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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화가의 ‘따뜻한 나눔’ 이민 작가 미혼모에 1억 기부

양림동 연작 99점 제작 판매
수익금 전액 전달
“예술가 기부 확산 계기됐으면”

 

 

지난 2018년 12월, 26년만에 고향 광주에서 개인전을 갖게 된 작가는 마음이 설레었다. 전시회 장소는 남구청이 운영하는 양림미술관. 기존 작품을 거는 대신, 그는 조금은 ‘특별한’ 전시를 열고 싶었다. 전시가 결정된 후 그는 수차례 내려와 양림동 구석구석을 스케치했고, 양림동을 담은 신작 26점으로만 전시회를 꾸렸다. 양림동 전시는 그의 그림 인생 뿐 아니라,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눔’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줬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이민(58·사진) 판화 작가가 지역 미혼모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한다. 지역에서 예술가가 거액을 기부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특히 동료 예술가들이나 문화 관련 기관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전 후 갤러리 관계자에게 양림동을 그려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게 제 업이고, 전시 기회를 준 것만도 감사한데 너무 고마워하니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새삼스레 제가 광주를 위해 뭘 해본 게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처음에는 양림동에 아뜰리에를 만들고, 나중에 이 공간을 무료로 기부하자 싶었다. 그러다 미혼모를 떠올렸다. 태어난 생명을 귀히 여겨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결혼 26년 차지만 아이가 없는 그에게 아이를 키우는 이들은 모두 위대해 보였다.
 

그는 양림동 연작 99점을 제작하기로 했다. 2019년 1월 15일 광주은행 양림동 지점에서 통장을 만든 후 판매 수익금은 단 1원도 쓰지 않고 모두 적립, 1억원을 모으자 마음 먹었다.

2021년 2월 99점을 모두 제작했고 지금까지 83점이 팔렸다 가격대는 30만원에서 700만원까지로 판매금액은 8600만원이다. 대형 작품을 제작하면 돈을 좀 더 쉽게 모을 수 있었지만, 그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99명의 마음을 모아” 기금을 마련하고 싶었다. 구입자들이 자신의 뜻에 동조하고 자신을 통해 함께 사회에 환원하는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서울, 제주를 비롯해 구미 율곡 고등학교 갤러리, 뮌헨의 고성과 갤러리 등 여러 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판매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양림동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서였다.

이 작가는 다음달 광주전남사회공동복지모금회 아너스 회원(1억원 이상 기부자)에 정식가입하며 기부금은 미혼모 시설인 인애복지원 등 3곳에 지정기탁될 예정이다. 아너스 회원 134명 중 문화예술인은 그가 유일하다.

 

 

화려한 색감의 그의 작품은 회화처럼도, 판화처럼도 보인다. 거칠거칠한 판화의 매력을 살림과 동시에 기존 판화보다 색 표현이 자유로워 다채롭고 명징한 색감을 얻어낸 작품들이다. 전시작들은 판화와 서양화 기법을 결합한 것으로, 상표 등록까지 마친 ‘판타블로’(Pan Tableau) 기법으로 제작됐다. 조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일본 다마 미술대학원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일본에서 활동했다. 광주시미술대전과 무등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이중섭미술관 레지던시가 계기가 돼 제주와 경기도 안양을 오가며 작업 중이다.

이 작가는 오는 9월 양림동 그림 99점과 글을 담은 책 ‘펭귄마을, 이민 가다’(스타북스)를 펴낼 예정이다. 양림동을 찾는 이들이 길라잡이처럼 활용하면 좋을 듯 싶어서다.

 

 

 

“예술가들의 삶은 녹록치 않지요. 힘든 면도 많습니다. 이번 기부가 예술가들도 사회에 도네이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작은 힘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기부는 기업이나 전문직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예술인들도 사회의 한 파트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지역에서 받았던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면 어떨까싶네요.”

이 작가는 “이민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하는 마음을 좀 더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