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시는 요즘 “내년 3월까지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한급수를 해야한다”며 시민들에게 물 절약을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고 있다.
갑작스런 ‘제한급수’ 메시지를 받아 든 시민들은 당황스럽고,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제한급수는 상수도 시설이 열악하고, 개발이 더딘 일부 국가나 섬 지역에서나 있는 현상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뭄하면 떠오르는 도심 내 가로수 고사나 하천 물이 바짝 마르는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상에서도 ‘심각한 가뭄’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시민들의 얘기이다.
특히 상당수 시민은 올 들어 전국적으로 ‘가뭄’이라는 단어는커녕 오히려 ‘물 난리 피해’ 등이 주요 뉴스를 장식했던 터라 제한급수를 운운하는 광주시의 메시지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김현숙(43·광주시 북구)씨는 “거주하는 인근 석곡천에 물이 여전히 흐르고, 무등산 자락이나 도심 내 가로수도 푸르고, 단풍도 곱게 물들었는데 갑자기 제한급수라는 말이 나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가뭄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과 걱정에도, 광주시는 현재로선 물 절약과 함께 큰 비를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광주를 덮친 이례적인 가뭄 원인과 향후 전망 등을 짚어봤다.
◇비 내리지 않는 광주·전남=올해 1~10월 기준 광주·전남에는 평년 강수량의 60% 안팎의 비가 내렸다. 광주지방기상청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광주·전남에 내린 강수량은 총 786.1㎜로, 평년(1991년부터 2021년까지의 평균) 강수량(1304.8㎜) 대비 60.2% 수준이라고 9일 밝혔다.
특히 올해는 강수량을 집계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광주·전남의 강수량이 제일 낮은 해를 기록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관측이래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의 강수량 차이도 2번째로 컸다.
기상청은 일단 올 여름 장마기간 중부지방에 유례 없는 물폭탄이 쏟아진 반면 광주·전남에는 정체 전선이 머무르지 않은 탓에 비가 부족했던 것을 가뭄의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평년 장마기간 광주·전남에는 평균 338.7㎜의 비가 내렸지만, 올해엔 207.1㎜의 강수량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올해 장마철 남부 가뭄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이 컸다. 기상청은 저기압을 동반한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비를 뿌린데다, 장마 중반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시적으로 확장하는 바람에 남부지방으로 강수대가 내려오지 못하고 장마전선도 소강상태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물 가득 품은 태풍 경로도 변화=올해는 가뭄해갈에 도움을 주는 태풍들도 모두 광주·전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태풍은 대부분 일본쪽으로 빠지거나, 제주도와 광주·전남, 경상도 등에 강풍과 비 피해 등을 입히는 게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유독 광주·전남을 비켜간 것이다.
막대한 피해 탓에 태풍의 접근을 꺼려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올해 광주시는 태풍이 품고 있는 풍부한 비를 내심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태풍이 23개로 평년(25.1개)보다 적은데다, 광주에 영향을 준 태풍도 거의 없었다.
올해 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는데, 광주·전남에 내린 비는 가뭄 해갈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264.3㎜에 그쳤다.
올해 태풍의 경우 경로 자체가 남부지방을 벗어나 동쪽으로 치우치거나 아예 서쪽 아래인 대만을 지나 중국쪽으로 진입하는 성향을 보이면서, 부산과 일본 등에 피해를 주는 모습을 보였다. 기상변화 등으로 앞으로도 이러한 태풍 경로가 굳혀질 경우 태풍 피해에선 벗어날 수 있겠지만, 강수량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과 우려가 나온다.
◇겨울은 더 심각한 가뭄…내년 봄 농사 망칠 수도=기상청은 “올 겨울 많은 양의 눈은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분간 광주·전남의 가뭄 현상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겨울철은 전반적으로 시베리아 대륙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데, 내년 1월께 찬 대륙성 고기압 영향으로 일시적 추위는 찾아오겠지만 강수량은 평년(21~58㎜)보다 조금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상청은 내년 2월에도 변질된 대륙 고기압의 영향을 자주 받아 맑은 날이 많겠으며, 가뭄 해갈에 영향을 미치는 눈도 영동지방으로 치우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겨울시즌 자체가 비가 적게 내리는 시기인 만큼 지금보다 가뭄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내년 봄철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에게도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기상청의 걱정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광주 도심에서 직접적으로 체감하긴 힘들겠지만 3개월 뒤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현 상황에선 물을 아껴 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