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폭염특보가 이어진 지 엿새째인 2일, 체감온도 35℃를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거리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안전 수칙’은 권고에 그칠 뿐,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쉼터 없는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들= 황모(56)씨는 창원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다. 오전부터 터미널에서 물건을 분류하기 시작하면 땀이 비처럼 흐른다. 문이 열린 작업 환경이기에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며 더위를 버틴다. 좁은 휴게실은 터미널 인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쉬는 시간도 특별히 제공되지 않는다. 분류작업을 돕는 도우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배송을 시작해도 폭염에 노출되는 환경은 다르지 않다. 차량에서 에어컨을 틀어도, 택배를 옮기기 위해 차량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정해진 시간 내에 물량을 소화하려면 가장 더운 한낮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황씨는 모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퇴근을 하고 나서야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짧았던 장마가 끝나고 이르게 폭염이 시작돼 한숨이 나온다”며 “1년 중 가장 지옥 같은 시간”이라고 토로했다.
진주의 가로청소 노동자 김모(58)씨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거리를 청소한다. 땡볕 아래 허리를 숙이고 일하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들에게는 별도의 휴게 공간이 없다. 작업 현장 인근 빌라 아래나 도로 가로수 그늘에서 잠시 몸을 식힌다. 물도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 진주시는 수건이나 장갑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복지비를 제공하지만 냉각 조끼 같은 보랭 장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올해는 회사에서 식이염수를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제공되지 않았다. 여름마다 간혹 너무 더워 쓰러질 것 같다는 동료들이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그늘에서 물을 마시고 쉬다가 다시 작업한다.
김씨는 “회사에서 물을 챙기고 다니면서 자주 마시라고, 많이 더우면 그늘에서 좀 쉬라고 교육을 하는데 그게 정확한 기준은 없으니까요. 그냥 눈치껏 하는 거죠. 너무 더워서 몸이 안 좋으면 그냥 조퇴해야죠.”

◇폭염 안전 조치 ‘권고’ 유명무실= 첫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달 27일,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에 ‘폭염 안전 5대 기본 수칙’ 매뉴얼을 배포했다. 해당 수칙에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 충분히 제공 △작업장에 에어컨, 산업용 선풍기, 그늘막 설치 △체감온도 33℃ 이상일 경우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 △냉각 의류, 냉각 조끼 등 개인용 보랭 장비 지급 △온열질환(의심)자 발생 시 즉시 119 신고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항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만 그치고 있다.
폭염 속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는 앞서 시도된 바 있다. 지난해 9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하위 규칙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폭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핵심 조항이 빠졌다. 지난 4~5월 규제개혁위원회가 ‘2시간 작업 후 20분 휴식’ 조항의 철회를 요구하며 재검토를 권고했고, 고용노동부가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산안법에 따르면 산안규칙을 위반할 시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데, 현행 규칙에는 물·그늘·휴식 제공 등 포괄적인 사업주 의무 조치만이 명시돼 있다.
이런 상황에 노동계는 강제성 없는 권고 가이드라인만으로는 폭염 피해를 막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쉴 권리를 보장하라=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2일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폭염으로부터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권고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업장에서는 예방 프로그램이나 휴식, 냉방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규제개혁위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나와 현장 노동자들이 일하는 장소에서 2시간 20분 휴식이 적절한지 검토하고 고용노동부는 폭염 위험 사업장에 대한 지도 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병훈 경남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권고에 그치는 가이드라인의 기준이 기초질환 환자, 고령노동자 등 온열질환 취약군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 “폭우가 내리면 조선소나 건설현장에서 작업 중지를 하는 것처럼 폭염 또한 재난으로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민주노총은 오는 14일까지 △폭염 휴식권 보장 △폭염사업장 감독 강화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