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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창사특집] 지역사회 밝힌 69년…지역미래 밝힐 ‘100년 신문’

정론직필 한길…다양한 시리즈물로 근현대사 재조명·지역발전 견인
4·19, 5·18 등 격동의 시대 지역민들과 애환 함께한 호남역사 산증인
‘호남예술제’ ‘3·1절 전국마라톤’ 등 문화창달·지역인재 키우기 앞장

 

 

광주일보가 창사 69주년을 맞았다. 민주의 횃불이자 호남언론의 상징인 광주일보는 그 자체로 광주·전남의 역사이다.

광주일보는 불편부당(不編不黨)의 정론을 펴고, 문화창달과 지역개발을 선도하며 신뢰받는 호남 대표 일간지로서 위상을 지난 69년 간 확고히 지켜왔다.

광주일보는 한국전쟁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88올림픽, IMF외환금융위기, 한·일 월드컵, 세월호 침몰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고통과 울분, 때론 감격과 환희를 지역민과 함께 나눴다.
 

대(代)를 이어 읽는 신문, 광주일보는 언론의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발전을 이끌며 호남 대표 정론지로서 10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69년 정론직필, 100년 신문 바라본다=광주일보의 뿌리가 되는 옛 전남일보는 민족 상잔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2년 2월 11일(월) 타블로이드판 2개면을 창간호로 발행됐다.

제호(題號)는 한자 종서(縱書)로, 오른쪽 상단에 한반도 그림 위로 ‘전남일보(全南日報)’라고 썼다.

창간호는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휴전회담 내용을 ‘판문점 협상’이라는 제목의 톱기사로 싣고 사고(社告)와 함께 ‘동서남북’, ‘쌍나팔’ 등 고정란을 배치했다.

광주일보의 전신인 옛 전남일보의 창간호는 그렇게 2000여부가 인쇄돼 광주시내와 지방 곳곳에 뿌려지며 그 시작을 알렸다. 발행부수는 창간 3개월 만에 5000부로 늘었다
 

옛 전남일보의 창간은 뉴스에 굶주린 지역 주민들에겐 긴 가뭄 끝의 단비와 같았다.

1958년 5월 1일부터는 지방지 최초로 매일 4개면 발행에 들어갔으며, 1959년 1월부터는 월 2회 휴간하던 정기휴간제를 폐지하고 연중무휴로 신문을 발행했다.

1960년대 초반은 3·15부정선거와 4·19 혁명, 5·16 쿠데타 등으로 정국이 어수선했다. 옛 전남일보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3·15 부정선거의 실상과 투표장 분위기를 사실 그대로 보도했으며 4·19 혁명을 신속히 보도, 이후 지속적인 후속보도로 시민정신을 일깨웠다. 또 5월 1일부터 9회에 걸쳐 ‘광주학생 4·19발자취’라는 제목의 시리즈물을 기획, 보도했다.

1965년 6월 3일자 신문은 ‘청구권 소멸이란 무슨 말인가’라는 제목의 사설로 굴욕적인 대일 외교 협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에는 월남전의 생생한 취재를 위해 1개월간 기자를 특파하기도 했다.

 

 

1974년 10월 25일 긴급조치 1호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기자 41명이 언론자유 실천을 결의하는 등 정론직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난 1980년 5·18 민중항쟁 때는 10일 동안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언론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지만 같은 해 6월 2일 ‘아, 광주여’(옛 전남매일), ‘무등산은 알고 있다’(옛 전남일보) 등 제목의 기사로 지역민들의 피맺힌 절규를 대변했다.

대한민국을 슬픔에 휩싸이게 한 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에서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전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광장을 찾아 촛불을 들었던 지역민들의 바람을 지면에 반영했다.

다른 뿌리인 옛 전남매일신문은 4·19 직후인 1960년 9월 26일 탄생했고 옛 전남일보와 옛 전남매일신문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에 따라 ‘광주일보’라는 제호로 다시 창간됐다.

