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전산망의 심장격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불이 나 정부 주요 행정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는 신속한 행정서비스 복구를 약속했지만, 화재에 직·간접적 피해를 본 전산시스템들의 정상 가동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추석 연휴와 맞물린 민원·물류대란도 우려된다.
소방당국이 합동감식으로 본격적인 화재 원인 조사에 돌입했지만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와 2023년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등 유사 문제가 되풀이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두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28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8시 20분쯤 대전 유성구 화암동 국정자원 본원 5층 전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로 불이 나 22시간 만인 이튿날 오후 6시쯤 완전 진화됐다. 배터리 교체를 위해 전원을 차단하던 작업 중 발생한 화재로, 이 과정에서 업체 직원이 얼굴과 팔에 1도 화상을 입었다.
국정자원은 정부의 전산시스템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등을 대규모로 보유·관리하는 시설로, 행정안전부 소속 기관이다. 이번 화재로 내부에 있던 리튬이온 배터리 팩 384개가 모두 소실됐고, 그 여파로 정부 업무시스템 674개가 가동이 중단돼 각종 정부 온라인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정부 온라인 민원시스템 정부24와 모바일신분증 등 대국민 행정서비스부터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 홈페이지, 우체국 금융·우편 서비스 등은 물론, 국가 전산망을 활용하는 광역·기초자치단체 서비스까지 광범위한 전산망이 멈춰 혼란을 키웠다.
일부 시스템은 복구돼 재개했지만, 여전히 접속 불가한 서비스도 적지 않아 불편이 감지된다. 정부와 각 지자체 등은 비상대응체계를 가동, 행정 공백 최소화에 나섰지만 시스템 완전 복구에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발생한 화재에 우편·물류 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경찰은 이날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날에 이어 2차 합동감식에 돌입, 불이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화재 발생 경위를 살피고 있다. 전산실에서 반출한 배터리들은 2-3일 안정화 작업을 거친 뒤 국과수에 감식 의뢰할 방침이다.
20명 규모의 경찰 전담수사팀도 꾸려졌다. 전담팀은 불이 난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한 이유를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한편, 관리자 등을 대상으로도 배터리 관리상 문제 또는 안전조치 여부를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 화재의 원인으로 배터리 노후화와 작업 과정상 실수 등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반복되는 지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23년 11월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발생한 지 2년 채 안 돼 비슷한 사고가 재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네트워크 장비 불량으로 일주일간 전산망 마비가 지속돼 기본적인 장비 점검 등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정부판 카카오 먹통 사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3년 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 때 강도 높은 대비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정작 정부 시스템은 이 같은 재난상황의 대비책이 미흡했던 셈이다. 이번 국정자원 전산망 마비 사태 역시 시스템 보관·관리의 이중화 체계가 부족해 피해가 커졌다는 한계가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