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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세종대왕 아들 ‘태실 유물’ 부산 시민 품으로

 

 

 

 

부산 남구 거주 이상민 씨

의창군 태지석·안태용 분청사기

일제강점기 종적 감춘 유물들

부산박물관에 24점 기증

15세기 조선 장태문화 확인


 

세종대왕 아들(왕자)의 태실(胎室) 유물이 부산 시민 품에 안겼다. 태실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 등 왕손이 태어나면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정해 태(胎)를 묻었던 곳을 말한다.

 

부산박물관은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이상민 씨로부터 태를 항아리에 넣어 매장하는 15세기 조선 전기 장태문화(藏胎文化)를 알 수 있는 조선 세종대 태실 유물 2점 등 모두 24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고 6일 밝혔다. 이 씨는 2019년에도 부산박물관에 4점의 유물을 기증한 바 있다.

 

부산박물관이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 중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은 ‘세종의 왕자 의창군(義昌君) 태지석(胎誌石)’과 ‘세종의 왕자 안태용(安胎用· 태를 안치하는 데 사용한다는 의미) 분청사기(粉靑沙器)’이다. 이 유물 2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의창군은 세종의 열 번째 아들(서자로는 세 번째)로 세종과 신빈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35년에 의창군으로 봉해졌으며, 1460년에 사망했다.

 

조선 왕실은 태실이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전국 팔도의 풍수 좋은 명당에 태실을 두고 소중하게 관리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국에 산재한 명당 터를 확보하고 조선 왕실과 백성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려는 의도에서 특별한 기준 없이 전국 팔도 명당에 있던 태실을 서울 근교로 옮겨와 서삼릉에 일괄적으로 모아놓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태실의 유물이 교란되고 중요한 문화재였던 태항아리가 상당수 도굴됐다.

 

세종의 왕자 18명의 태실이 함께 모여 있는 ‘선석산’(경북 성주군 월항면)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태실 유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상당수가 도굴 또는 교란돼 1977년 성주군에서 보수정화사업을 진행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태실 유물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확인된 유물들도 국립박물관, 대학박물관, 사립미술관, 일본의 미술관, 개인 소장 등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세종의 왕자 태지석’ 6점,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 7점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기증을 통해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을 새롭게 확인한 것이다.

‘세종의 왕자 의창군 태지석’의 명문 내용을 살펴보면 의창군은 1428년 10월 27일 묘시생(卯時生)으로 1438년 3월 11일에 태를 묻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성주 선석산 의창군 태실 비석의 명문 중 태를 묻은 일자와 일치한다.

 

‘세종의 왕자 안태용(安胎用) 분청사기’는 높이 16.6cm, 지름 27.7cm 크기의 꼭지가 달린 반구형 뚜껑 모양 분청사기로, 태항아리 전체를 덮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 구성을 4~5단으로 나누고 연꽃잎이 겹쳐진 문양을 상감기법으로 표현했는데, 이러한 독특한 형태와 문양 기법, 문양 구성을 지닌 유물은 경북 성주 선석산 세종의 왕자 태실에서만 확인된다. 특히, 연꽃잎이 겹쳐진 문양과 뚜껑 중앙 부분을 삼각집선문으로 띠처럼 표현한 기법은 기존에 확인된 11점의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의 양식 중 세조의 안태용 분청사기와 매우 유사해, 세조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박물관 박미욱 유물관리팀장은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는 의창군의 태를 묻은 날(1438년 3월 11일)이 세조의 태를 묻은 날(1438년 3월 10일)과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 세조의 안태용 분청사기와 장식기법이나 형식 면에서 매우 유사한 점을 유추해 볼 때, 기증받은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는 의창군의 것이라고 추정된다”면서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부족해 향후 고증적인 자료 조사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산박물관은 이외에도 청자완, 분청국화인화문접시 등 도자기 9점, 삼국시대 토기 1점과 19세기 일본 메이지 시대 산수화 등 19~20세기 일본화단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일본회화 8점을 비롯해 22점의 다양한 유물을 기증받았다.

 

부산박물관 송의정 관장은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도기와 분청사기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던 15세기 장태문화(藏胎文化)를 알 수 있고 특히 세종의 왕자 태실에서만 확인되는 특정한 시기, 장소,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박물관 측은 향후 유물의 보존처리와 연구성과 검토, 비교 연구를 거친 후 부산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