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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나무기행]궁예왕의 야망 잇겠다며 석탑과 밤마다 쑥덕쑥덕

철원 도피안사 느티나무

 

 

폭군이라 평가받는 궁예
철원서는 친근한 이미지
통일신라 대표 철불 제작
철원주민 1,500명 힘보태
석탑과 느티나무 세그루
6·25전쟁중 기적적 보존


영월 세달사에서 나온 궁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염원을 읽는 민중들의 미륵불을 자처했다.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정하고, 905년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정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강원도가 중앙무대에 등장하는 시기를 맞았다. 새로운 시대를 연 지역민들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상을 품어줄 지도자 궁예 행군에 동참했다.

궁예왕은 왕궁의 도성을 흙으로 지었다. 내성 4,370m, 외성 577m 규모로 담장을 낮춰 백성들과 소통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궁예를 무자비한 폭군의 이미지로 만들었지만, 철원 곳곳에는 친근한 궁예왕의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다.

왕건의 쿠데타로 밀려난 궁예왕은 궁에서 쫓겨나 전투를 치르며 도망을 가는 동안 지역 곳곳에 이름을 남겼다. 명성산은 궁예왕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음을 터뜨린 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궁예 부하들이 흐느껴 울어서 생긴 느치계곡, 궁예왕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건넜다는 한탄강 여울 왕정랑, 궁예왕이 왕건군대에 쫓겨 도망쳤다는 패주골(파주골), 궁예왕의 부인 전설이 전하는 봉우리 강씨봉, 궁예왕이 들렀다 갔다는 군탄2리(자연부락명 드르니마을) 등은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명이다.

태봉국 철원도성은 현재 비무장지대 안 분단선에 남과 북 사이에 걸쳐 있으며 남북 화해의 신호탄으로 남과 북이 공동 발굴하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1,000년 전 새로운 시대를 연 태봉국의 그날처럼 궁예는 남북한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시작점이 되고 있다. 고도 철원은 심원사(647년), 안양사(863년), 도피안사(865년) 등 천년 사찰이 3개나 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도피안(到彼岸)은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의미다. 도피안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 말사로 화개산에 들어와 있다. 1898년 봄 화재로 모든 건물이 타버려 1914년 복원했고 6·25전쟁으로 전소된 것을 1954년 수복 후 재건했다. 재적광전은 1988년과 2015년 중건했다.

수복 직후 중건하기 전 재밌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이명재 15사단장은 전날 밤 “불상이 땅속에 묻혀 있어 답답하다”는 꿈을 꾸고 전방지역을 사찰하던 중 우연히 불에 타 없어진 도피안사 터 땅속에서 철 불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통일신라 경문왕 5년, 865)은 높이 104.5㎝, 폭 70㎝ 규모로 사찰 창건 당시 주조된 통일신라시대 대표적 철불이다. 국보 제63호로 지정됐다.

비로자나불은 주변에서 쉽게 보는 현실적인 체형으로 동네 아는 형이 참선하고 있는 듯하다. 철불상 뒷면에는 철원사람 1,500명이 철불 조성에 큰 힘을 보탰다는 기록이 나온다. 통일신라 말기 부패한 사회상을 타파하고 새로운 미륵의 세계가 열리기를 염원한 사람들이 불상제작에 참여했다. 어쩌면 철원에 궁예왕이 나라를 일으켜 왕도로 삼았던 것도 다 이런 인연이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사찰은 화재로 여러 번 소실과 중건을 반복해 왔다. 그런 부침에 비해 석탑은 아름다운 외모를 잘 간직해 왔다.

3층석탑의 구조는 특별하다. 연화문이 새겨진 8각의 기단이 2단을 이루고 있고 그 위에 3층석탑이 자리를 잡았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부처 그 자체로 본다면 마치 연화문 기단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듯하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철불과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 제223호로 지정돼 있다.

단아한 모습으로 느티나무와 함께 서 있는 석탑은 도피안사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면을 만들고 있다. 석탑은 느티나무에게, 느티나무는 석탑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듯하다.

석탑 앞의 느티나무는 세 그루로, 두 그루는 나이가 비슷해 보이지만 한 그루는 후계목으로 보인다. 강원-철원 1호로 지정된 보호수로 수령은 600년, 높이 22m, 나무 둘레 3m다.

철원은 6·25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어 인구 10만의 도시가 전쟁으로 인해 온전한 건물이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그 가운데 600년 된 느티나무와 철불, 석탑이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 밖에 산신각 부근에 상수리나무가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종무원 앞으로 물푸레나무와 백당나무 그리고 사찰 주변으로 주목, 당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뤄 한적하고 아늑한 사찰 분위기를 자아낸다.

철원=김남덕 사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