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가 최근 수원 등 전국 곳곳에서 소녀상 철거 시위와 위안부 피해자 모욕을 반복하면서 ‘처벌 사각지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대표가 과거 소녀상 훼손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에도 같은 방식의 시위를 보란듯이 이어가면서다.
고인이 된 역사 피해자를 겨냥한 모욕 행위가 제재 없이 되풀이되고 있으나 현행법상 이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는 조항은 마땅치 않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법원이 ‘무엇을 처벌할 수 있고’, ‘무엇을 다룰 수 없는지’ 드러난다.
김 대표 사건에서 재판의 쟁점은 위안부 피해자 모욕 자체가 아니라, 소녀상에 부착물을 설치한 행위가 ‘광고물 무단 부착’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지난 2024년 서울서부지법은 김 대표가 그해 3~4월 서울 은평평화공원 평화의 소녀상 얼굴에 ‘철거’라고 적힌 마스크와 검은 비닐을 씌우고 “성매매 여성”, “위안부 실상 왜곡날조 흉물철거” 등의 문구가 적힌 전단과 팸플릿을 부착한 사건에 대해 경범죄처벌법상 ‘광고물 무단 부착’ 단일 혐의만 적용해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광고’의 의미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매개체”로 폭넓게 해석하며, 정치적 주장이라 하더라도 공공장소 동상에 부착·설치한 행위는 광고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표현의 허위성이나 모욕성은 판단 대상으로 삼지 않고 시설물 관리 위반 여부만 따진 셈이다.
사자명예훼손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유족 등이 직접 고소해야만 성립하는 친고죄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고 유족이 없거나 고소를 꺼리는 경우 수사기관은 해당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처럼 피해자 상당수가 이미 별세했고 생존 유족도 공개적 법적 대응에 부담을 느끼는 사안의 특성상 적용이 까다롭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혐오 표현 자체를 단순 의견이 아니라 사회적 해악 행위로 분류하는 기준을 법체계 안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크다.
독일은 나치 범죄 부인과 집단 혐오 선동을 ‘공공의 평온을 해치는 범죄’로 규율한다. 형법 제130조(국민선동죄)는 홀로코스트 등 나치 범죄 부인·미화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을 처벌 대상으로 두고 있는데 최대 5년 이하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 증오범죄법과 주별 증오범죄 규정을 통해 특정 집단을 겨냥한 혐오 동기가 인정될 경우 가중 처벌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역사 왜곡이나 피해자 모욕을 다루는 별도 입법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1년 5·18 민주화운동 왜곡 처벌법 제정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모욕 처벌 관련 법안도 발의됐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속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은 특정 역사 피해자를 겨냥한 허위 주장과 반복적 모욕·괴롭힘 행위가 제어되지 않는 점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많고 피해 사실 공개 자체가 가족 반대 속에서 이뤄진 사례도 적지 않다”며 “유족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고령이거나 상황 인지가 어려워 유족 고소를 전제로 한 사자명예훼손 체계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한국에는 혐오·차별 표현을 어디까지 규제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위안부 피해자 모욕 같은 사안도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만 소모되고 있다”며 “독일처럼 역사 범죄 부정과 선동을 공공질서 침해로 다루는 체계와 이를 뒷받침할 차별금지법·특별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