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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인천 차이나타운내 '회의청' 건물, 청국 아닌 조선 최초 전보국 이었다

 

 

인천차이나타운 내 옛 청국영사관 부속 건물로 알려졌던 회의청(會議廳)이 실제로는 개항기 조선이 운영했던 최초의 전보국인 한성전보총국 인천분국이었고, 건립 시기도 기존 추정 시기보다 훨씬 앞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천 개항장 역사와 한국의 통신 역사 속 빈칸을 채울 중요한 연구로 주목된다.

화교 3세인 주희풍 인천화교학교 행정 부이사장이 대만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당안관 등에서 찾은 인천의 옛 중국조계 지도와 각종 문헌을 종합한 결과, 1885년 음력 9월28일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서울 간 전신이 개통하면서 설치된 한성전보총국 인천분국 위치는 현 인천화교협회 건물 뒤 회의청이라 불린 건물이라고 결론을 냈다.

주희풍 화교학교 부이사장 주장
건립시기도 추정보다 훨씬 앞서
인천 개항장·통신 역사 연구 가치

 


현 인천화교협회와 인천화교학교 일대는 지번상 '인천 중구 선린동 8번지'로 개항기부터 130년 넘게 '하나의 지번'을 유지하고 있다. 개항기 인천의 중국조계에 설치된 중국 관청(영사관) 내에는 본청, 순포청, 전보국 등이 있었다.

중국 관청 위치는 현 선린동 8번지 일대로 알려졌으나 전보국 건물이 어디인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주희풍 부이사장은 1890년과 1892년 각각 중국에서 제작한 인천의 중국조계 지도를 토대로 한성전보총국 인천분국 설치 장소를 현 인천화교협회 뒤편 건물로 특정했다.

한성전보총국은 1885년 음력 6월6일 조선과 중국이 체결한 '중조전선조약'에 따라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자금과 인력을 빌려 설치했다고 고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이 건물은 그동안 회의청이라 불리며 1910년 건립된 중국영사관 부속 건물로 추정됐다. 건물 명칭처럼 회의를 했던 공간인지 증명할 기록은 없었다. 그러나 이 건축물은 중국영사관 부속 건물이 아닌 조선의 공공 재산이며, 건립 시기도 1885년으로 앞선다는 게 주희풍 부이사장 주장이다.

한성전보총국 인천분국 건물은 청일전쟁(1894~1895) 이후 방치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만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가 보유한 1905년 문헌에 따르면 인천 화교 상인들은 방치된 전보국 건물을 화상회관(華商會館)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영사관에 요청했고, 현재까지도 그 자리에 인천화교협회가 있다. 해당 건물이 중국 공관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문헌에만 존재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보국 위치를 찾았다는 점과 함께 베일에 싸였던 근대건축물 연혁을 보다 명확하게 보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희풍 부이사장은 "현재 선린동 8번지에 위치한 인천화교협회 회의청은 같은 시기 인천에 다른 전보국이 없었다면 한성전보총국 인천분국으로서 1885년 완공했다고 봐야 한다"며 "회의청이란 명칭은 1950년대 화교자치구(인천화교협회 전신) 때 회의하던 용도로 건물을 쓰면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건립때부터 조선 소유… 1897년 中문서·주한 日공사관에도 기록)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