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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산청 산불 100일] (하) 일상 복귀는 언제쯤

산사태 우려에 주택 복원도 깜깜… 속 타는 주민들

산청 대형산불이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삶의 터전이던 숲은 잿더미로 변했지만 그곳엔 여전히 사람들이 있다.

장마 시작되며 흙·돌멩이 흘러내려
“비 올 때마다 위험” 직접 방책 세워
집 착공 시작했지만 복구 하세월
“급한 사람부터 살 곳 만들어줘야”

 

◇나무 없는 산에 비가 내리면= 지난 25일 오후 중태마을은 피해목들을 베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불에 그슬려 새까맣게 탄 소나무들이 트럭에 실려 나왔다. 뒷산을 가득 메웠던 나무들은 밑동만이 남았다.

 

기자는 약 100일 전 중학생 때부터 살던 집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최순철(61)씨를 기억한다. 그의 집이 있던 곳은 피해목을 쌓아 놓는 공간이 됐다.

 

초록빛은 온데간데없고 회색빛 땅에 나무 밑동만 박힌 언덕 아래로 주민 정모(67)씨의 집이 있었다. 그는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산능성이를 바라봤다. 황량한 산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산사태에 대한 근심이 쏟아졌다.

 

정 씨는 “얼마 전 장마가 시작되며 주말에 많은 비가 왔을 때 마을 전체에 대피령이 내려졌다”며 “작년까진 비가 많이 오더라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산불로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가 우려되는 탓에 피해지역 주민들을 이동시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날 대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집에 계신 90대 부모님을 모시고 이동했는데 두 분 모두 거동이 불편하셔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며 “앞으로 몇 년이고 비가 올 때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정씨의 집 오른편, 산으로 이어지는 20m가량의 경사로에는 흙과 돌멩이가 쌓여 있었다. 산에서 흘러내린 것이다. 정씨는 “이제 막 장마가 시작했는데 벌써 이런 모습이 보이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산으로 이어지는 땅 일부가 다져진 채로 경사가 완만해져 있었다. 흙이 쉽게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정씨가 직접 세운 방책이다.

 

외공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만난 안동석(78)씨도 산사태를 우려했다. 안 씨는 “밑에 박혀있는 뿌리가 건재해 올해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내년, 내후년에 뿌리가 썩기 시작하면 산사태 위험이 크게 닥쳐올 수 있다”고 했다.

◇언제 집에 돌아 가나= 마을 주민 정종대(82)씨는 도로 옆 풀숲 사이에 있는 플라스틱 통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노인 몸집만한 통들이 놓여 있었다. ‘무엇을 담은 통이냐’고 묻자 정씨는 “구호 물품을 놔둘 곳이 없어서 여기다가 쌓아두고 있다”고 답했다.

 

정씨의 집이 있던 곳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널찍한 터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가로세로 길이 20~30m 정도의 공간엔 잿빛 흙만 남았다.

 

불길에 집을 통째로 잃은 정씨는 다른 이재민들과 함께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선비 문화를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주로 지내는 곳”이라며 “오랜 시간 동안 머무니 그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쓴웃음을 보였다.

 

이날은 경남도에서 피해 주택 복원을 위한 착공을 시작한 이튿날이었지만, 별채를 포함해 세 채의 집을 잃은 정씨의 차례는 아직이었다. 번호표가 없으니 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경남도 관계자들과 착공 관련 이야기를 몇 번 나눴지만 아직 설계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추석 전까지 피해 주택 착공을 모두 마친다는 계획인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라며 한숨 쉬었다.

 

또 “건너편 마을 집에서 착공을 시작했는데 그곳은 평소 주민이 살지 않는 집이라는 말이 있다”며 “급한 사람부터 먼저 살 곳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