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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섬세한 악기같은 예술단원, 험하게 다뤄지고 쉽게 버려지다

열악한 노동환경 '끝없는 도돌이표'

"그분들은 사실 몸이 악기입니다. 그런데 악기가 고장이 났는데 고장 난 악기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지자체 문화재단에 대한 의회 행정사무감사가 열린 날. '예술단 상임화'와 관련한 이슈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몸이 악기… 고장 난 악기 못 써" … 한 문화재단 대표 '소모품'에 비유

 

한 시의원은 문화재단 대표에게 "상임화를 하면 정년 될 때까지 나중에 실력이 부족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정년 끝까지 가야 된다는 얘기 아니에요" 등을 질문했고, 대표는 "(단원들이)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위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예술인의 몸은 흔히 악기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소모품인 악기를 사람과 동일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공식 석상에서 위와 같이 발언한 문화재단 대표 역시 단원의 '기량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 쉬운 해고 vs 기량 향상

문제는 예술단원의 기량을 평가하는 '평정 제도'와 관련한 갈등이 경기도 지자체 예술단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단 소속 단원들은 대체로 평정 시스템이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반대로 운영 주체 측은 단원들의 실력을 향상·유지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평가 절차라고 인식했다.

최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 해촉돼 노사 간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는 양측의 이러한 인식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 단원은 지난 24년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했으나, 지난달 3일 경기아트센터로부터 해촉 통보를 받았다. 2018년과 2020년 종합평정에서 기준 점수 미달로 연달아 '경고'를 받은 탓이다.

이 단원은 2번째 경고를 받은 이후 3개월이 지나 재평가를 받았지만, 해당 평가에서도 기준 점수를 충족하진 못했다. 

 

 

 

1~2년 주기 '평정제도' 곳곳 갈등… 정성평가 큰 영향 '공정성 논란'

" 지휘자·예술감독도 유사한 시스템 적용을" 81.7% '상호평가' 요구

 


노동조합 측은 "평정이 기량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평정 결과에 따라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단원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고 재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단원들은 (평정을) '기량 향상'보다 '쉬운 해고'로밖에 느낄 수 없다"고 전했다.

경기아트센터는 기량 발전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아트센터 측은 "2년마다 열리는 종합평정에서 2회 경고를 받은 단원에게는 3개월간의 시간을 추가로 준 뒤 재평가를 하고 있다. 총 4년 3개월의 시간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라며 "센터도 단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이지, 단순 해촉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간과 방법 등은 저마다 다르지만, 지자체 예술단은 통상 1~2년 주기로 단원들의 실력과 근무태도 등을 평가하고 있다.

평정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갈등 요인은 결과 그 자체보다 결과를 산출하는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단원들은 객관적 지표를 활용한 정량평가보다 지휘자 혹은 예술감독 등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한 정성평가가 평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평가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인일보가 지난달 18~24일 네이버 오피스 폼을 이용해 '경기도 지자체 예술단 노동 실태조사'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81.7%(414명)가 지휘자 혹은 예술감독에게도 단원들이 받는 유사한 평가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대체로 일방적인 평가의 부당함과 상호평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평정과 관련해 예술단 내 만연한 불신과 갈등 요인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 노사는 지난 2015년 '예술단 단원평가제도 노·사합의서'를 체결했다.

양측은 단원평가 방식을 '상시평가'와 '다면평가'로 합의했다. '조직성실도' '단체공연활동' '예술적 자기 계발' 등의 평정 지표도 함께 만들었다.

또한, 악장과 지도단원, 단원대표, 노동조합 대표 등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고자 했다. 평가의 목표는 단원 평가 제도의 본래 목적인 '공연 기량 향상'이었다.

■ '임금체불, 법인화 갈등'…바람 잘 날 없는 예술단

지난해 7월 파주시립예술단 뮤지컬단 소속 일부 단원들은 파주시 감사과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뮤지컬단의 비민주적인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임산부에 대한 모성보호 위반, 사비로 공연에 필요한 물품을 사는 관행 등을 문제로 제기했다.

