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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통영에서 즐기는 봄·봄·봄

각기 다른 매력 가진 경남 통영시의 세 ‘피랑’
동피랑에서 통영 주민의 일상 속을 걸어 ‘봄’
서피랑에선 박경리의 소설 무대를 만나 ‘봄’
디피랑에선 반짝반짝 통영의 밤을 즐겨 ‘봄’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의 시 ‘통영2’의 한 구절이다. 자다가도 가고 싶은 바다가 있고 아름다운 마을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 경남 통영. 골목골목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삶과 예술을 강구안 인근 세 '피랑'에서 만나 봤다.

 

■통영의 일상 속을 걸어 봄, 동피랑

 

통영 여행지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뜨는 곳 중 하나가 ‘동피랑’이다. ‘피랑’은 벼랑이라는 뜻으로, 동피랑은 동쪽 벼랑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동포루 복원 때 철거될 뻔한 동네였다. 시민단체가 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벽화를 그리면서 벽화마을로 유명해졌다.

 

동피랑 벽화는 2년 주기로 바뀐다고 한다. 지금 그려진 벽화는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 우리동네미술사업’으로 완성됐다. 서유승 작가 등 34명의 작가들이 참가한 통영퍼블릭아트그룹이 추진했다.

 

통영중앙시장 부근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니만큼 그들의 일상 속에 잠시 들어간 기분이다.

 

동네 제일 위 동포루를 향해 골목골목 돌아본다. 통영 바다색을 닮은 파란 그림, 빨간 동백 그림, 천사 날개 등 곳곳이 포토존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도깨비 집으로 변신한 폐가도 눈에 띈다.

 

 

 

그림뿐 아니라 조형물도 아기자기 귀엽다. ‘친구 사이’라는 제목을 달고 강아지 등을 밟고 올라선 고양이, 담벼락에 줄줄이 앉아 있는 ‘소풍 나온 갈매기’,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아줌마와 반려동물’이 웃음을 준다.

 

통영 전통공예를 접목한 작품들도 있다. 통제영 12공방 두석장의 ‘나비 장석’으로 꾸민 ‘I ♡U', 나전칠기로 의자를 장식한 까꾸막 쉼터가 그것이다. 나전칠기 장식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잠깐 ‘품격 있는 여유’를 가져 본다.

 

정우성·한지민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빠담빠담’ 촬영지 집도 그대로 남아 있다. 동포루에 올라서니 강구안이 바로 발밑으로 내려다보인다. 눈이 시원해진다.

 

‘무십아라! 사진기 매고 오모 다가, 와 넘우집 밴소깐꺼지 디리대고 그라노? 내사 마, 여름내도록 할딱 벗고 살다가 요새는 사진기 무섭아서 껍닥도 몬벗고, 고마 덥어 죽는줄 알았능기라.’ 마을에서 만난 글귀다. 동피랑을 간다면 ‘조용히’ 걷고 보길 바란다.

 

동피랑 마을에서 내려오면 바로 통영중앙시장이다. 활어시장으로 들어가면 펄떡펄떡 생명력이 느껴진다. 제철 맞은 도다리와 멍게가 발길을 붙잡는다. 도다리 회를 떠다가 싱싱한 통영을 맛봤다.

 

 

■박경리 소설의 무대를 만나 봄, 서피랑

 

동피랑을 마주 보고 있는 서쪽 벼랑에는 ‘서피랑’이 있다. 서포루를 복원해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통제영에서 보면 좌·우측에 각각 서 있는 곳이 동포루와 서포루다. 서피랑 마을 골목골목에는 박경리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서피랑공원에 주차하고 먼저 서포루로 향했다.

 

오르는 길 담장에는 박경리 선생이 남긴 글들이 적혀 있고, 산수유나무 노란 꽃이 감성을 더해 준다. 서포루에서는 통영시내와 강구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황산 정상의 북포루까지 보인다. 성벽 옆 잔디밭에 자리 잡은 화가들이 통영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림 같다.

 

서포루를 빙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를 걸으면 초화원,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 벼랑 끝에 선 빨간 서피랑 등대를 만난다. 초화원은 달력이 두어 장 넘어가면 봄꽃이 만발해 더 예뻐질 것이다. 서피랑 등대 옆 계단으로 내려가면 99계단과 피아노계단으로 갈 수 있다.

