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거리와 일터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 올해 온열질환으로 (1일 기준) 경남에서만 4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극심한 더위를 보이고 있다. 견디기 힘든 더위 속에서도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힘겹기만 하다. 폭염경보가 발효된 1일 살기 위해 더위와 싸워야 하는 이웃들을 만나 보았다.
폐지 주워 생계 이어가는 노인
새벽부터 수레 밀며 쉴 틈 없이 일해
땀 흠뻑 젖어도 몇천원 수입에 버텨
◇운 좋으면 하루 일당 ‘5000원’= “더우니깐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문자가 오지만, 집에 있으면 뭐 먹고사나요.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아요. 이웃이 책을 줘 4000원 정도 벌었거든요.”
1일 오전 10시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한 고물상에서 만난 김순자(83)씨는 땀을 닦으며 이같이 말했다. 15년째 폐지를 줍는 그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내며 어려운 삶을 버티고 있지만,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폭염에도 거리로 나가 폐지를 주워야 한다.
34℃ 폭염을 보인 이날 1시간 동안 사파동 일대를 돌며 김씨의 폐지 수집에 동참했다. 허리가 ‘ㄱ’ 자로 굽은 그는 본인 몸무게의 2배가 되는 수레를 보행기처럼 끌고 사파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동행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자의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새벽 6시 30분부터 밖에서 폐지를 주웠다는 김씨는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쉴 틈 없이 폐지를 주웠다.

기자가 건넨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그는 폐지가 엎어지지 않을까 수레를 계속 지켜봤다. “정말 고맙심더. 정말 고맙심더. 이제야 좀 쉬네요. 고물상이 휴가 가는 며칠 동안 돈을 못 벌어 오늘 많이 일을 해야 하는데 이리 더워서 우짭니까.”
폐지를 고물상에 팔러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차로에서 수레를 끄는 김씨 주변으로 차들이 지나다녀 위험해 보였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도 폐지를 줍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료를 받았지만, 다른 환자들이 땀 냄새 많이 난다고 싫어해 이후로는 안 가고 있다고 한다.
고물상에 도착하자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복지관에서 찾아온 복지사들이 “오늘 같은 날씨에 밖에서 일하면 안 된다. 큰일 난다”고 걱정한다. 김씨가 새벽부터 나와 오전까지 일해서 판 폐지는 135㎏. 수입은 7000원 남짓.
고물상 주인은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어르신들이 수없이 찾아오신다. 하루 50명은 기본”이라며 “오전 일찍 오시고, 오후에 한 번 더 오신다. 한참 더운 2시에도 찾는 분들이 계실 정도로 어려운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어르신은 “적게 벌 때는 600원, 많이 벌면은 5000원, 오늘은 수입이 좋아 3000원”이라고 했다.
김씨는 점심 때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쓰레기 정리를 하고 다시 폐지를 주울 것이라고 했다. “노인 기초연금과 폐지 매일 주워봐야 얼마 못 벌어요. 10만원은 월세 내고, 나머지는 병원비로 쓰여요. 밥은 라면으로 때우는 데 정말 힘듭니다. 올해 더 덥다지만 이렇게라도 벌어야죠.”
출하시기 놓칠까 손길 바쁜 농민
하우스 온도 오전에 이미 40℃ 근접
차광막·덮개에도 ‘한증막’ 숨이 턱턱
◇폭염에도 출하 시기 놓칠까 봐 밭으로= 도내에서 발생한 온열질환 사망 사고는 모두 농업 현장에서 발생했다. 그만큼 위험하지만 출하 날짜를 맞추기 위해 농민들은 오늘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오전 9시 30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한 감자밭. 이길홍(58)씨는 길었던 장마에 늦은 퇴비 작업을 서둘렀다. 뙤약볕 아래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이씨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상토를 손수레 한가득 싣고 인근 감자밭에 쏟아내길 반복했다. 연신 땀을 닦아내던 이씨는 “6월 초에 감자 수확하고 진작 했어야 하는 작업인데 장마가 길어져서 제때 못했다”며 “날이 워낙 덥다 보니 새벽 4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온이 올라가서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하우스 내부 온도는 37℃가 넘었지만 대형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인근 육묘장에도 작업이 한창이었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만난 박병욱(47)씨는 노란 호스를 어깨에 감은 채 토마토 모종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하우스 7동 내부에는 환풍기 26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폭염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다. 비닐하우스를 수차례 오가던 박씨의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박씨는 “아무리 더워도 육묘장은 8월부터 10월까지가 가장 바쁜 시기여서 주 6일 작업하고 있다”며 “낮에는 하우스 기온이 40℃ 가까이 올라가서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차광막과 덮개를 이중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날이 더우면 접목도 잘 안 되고 모종이 약하게 자라기 때문에 육묘에 영향을 많이 준다”고 걱정했다.
토마토를 파종하던 이재늠(65)씨는 산업용 에어컨 앞에서 두건을 두르고 씨앗 하나하나를 모종판 구멍마다 채워 넣었다. 이씨는 “올해 내부 공사를 해서 그나마 시원한 건데 파종실은 여전히 덮다”고 했다.
달동네 옥상 셋방살이하는 주민
컨테이너 열기에 선풍기 더운 바람
몸 불편해 무더위쉼터는 ‘그림의 떡’
◇무더위 쉼터는 ‘그림의 떡’= 도내 무더위 쉼터는 국민재난안전포털 기준 총 7918곳. 하지만 몸이 불편하고, 거리가 먼 이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동 한 달동네. 허름한 주택 2층 옥상 컨테이너에서 셋방살이하는 조인제(65)씨는 파라솔 아래에서 얇은 책자로 연신 부채질하며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서자 숨이 턱 막혔다. 철재로 만들어진 탓에 열이 그대로 흡수돼 컨테이너 내부는 찜질방을 연상케 했다. 2평 남짓한 컨테이너에 더위를 식혀 줄 냉방기기는 선풍기 한 대뿐. 이마저도 무더운 날씨 탓에 더운 바람만 흘러나왔다.

