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文香이 흐르는 문학관을 찾아서] 고창 미당시문학관
2000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는 70년 창작활동 기간 시집 15권, 시 1000여 편을 발표했다. 한국인들이 애송하는 ‘국화옆에서’를 비롯해 ‘푸르른 날’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에게는 친일과 군사독재 부역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바로 미당(未堂) 서정주다. 한국 문학사에서 미당 서정주만큼 논란이 되는 문인도 드물다. 뛰어난 문재를 지녔지만 그의 행적은 비판을 면치 못했다. 시인 서정주를 떠올리면 늘 감탄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최고의 서정시인이라는 상찬 이면에 드리워진 부끄러운 행적 때문이다. “시는 시이고 삶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행일치(詩行一致)를 견지했던 문인들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미당의 행적은 분명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한국 시사(詩史)에서 최고의 서정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미당을 친일의 이유로 문학사에서 배제한다면 한국문학의 공백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고창에 갈 때면 언제나 선운사와 미당이 떠오른다. ‘선운사 동구’라는 시는 고창과 함께 동일선상에서 환기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