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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경남 곳곳 물폭탄] 산청 생비량초 대피소 가보니

돌아갈 곳 잃은 주민… 돌아갈 일상이 사라졌다

체육관 빼곡히 채운 ‘2평 쉘터’서
상능마을 주민 15가구 임시 거주
“갈라진 도로에 사다리 놓고 탈출
재해 보상·이주단지 지원 절실”

“돌아갈 집 없는, 말 그대로 ‘이재민’이 되어버린 기분을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산청 생비량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 만난 하경임(53)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휩쓴 지난 주말, 산청 상능마을 주민 15가구는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산사태로 무너진 땅과 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가 마을 전체를 덮쳤다.

 

학교 체육관에는 2평 남짓한 쉘터가 빼곡히 들어 찼다. 밤이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민들은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상우(83)씨는 마을이 무너져 내린 당일, 주민 8명과 함께 마을에 고립됐다. 오씨는 “밖에서 뭔가 뚝뚝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휴대폰을 챙겨 밖으로 나와보니 땅이 갈라지고 철근이 떨어졌다. 통신도 끊긴 상태에서 바깥으로 나온 주민들과 속절없이 갇혀버렸다”며 당시 위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주민들은 자력 탈출을 시도했다. 무너진 땅과 흘러든 토사 사이, 불과 5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평균 연령 75세인 주민들을 구조한 건 이웃 주민 홍혁기(53)씨였다. 홍씨는 “갈라진 도로 위에 사다리를 놓고 한 명씩 움직였다. 위험한 길을 피하며 풀숲을 헤치고 돌아돌아 한참 끝에 마을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토사로 파묻히고 꺼져버린 마을을 보면서 공포감에 앞서 황망함이 들었다. 대대손손 일궈 왔던 마을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이제 가장 절실한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새로운 터를 잡는 것이다. 상능마을 이장인 김광연(56)씨는 “평균연령이 높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이다.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이주단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재해보상 기준이다. 김씨는 “정부 보상 기준을 찾아보니 너무 높다. 우리가 집이나 차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고 조성해 왔던 농막 등 많은 것들이 사라졌는데 정작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장애인 아들과 함께 귀농해 6년을 농막에서 살아온 하씨 역시 해당 기준에 따르면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없다. 그는 “똑같이 이주를 해야 하는 이재민인데, 정부 기준에 따르면 나는 보상 하나 없이 길거리로 내앉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재난으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은 정식 거처가 마련되기 전까지 대피시설에서 몇 개월을 머물러야 한다. 산청군에 따르면 아직도 귀가하지 못하고 27개 대피시설에 머무는 이재민은 517명이다. 산청군 관계자는 “아직 임시거처를 마련할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