야외 활동을 삼가는 게 폭염 예방법 중 하나지만, 조씨는 오히려 밖으로 나와야 더위를 버틸 수 있다. 왜 무더위 쉼터를 가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몸이 불편해서 오가는 것도 일”이라며 “간다고 하더라도 눈치가 보여 편히 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성호동 일대 골목에서 만난 항복연(84)씨와 박순조(80)씨는 폐업한 슈퍼 평상에서 부채 하나에 의지하며 더운 여름을 나고 있었다.
박씨는 “집 안이 너무 후끈해서 선풍기를 틀어도 시원하지 않다. 더울 때면 이렇게 평상에 나와서 쉰다”며 “근처에 무더위 쉼터가 있긴 한데, 몸이 불편해서 갈 엄두를 못 낸다”며 한숨을 쉬었다.

항씨는 “집에 에어컨이 있긴 한데, 전기요금이 부담되니 정말 죽을 정도로 더운 게 아니면 틀지 않는다”며 “허리가 안 좋아서 오래 걷지를 못한다. 좁아도 좋으니까 우리 동네에 경로당 하나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취재진이 박순조씨 집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무더위 쉼터를 확인해 본 결과, 1.4㎞ 거리에 한 곳이 있었다. 그러나 무더위 쉼터까지 가는 길은 80세 이상 어르신에게는 험난해 보였다. 기자가 직접 박씨 집에서 쉼터까지 걸어서 이동해 보니 쉼터까지는 계단 60개와 언덕 오르막길 70m를 지나야 했다. 그런데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은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무더위 쉼터를 찾더라도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창원시 관계자는 “경로당 운영은 경로당 회장이나 총무가 맡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을 권고하고 있지만 자율에 맡겨져 있어 오후부터 여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