 

 

 

광주일보는 지난 2015년 5월 28일 지령(紙齡) 2만호를 발행했다. 지령은 창간이후 발행한 신문의 호수(號數)로, 2만 번째 신문을 발행했다는 의미다. 광주일보의 지령 2만호 발행은 호남지역 최초이자 전국 일간지 가운데 12번째 기록으로, 전신인 전남일보 창간호 발행 이후 63년 3개월 17일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광주일보가 창간일을 4월 20일로 잡은 것은 전신인 옛 전남일보의 법인설립 등기일(4월 20일)에서 비롯됐으며 이날 기준 21490호가 발간됐다.

◇지역 발전과 문화창달 선도=광주일보는 왜곡된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지역발전을 이끄는 다채로운 기획물로 지역언론을 선도하고 있다.

광주일보가 지난 1960년 4월 23일부터 광주 4·19 전개과정과 뒷얘기들을 기록한 ‘光州학생 4·19 발자취’라는 기획물은 ‘광주 저항의식’의 뿌리를 찾은 역사적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주일보는 4·19 희생자·유가족 돕기 운동과 기념사업 캠페인도 전개했다.

지난 1973년 9월 1일부터 1975년 8월 15일까지 2년간 553회에 걸친 연재물인 ‘광복 30년’과 1975년 12월 1일부터 1977년 7월 21일까지 439회에 걸쳐 연재한 역사기획물 ‘義兵列傳(의병열전)’은 한국 신문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연재물로 평가받고 있다. 의병열전은 46년만에 ‘新 호남 의병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본지에 새로이 연재 중에 있다.

 

 

 

‘5·18 -9년’은 1989년 1월 25일부터 7월 12일까지 총 47회를 게재하며 5·18 진상 규명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밖에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온누리안 리포트-국제결혼 다문화가정’, ‘고마워요 당신의 땀방울-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꿈’, ‘함께 열어요 우리의 미래-다문화가정 2세들의 꿈·희망 대안찾기’ 등 다문화사회 기획물을 연재하기도 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와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낸 촛불시위 현장을 지키며 관련 기획물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또한 광주일보는 ‘남도창’(南道唱·1973년·26회), ‘천년가람(千年伽藍·1987년·140회)’, ‘아시아 문화원류를 찾아서’(2012년∼) 등의 기획물로 광주·전남 문화·예술의 가치를 조명하는 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남도창’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문화적 가치가 확립되지 못했던 남도 판소리를 정리해 학계·예술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연재물로 평가 받았다.

1987년부터 4년간 140회를 주간 연재한 광주일보 사상 최초의 전문 종교물인 ‘천년가람’은 500여 전남 사찰 대부분을 역사적·학문적·문화재적으로 정리하는 등 우리 불교의 모든 것을 풀어내는 데 공을 들인 역작이다. ‘아시아 문화원류를 찾아서’는 지난 2012년 4월 19일부터 중앙아시아·인도·중원·인도차이나 등 9개국을 도는 대장정으로 지역민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기획물이다.

도서관과 미술관 등 문화 공간을 마련하는 한편, 예술·체육 영재 발굴과 지원 사업도 주도했다. 광주일보가 진행하는 ‘호남예술제’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역사로 평가받는 예술 꿈나무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로 66회를 맞는 호남예술제는 예술인들을 키워낸 텃밭으로, 올해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방역지침 준수 하에 ‘예향’의 맥을 잇는데 기여하고 있다.

 

 

창사 61주년을 맞아 지난 2013년, 11년 만에 복간한 ‘예향’은 37년 역사를 헤아리는 고품격 문화예술잡지로, 21세기 문화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콘텐츠와 수준 높은 문화담론을 펼치며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 사랑받는 매거진으로 자리매김했다.

3·1절 전국마라톤대회와 무등기야구대회 등 전국적인 체육 행사를 통한 지역 인재 육성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