 

직장내 괴롭힘·임산부 보호 위반·사비로 공연물품 구매 관행 '진정서'

연장근무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는 등 비민주적·부실운영 개선 목소리


이들이 낸 진정서에 따르면 한 단원은 임신 초기 위험한 안무를 소화하다 하혈을 하는가 하면, 임신 9개월 차에도 몸에 딱 붙는 의상을 입고 공연에 참여했다. 또한, 이들은 단원이 무대 의상을 직접 구매하고, 추후 현금으로 돌려받는 식의 물품 구매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3개월간의 파주시 감사 결과, 모성보호 위반 부분과 관련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다. 시 감사과는 물품 구매 과정뿐만 아니라 복무관리, 인사, 평정 등 예술단 운영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감독 부서에 주의를 주고 개선을 권고하는 행정 처분을 내렸다. 

 

 

또 올해 초 파주시는 단원들의 연장근무 등에 대한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중부고용노동청 고양지청 측으로부터 시정 지시를 받기도 했다.

파주시립예술단 뮤지컬단 한 단원은 "예술단이 비민주적이고,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다"며 "공연 스태프가 없어 연기자들이 세트나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 관리하는데 공연 중에 천장에 달려 있던 판자가 갑자기 떨어져 사람이 다칠 뻔한 사고도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파주시 관계자는 "그동안 예술단이 잘못 관리되었던 점이 있다. 올해 초부터 문제로 지적된 기존 운영 방식 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천시립예술단은 최근 '재단 법인화'와 관련한 갈등을 겪었다. 요지는 이렇다. 부천시는 오는 2023년 개관을 목표로 클래식 특화공연장인 부천아트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간을 전문적으로 운영할 재단법인도 올 하반기께 출범할 예정이다.

부천시립예술단 노동조합 측은 예술단 운영도 새로 설립되는 재단법인이 맡게 될 거라고 판단했다. 지자체가 직접 예술단을 운영하다 법인화된 앞선 사례들이 있고, 부천시 안팎에서 법인화와 관련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게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원들과 논의 없이 '재단 법인화' 진행… 고용·처우 문제 우려 마찰

'연봉 1800만원' 임금 생활 버거워 "문화복지에 초점 맞춰 운영돼야"


특히, 예술단 운영 주체가 바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고용, 처우 등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단원들과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이 갈등 확산의 주요 원인이었다.

부천시 측은 "부천시의 생각은 문화예술회관만의 법인화였다"며 "현재 예술단 법인화와 관련해 검토하는 바가 없고,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지자체 예술단은 문화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지난해 3월 경기도 지자체 예술단 노조를 아우르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기문화예술지부'가 출범했다. 예술단 운영과 관련한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시기다. 현재 지부에는 14개 예술단 소속 단원 9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예술인인 이들이 노조라는 이름 아래 모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성남시립예술단 소속인 김희중 초대 지부장은 '열악한 처우'를 꼽았다. → 그래프 참조

 

 

 

김희중 지부장은 "임금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 지자체 예술단 연봉은 1천800만원 정도다. 누군가는 레슨을 해서 돈을 벌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실제 레슨을 하는 단원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래서 개별 연습을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협업하는 시간 3~5시간 정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만 가지고 시간당 임금이 높다고 접근하면 앞으로도 단원들은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정제도와 관련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김 지부장은 "평가 당일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는데, 평소에 아무리 열심히 근무해도 그 3분을 통해 임금이 몇 백만원 왔다 갔다 하거나 심지어는 해고될 수도 있다"며 "단원들은 공연이 아닌 오디션을 위한 연습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공연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자체 예술단이 존재하는 이유를 새삼 되새겼다. 정작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이 설 무대가 점점 작아지고 있음을 느껴서다.

김 지부장은 "지자체 예술단원과 프리랜서 예술노동자가 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국공립 예술단체는 시민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높여주는 '문화 복지'에 초점을 맞춰 운영돼야 한다"며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더 많은 공연을 하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문화사업 강좌를 열 수도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와 각 지자체가 예술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는 "도내 31개 시·군 중에서도 예술단이 없는 곳이 있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지자체와 교류를 하거나 경기도 차원에서 국공립 예술단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