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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 나무 기행]봄바람에 한들한들 내마음도 흔들흔들

강릉 등명낙가사 살구나무

 

오래전부터 이 땅에 자생 삼국유사에도 등장
작고 떫어 부정적으로 묘사 천덕꾸러기 신세
연분홍꽃잎 화려하게 만개 봄 알리는 지표종


살구나무는 이 땅에 자생하는 나무로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삼국유사에 살구꽃을 보고 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살구꽃은 봄의 중간에 와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종이다. 4월 중순이면 나뭇가지에 달린 연분홍 꽃잎이 봄바람을 타고 흐느적거리며 고혹적인 자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또 과실이 열리기 때문에 관상수나 과실수로도 만족감을 주는 나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구나무와 관련된 속담은 ‘빛 좋은 개살구' ‘개살구 지레(저절로) 터진다' ‘살아 있는 살구나무에 배꽃이 피랴(북한 속담)' 등 부정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외모로 평가하거나 성급함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살구를 빗댄 것이 아닐까.

강릉 정동진에 위치한 사찰 등명낙가사는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부침을 겪은 사찰이다. 이곳에 우람한 살구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 둘레는 3m75㎝가량 되고 지상부 부터 다섯 가지가 팔을 벌리듯 펼치고 하늘을 지탱하고 있다. 높이는 12m 정도다. 큰 가지는 사찰에서 나무 지팡이를 3개 만들어 바치는 등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받고 있다. 나무 아래 이동식 알림판은 60세 됐다고 증언하는데 나무 둘레, 수피 등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그보다는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지방에 자생하는 살구나무는 보통 개살구라고 부른다. 열매가 살구보다 작고 떫은맛이 강해 먹기가 적당하지 않아 중국에서 들여온 살구나무가 개살구나무를 대신해 주인장 노릇을 하고 있다. 자생하던 살구나무는 앞에 ‘개'자가 붙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개'자가 붙어 낙인찍히면 그 이미지를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식물 이름에 ‘개'를 비롯해 ‘가치', ‘좀', ‘각시' 등이 붙으면 원래보다 작거나 못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말은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은 문화라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요즘 언어는 ‘개'자가 들어가야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고 정확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개좋아, 개웃김, 개슬픔 등 신조어들을 보면 예상과는 달리 ‘더욱, 많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불과 30~40년 전 ‘작다', ‘못하다' 뜻을 가졌던 것이 오늘날에는 ‘크다'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생기는 등 자극적인 사회에 몸담고 살다 보니 ‘개'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됐다.

정동진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 관광객이 봇물처럼 밀려오는 곳이다. 이곳은 경복궁에서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동쪽이라 신성한 동쪽 에너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확 트인 바다에 익숙해질 무렵 안구를 휘어잡는 해안단구는 빼어난 경치로 또 다른 동해안 매력을 자랑한다. 정동진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등명낙가사는 신라 성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 세워서 수다사라 불렀다. 고려 때 등명사로 불렸으며 많은 스님들이 수도 정진한 사찰이다.

1957년 낙가사라는 이름으로 암자를 짓고 1980년에 중창불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날 사찰 터 안은 고려 양식의 5층 석탑이 연꽃무늬로 장식된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똑같은 탑이 3개 있었는데 한 개는 바닷속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북쪽 해안가에 있었다고 한다. 한때 방송사에서 수중 탑을 찾기 위해 다이버들과 함께 물속을 뒤지기도 했었다. 5층 석탑에는 돌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1층 탑신석 동쪽에 문틀과 자물쇠 음각과 양각이 아주 또렷이 새겨져 있다. 부처님의 집인 탑에 자물쇠를 채운걸 보면 귀중한 진리를 잃지 말자는 깨달음이 보인다.

글·사진=김남덕 사진부국장 / 편집=강동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