포르투칼, 스페인 등 외국작가 5명이 개성적으로 설계를 했다.
“어린 시절 보물찾기를 하듯, 코스를 따라가며 다음 예배당에 대한 기대와 상상을 하게 됩니다. 관광객이 순례자가 되어 걷는 모습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성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각자 어떤 소망을 품으며 걷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요?”
기점·소악도에 설치된 12개의 건축미술 작품은 예수 12제자의 이름을 붙였지만 특정 종교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인에게는 예배당, 가톨릭 신자에게는 작은 공소(公所), 불자에게는 작은 암자가 될 수 있다. 또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명상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현 시대에 이곳만은 여러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한다.
현재 ‘기점·소악도’내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는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잠정적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다. 부부는 출발전 ‘가고 싶은 섬 작은 산티아고 기점·소악도’ 홈페이지(기점소악도.com)에서 공지된 내용을 확인하고 미리 김밥을 챙겼다. 화학연료와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물과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간소한 먹을거리 준비는 ‘탄소중립 여행’의 첫걸음이다.

◇12개 건축미술 작품 순례하며 ‘자기성찰’
황금빛 돔지붕 등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는 ‘기쁨의 집’(마태오)은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둣길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밀물 때면 마치 건물이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악도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은 물고기 형상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소악도와 연결된 진섬에 들어서면 ‘칭찬의 집’(유다 다대오)과 ‘사랑의 집’(시몬)이 순례자를 맞아준다. 특히 ‘사랑의 집’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순례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지막 예배당인 ‘지혜의 집’(가롯 유다)은 모래 해변 건너 딴섬에 위치해 있다. 때마침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어 무리하게 건너지는 않았다. 병풍도를 포함해 섬에 머무른 4시간동안 주행한 거리는 14㎞. 부부는 5개의 섬을 잇는 ‘힐링 로드’를 자전거로 달리고, 짙푸른 바다와 하늘, 땅과 조화를 이룬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힐링’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신안 ‘12사도 순례길’은 천천히 걸으며 자기를 성찰하는 여행길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평범했던 섬이 ‘12사도 순례길’의 이야기로 재탄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요즘처럼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찾고 싶습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