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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예향 초대석] 오페라 ‘박하사탕’ 제작한 작곡가 이건용

“광주는 ‘생명의 힘’ 확인해 주는 원천같은 것”
‘80년 5월 광주’ 아픔·사랑 그린
오페라 ‘박하사탕’ 서울서 초연
‘광주’에 대한 고민 음악에 담아
‘예술가로서 전환점’으로 작용

 

<이건용, 오페라 ‘박하사탕’>이 지난달 27~2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정식 초연됐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광주 문예회관과 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청년시절 끌어안은 ‘광주’의 아픔과 사랑을 오페라 ‘박하사탕’에 녹여낸 한국 창작음악계의 거장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작곡가를 만나 음악인생과 작품세계에 대해 들었다.

◇‘80년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오페라 초연=“…그러나 사람은, 삶은 그렇게 비천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으니까. 그것이 제가 80년 5월 광주에서 본 것입니다. 그것은 그 후 40년 동안 저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을 환기해주고 생명의 힘을 확인해 주는 원천 같은 것이었습니다. 작곡가로서 그 빚을 이번에 갚습니다.”

 

 

작곡가 이건용(74)은 오페라 ‘박하사탕’ 작곡을 마친 후 ‘작곡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악보 첫 페이지에 육필로 헌사(獻辭)를 썼다.

‘이 작품을 1980년 5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빛의 고을을 지킨 광주시민들에게 바친다.’

30대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80년 5월 광주’를 가슴속에 품어왔던 한 작곡가의 예술적 집념과 진정성이 한 문장에 스며들어 있다.

광주 시립 오페라단이 제작한 오페라 ‘박하사탕’은 지난 2000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감독 이창동)를 원작으로 작곡가 이건용(예술감독)과 극작가겸 연출가 조광화(연출)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주인공 ‘영호’를 중심으로 시간을 역으로 거슬러가는 영화의 전개방식을 따르면서도 ‘강 형사’(강 대위)와 ‘박명숙’, ‘함지박’ 등 영화에 없는 개성적인 조연 캐릭터를 새로 설정해 ‘오페라의 문법’으로 3시간(인터미션 포함)동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총 2부 6장으로 구성된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는 ‘5장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앞’ 장면이다. 리어카에 주먹밥을 싣고 도청 앞에 온 ‘함지박’과 어머니들, 시위대원들은 ‘주먹밥’을 합창한다. 오랜 시간 ‘광주’를 가슴속에 품어왔던 작곡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자 했을까?

“이 작품의 테마는 한 인간이 어떻게 붕괴하게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과 삶이 투쟁하면서 그래도 삶의 힘이 얼마나 강하냐 하는걸 보여주는 쪽으로 테마가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힘, 생명을 추구하고 삶을 살게 만드는 힘이 이렇게 강렬하게 그때 드러났었다, 얼마나 고귀한 사건이고 우리에게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느냐 그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80년 5월 광주는 예술가로서의 전환점”=‘80년 5월 광주’는 작곡가 이건용에게 언젠가 음악으로 갚아야 할 ‘빚’이면서 ‘예술가로서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듬해 터진 5·18은 충격적이었다. 이후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하의 엄혹한 시간을 견디면서 30대 젊은 작곡가로서 고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광주’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80년 5월 광주로부터 이어오는 1987년까지의 과정 동안에 괴로운 거죠. (그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뻔히 알게 됐고,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할 때) 수업 중에도 학생들이 잡혀가는 걸 보면서 ‘난 모른다’ 하기에는 참 어려운 거예요. 당연히 ‘넌 작곡가인데 음악이 뭘 하는 거냐’ 질문을 받았을 거 아닙니까. 그런 질문을 받다보니 ‘음악으로 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시도들을 하면서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어떻게’라는 것이 나오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는 소위 ‘거대담론’을 하게 된 거고 그게 한 작가의 어떤 작품세계를 만드는 거죠. 제 작품은 그때부터 확 달라지면서 새로운 경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는 “오페라 ‘박하사탕’ 같은 곡을 쓰게 된 어떤 갈림길이 그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한국음악 창작을 선언한 작곡동인 ‘제3세대’ 활동을 하던 1985년에 대우합창단 위촉을 받아 ‘광주’를 의식하고 쓴 작품이 ‘성경’ 시편(詩篇)에서 가사를 취한합창곡 ‘분노의 시’이다.

“복수의 하나님, 나타나소서 일어나소서 … 당신의 손으로 저 놈들을 불구덩이에 넣어주십시오, 씨를 말려주십시오.”

그는 ‘무엇을’과 ‘어떻게’에 대한 음악적 고민 속에서 ‘80년 오월 광주’에 작업을 하나씩 내놓았다. 2017년 초연된 실내악 칸타타 ‘눈물비’와 2019년 5월 광주에서 초연된 ‘5월을 위한 장엄서곡’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오페라 ‘박하사탕’으로 이어졌다.

특히 ‘4장 1987년 5월 즈음 경찰서’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삶은 아름다워’에 작곡가의 이러한 생각이 잘 담겨있다. 1980년 5월에 어머니를 잃은 광주출신 여대생 ‘명숙’과 여대생들이 부르는 아리아이다. 작곡가가 ‘작곡노트’에서 밝혔듯이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라는 오페라의 메시지가 스며들어 있다.

“상처가 깊다는 말은 견딘 세월 또한 깊다는 것/ 상처가 많다는 것은 이겨낸 승리가 많다는 말/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아한 진주처럼/ 우리는 강하고 우리는 아름다워 삶을 사랑하니까/ (합창) 삶은 아름다워 삶은 아름다워라.”

 

 

 

◇한국적인 창작오페라를 위하여=작곡가 이건용은 2000년대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총장(2002~2006년),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2012~2017년)을 역임하며 작곡가(예술가)-교육자-행정가로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작곡가로서 최초로 맡았던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 때는 ‘음악을 아는 대본가’와 ‘언어를 아는 작곡가’가 협업하는 오페라 창작모임인 ‘세종 카메라타(Camerata)’를 만들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좋은 대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달이 물로 걸어오듯’(대본 고연옥·작곡 최우정), ‘열여섯 번의 안녕’(대본 박춘근·작곡 최명훈) 등을 무대에 올려 한국 창작오페라의 새 지평을 열었다.

슈베르트 가곡에 매료돼 작곡가의 길로 접어들었던 이건용의 음악세계는 ‘지금, 여기’의 시대적 고민 속에서 유장한 강을 따라 바다에 이르렀다. 그의 작품들에는 ‘하나의 달이 천개의 강에 빛나듯’(月印千江), 삶의 이야기와 시대정신, ‘지금, 여기’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1994년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칸타나 ‘들의 노래’를 비롯해 2015년 서울 경동교회에서 공연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칸타타 ‘정의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 김남주 시인의 ‘학살1’과 고정희 시인의 ‘학살당한 이의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모티브로 한 칸타타 ‘눈물비’ 등 당대와 소통하며 음악을 통한 현시대의 발언과 함께 위로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에게 “음악이란 삶의 방식이자 내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이자 분신”과 다름없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음악작업이 많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1800년대 조선에 기독교가 유입되던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오페라 작품을 구상중이다. 대본은 이미 써놓았고, 제목은 (가제)‘일주일 동안의 일식(日蝕)’으로 정했다.

“내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니까 1800년대 사람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이런 조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난 너무 모르고 슈베르트와 도스토예프스키 밖에 몰랐구나’ 하는 생각에 그 당시 빛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