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 현실이나 상상의 세계는 콘텐츠의 단골 소재다. 영화 ‘백두산’(2019)의 주연인 배우 이병헌이 인터뷰에서 “허허벌판에서 화산폭발을 상상해 연기했다”고 말했듯 이런 장면은 주로 배우가 녹색 크로마키 앞에서 연기한 뒤 컴퓨터 그래픽(CG)를 입혀 구현했다. 최근 국내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버추얼(Virtual) 스튜디오’는 가상 환경을 미리 띄운 뒤 촬영하는 방식이라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 1만 1265㎡
LED 월에 배경 실시간 구현
CG 장면 말 안 하면 모를 정도
콘텐츠 제작 우위 선점 위해
실내 스튜디오 두 동 공사 한창
■시각특수효과(VFX) 기술 더해 진화
지난 10일 취재진이 찾은 ‘브이에이 스튜디오 하남’(VA STUDIO HANAM·이하 VA스튜디오)은 아시아 최대 규모인 총 1만 1265㎡(약 3408평)로 지어진 최신식 버추얼 스튜디오다. 서울 도심에서 1시간 남짓, 서울 지하철 5호선 미사역에서 약 800m 떨어진 이곳에 도착하니 ‘VA’라고 큼직하게 적힌 스튜디오 세 동을 볼 수 있었다. 확장 현실(XR) 스튜디오와 중형 볼륨, 대형 볼륨 스튜디오다.
스튜디오 겉모습은 여느 실내 스튜디오와 비슷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보통 스튜디오엔 촬영 세트가 오밀조밀 설치된 것과 달리 이곳엔 거대한 LED 월과 무대,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린만 있었다.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월에 띄우는 CG에 따라 이곳은 순식간에 인천공항이 될 수도, 강원도 대관령이 될 수도 있다. 즉 입맛에 따라 실시간으로 배경을 구현할 수 있는 발전된 실내 세트장인 셈이다. 특히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형 볼륨 스튜디오는 내부가 거대한 타원형의 LED 패널로 360도 둘러싸여 좀더 현실감 있는 영상을 구현할 수 있다.

취재진이 스튜디오를 찾은 날에는 중형 볼륨 스튜디오에 광활한 숲속이 구현돼 있었다. 가이드로 함께 한 백정엽 VA코퍼레이션 이사는 “인천공항이나 판문점과 같이 장소 섭외가 어려운 곳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며 “터널 같이 위험 요소가 있는 곳도 월에 띄워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촬영한 제작 영상을 보니 인천공항의 전광판과 대기실 등을 재현한 장면은 CG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가상 인간(Digital Human)이었다. CG로 제작된 가상 인간들은 몸의 움직임이나 실루엣이 실제 엑스트라 배우들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버추얼+일반 스튜디오 모두 잡는다
주목할만한 건 VA코퍼레이션이 XR스튜디오와 중형 볼륨 스튜디오 옆 부지에 일반적인 실내 스튜디오를 추가로 짓고 있는 점이다.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면 버추얼 스튜디오와 함께 전통적인 실내 스튜디오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공사가 한창인 부지에는 실내 스튜디오 두 동과 아트센터 등이 크게 들어설 예정이다.

또 서울 근교에 2022년 완공을 예정으로 8만㎡(약 2만 4200평) 규모의 종합 스튜디오를 건립할 예정이다. 여기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형 버추얼 스튜디오 세 동과 실내 스튜디오는 여덟 동, 1000평 이상의 실외 스튜디오를 구축한다.
이들 스튜디오가 완공되면 서울과 근접해 촬영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수도권의 스튜디오 전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스튜디오 관계자는 “서울 근교에 스튜디오 건립 계획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서울과의 근접성”이라며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제작사 입장에선 시간, 경제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버추얼 스튜디오 활용이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더 만달로리안’은 마블 영화의 CG 작업으로 유명한 ILM의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제작됐다. 글로벌 제작 환경에 발맞춰 국내 콘텐츠 제작사와 스튜디오들도 앞다퉈 버추얼 스튜디오를 선보이는 추세다. VFX 전문업체 자이언트스텝은 올 6월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증설했고, VFX 전문업체 덱스터스튜디오도 약 43억 원 규모의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연내 완공할 계획이다.
경기 하남=남유정·조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