 

서피랑 공원에는 1933년 지어진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이 있다. 그곳의 담장이 서포루로 오는 길에 봤던 그 담장이다. 담장을 따라 주차장을 지나쳐 쭉 내려가면 박경리 선생의 생가가 있는 작은 동네다. ‘생가’는 선생의 호적에 있는 주소로 추정한 곳이며, 현재는 벽돌 주택이 지어져 있어 작은 안내판만 붙어 있다. 생가라기보다는 생가 자리다.

 

 

 

박경리 선생은 이곳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선생의 어머니가 바느질 일감을 맡아 드나들던 큰 부잣집 ‘하동집’도 인근에 있다. 하동집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 속 하동댁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충렬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서피랑 와옥’이라는 이름의 한옥스테이로 운영 중이다.

 

이처럼 서피랑 일대는 박경리 선생이 유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소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생가가 있는 골목 주변에 서문고개가 있고, 소설 속 서문고개 관련 구절을 새긴 표석이 서 있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물 긷는 처녀, 각시들로 밤길은 어수선하였다. 용란이 친정으로 올 때마다 이 고개를 울먹울먹 넘어가는 한실댁은 양지기만 같았다. 대밭골을 지났다. 인적은 끊어졌다.’

 

서포루 오르는 길 오른쪽 대밭이 ‘김약국’의 첫째 딸 용숙이가 살았던 대밭골이다. 서피랑을 찾기 전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간다면 더 흥미진진한 골목 여행이 될 것이다.

 

 

■반짝반짝 통영의 밤을 즐겨 봄, 디피랑

 

통영의 생생한 삶과 문학의 흔적을 즐겼다면 통영의 밤도 즐겨 보자. 먼저,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지워진 벽화는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혹은 예전 사진 속에서만 희미하게 남은 채 사라졌을까? 아니다. ‘디피랑’에 남아 빛나고 있다. 디피랑은 남망산공원에 조성한 디지털 테마파크 ‘빛의 정원’이다. 2년마다 새 그림으로 바뀌는 벽화마을 동피랑과 서피랑의 옛 벽화들이 이곳에 모여 축제를 펼친다는 주제로 꾸몄다.

 

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통영시민문화회관 벽면의 화려한 영상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망산공원의 밤은 생각보다 더 어두웠다. 그만큼 빛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산책길은 총 1.3km로 ‘이상한 발자국’부터 ‘잊혀진 문’ ‘반짝이 숲’ ‘오래된 동백나무’ ‘비밀공방’ 등을 거쳐 축제의 장 ‘디피랑'에 닿게 된다. 줄줄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잊혀진 문’ 앞에 서면 캄캄한 숲에 숨어 있던 디피랑의 수호신 ‘피랑이’가 나타나 말을 건다. “어둑해진 하늘 커다란 달이 떠오르면 신비한 숲이 열리고, 산꼭대기에선 지워진 벽화들이 살아 움직이는 축제가 벌어진단다.”

 

 

 

‘벅수’가 지키고 섰던 곳에 문이 열리고 환상적인 세상이 펼쳐진다. 절로 감탄이 나온다. 빛으로 꽃 피운 동백나무에 라이트 볼을 넣으면 불빛 쇼가 펼쳐진다. 라이트 볼은 입장권을 살 때 바로 옆 매장에서 살 수 있다. 이곳 외에도 ‘디피랑’에서도 라이트볼에 반응하는 미디어 아트를 만난다. 반딧불이가 모여 있는 듯한 환상적인 숲길은 애니메이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 황홀하다.

 

디피랑의 하이라이트는 ‘비밀공방’이다. 사방의 벽과 바닥이 영상관이다. 커다란 공간에 바닷속 풍경, 나전칠기, 사라진 벽화들, 유영하는 고래, 통영 출신 작가들의 그림이 시선을 압도한다. 일부만 보고 나가는 이들을 보니 괜히 안타깝다. 영상 하나하나가 멋지니 끝까지 지켜보자. 언뜻 실내공간인가 했더니 배드민턴장이었다고 한다. 올려다본 밤하늘마저 낭만적이다.

 

아이도 어른도 “야호~” 마음껏 소리쳐 보는 ‘메아리 마을’을 지나 출구로 나오니 아쉽다. 최대한 오래오래 머물며 즐기길 바란다.

 

디피랑은 자정까지 운영하며 동절기(10월~2월) 오후 7시, 하절기(5~8월) 오후 8시, 그 외에는 오후 7시 30분 문을 연다. 입장 요금은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만13~18세) 1만 2000원, 어린이(만 6~12세) 1만 원이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