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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팔도건축기행·(49)] 포천아트밸리

자연을 감쪽같이 흉내… 천지개벽 ‘건축 아이러니’

한때 호황 최상품 화강석 ‘포천석’ 생산지
흉측한 생채기만 남자 ‘문화공간’ 역발상
폐석산, 인공호 ‘천주호’와 절묘한 자연미
‘자연과 교감’ 문화시설도 대부분 목재로

문화공간 재탄생 ‘스토리텔링’ 위로·치유
사시사철 예술 흐르는 한국 ‘나오시마섬’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건축의 거장 안토니 가우디(1985~1926)는 이처럼 자연을 건축의 교본으로 삼았다. 자연을 이상적인 건축으로 추앙했던 셈이다. 이같은 면에서 포천에 세워진 ‘포천아트밸리’는 참 아이러니한 건축이다. 인간의 손으로 파괴한 자연을 인간의 손으로 재건했다는 게 묘한 뒷맛을 남긴다. 하지만 가우디의 말처럼 최고의 건축은 자연인지라, 비록 흉터는 있지만 원래 자연이었던 이곳은 지금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 포천아트밸리의 탄생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포천은 중생대 화산폭발의 흔적이 남아 예로부터 질 좋은 화강석 생산지로 유명했다. 일명 ‘포천석’이라 불리는 화강석은 고급 건축 마감재로 쓰였다. 포천석 생산지 중에서도 신북면은 특히 최상품 산지로 인정을 받은 덕에 1980년대 말까지 포천석 채굴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며 채굴량이 급격히 줄고 저가 중국산이 물밀듯이 수입되면서 점차 사양길을 걷게 됐다. 이 때문에 신북면 일대는 화강석을 캐다가 버려두고 간 폐석산으로 황폐화되다시피했다. 여기저기 깎여나간 산들은 흉측한 생채기를 드러낸 채 버려져 주변 경관을 망쳐 놓는다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문제 해결을 고민하던 포천시는 차라리 폐석산을 문화공간으로 개조하자는 역발상을 하면서 각종 문화시설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009년 그렇게 포천아트밸리가 탄생하게 된다.

 

■ 상처 난 자연도 훌륭한 건축이 된다

 

천주호 주변에 조성된 조각공원.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들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포천시 제공

 

한번 훼손된 자연은 완벽히 복구할 수 없다. 신의 창조물이기에 감히 불가능한 일이다. 포천아트밸리 역시 복구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모방에 가깝다.

 

포천아트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천주호’는 인공호수다. 화강석을 캐다 생긴 울퉁불퉁 대형 구덩이가 모티브가 됐다. 이곳에 물을 담으면 호수처럼 보일 것이란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실제로 구덩이를 다듬어 지하수와 빗물을 채우니 멋진 호수가 만들어졌다. 마치 원래 있던 호수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호수는 채굴로 산자락이 깎여나간 수직 절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생각지 못한 자연미를 뿜어낸다.

 

사실 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원래 계곡이 있었던 건 아니다. 채굴 기계의 고강도 칼날에 산이 깎여나가며 생긴 자국으로 알고 보면 깊은 상처다. 인공적이지만 인공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의아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어쩌면 아트밸리에 건축의 미학을 집약했다고 볼 수 있다.

 

포천아트밸리의 또 다른 아이러니라면 건축자재를 생산하던 곳이 건축으로 재탄생한 사실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처 난 자연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비롯된 우연의 결과다.

 

천주호 주변에 조성된 조각공원과 각종 공연장은 인공호수와 석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공연장에서 바라보면 천주호와 석벽은 멋진 배경이 될 뿐 아니라 음향장치가 된다. 시 관계자는 “공연장은 석벽에 의한 음향효과를 고려해 설계됐다”며 “이곳에서는 독특한 울림 현상이 나타나 더 큰 호소력을 만들어낸다”고 귀띔했다.

 

투박스러운 듯한 석벽은 오히려 자연스러움으로 연출돼 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싸며 하나의 거대한 자연 공연장이 된다.

 

■ 건축에 숨은 ‘치유의 힘’

 

포천아트밸리의 중앙에 자리한 천주호는 인공호수로, 화강석 채석 과정에서 생겨난 구덩이에 빗물과 지하수를 받아 만들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천시 제공

 

건축가와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이른바 ‘그린 디자인’ 효과로, 녹색 식물과 자연음, 개방적 공간, 유기적 형태, 자연 색상 등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포천아트밸리는 설계 때부터 이런 점들이 고려됐다. 시 관계자는 “기획단계에서 100여 명의 자문위원을 두고 공익성을 논의했는데 이때 나온 안이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치유의 시간을 누리는 공간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곳은 자연물에 인공물을 덧댄 구조다. 석산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놔둔 채 필요한 문화시설을 군데군데 조화롭게 배치해 놓은 느낌이다. 어디서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인공물인 문화시설도 대부분 목재가 쓰였고 색상도 눈에 피로감을 덜 주도록 고려됐다. 많은 전문가의 자문이 설계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에 한번 더 치유를 받는다. 포천아트밸리의 탄생비화는 ‘건축의 화룡점정’이라 말할만큼 힘을 가진다.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투성이 폐석산이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이곳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왜 한 해 수십만 명이 이곳을 찾아 위로받고 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포천아트밸리 관계자는 “많은 관람객이 이곳의 풍경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곳이 조성되게 된 뒷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 아픔을 딛고 내일을 보는 공간

 

포천아트밸리 천주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천문대. 이곳은 원래 전시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해 건축됐다. /포천시 제공

 

포천아트밸리는 이름 그대로 지역 예술의 성지가 되고 있다. 봄과 가을이면 이곳에 문화예술공연이 줄을 잇는다. 현재는 지역예술인뿐 아니라 국내 유명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콘서트나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다. 수많은 예술인의 작품과 공연이 이곳을 더욱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국내에 그리 흔치 않다. 전국적인 명소로 이름을 알리면서 언젠부턴가 한국의 ‘나오시마섬’이란 별명을 얻기 시작했다. 일본 나오시마는 구리제련소가 있던 볼품없는 섬에 예술인이 하나둘씩 찾으면서 지금은 ‘아트섬’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공연과 전시회가 갈수록 풍부해지는 포천아트밸리도 사시사철 예술이 흐르는 계곡을 꿈꾸고 있다.

 

포천아트밸리에서 최근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하나 더 늘었다. 먼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천주산 천문대’는 이곳의 새로운 자랑거리다. 전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천문대로 개조했다. 전망 좋은 산봉우리 천문대에서 먼 은하의 별자리를 관찰하는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여름방학과 휴가철이면 별자리를 보려는 어린이와 청소년, 연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빈다. 숲과 석벽 위에 자리한 천문대는 마치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민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한때 버림받은 폐석산은 점점 과거의 상처를 예술과 문화로 치유하고 먼 미래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가우디가 말했듯 신이 만든 건축은 완벽했고 때론 진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