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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산업화에 사라져간 '이름들' 되살리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경계에 핀 꽃이 됐다. 나훈아의 '잡초', 김춘수의 '꽃', 함민복의 '꽃'에 나오는 주요 구절을 나열했는데, 크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완성됐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면 소중한 무엇이 된다는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까 싶다.

그런데 이 문장의 주인공 '잡초'는 언제부터 이름 모를 꽃과 풀 따위가 되었던가. 인공정원을 꾸며주는 말끔한 잔디 풀 사이로 삐죽삐죽 솟아나는 그것은 뽑아내고 약을 쳐도 이내 날아와서 박히고 솟아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존재들은 제각각 뿌리내리고 자라고 싶은 만큼 자라나며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현현한다.

'양강에코뮤지엄' 프로젝트 첫 포문 열어
자생식물 기록 '세밀화' 지역가치 재발견

 


잡초같은, 이름이 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던 그것에 주목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양강에코뮤지엄' 프로젝트의 한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양평문화재단은 지난 6월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2021 경기 에코뮤지엄 조성' 공모사업 중 한강수계 권역 에코뮤지엄 조성 분야(지원금 5천만원)에 선정됐다. 


경기도에선 수년 전부터 '경기만' 문화권을 시작으로 경기만 에코뮤지엄을 시도했다. 선감도의 '선감학원 에코뮤지엄'과 화성의 매향리 스튜디오, 시흥의 갯골생태 공원 내 소금창고를 활용한 에코뮤지엄 등 경기 서부의 생태와 문화, 역사·사회적 이슈가 결합한 형태다.

최근 경기북부형 에코뮤지엄의 연구개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경기동부형 에코뮤지엄이 시범적으로 양평에서 시도된다.

경기 동부 한강수계권 에코뮤지엄으로 첫 포문을 연 양강에코뮤지엄 프로젝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해체되어가는 공동체와 그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가까운 과거의 문화유산을 유지·보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다시 잡초, 아니 사진 속으로 돌아가 본다. 사진 속 한 인물은 노란 꽃잎과 가느다란 줄기의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형태를 따라 그리는 '식물세밀화'에 도전 중이다. 식물세밀화는 식물 연구 과정에서 식물을 그림으로 그린 '기록물'로 식물의 해부학적인 미세구조와 사진과 표본에서는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묘사하는 것이다.

또 사진에서 보이는 그것의 이름은 바로 '금계국'이다. 이처럼 양강에코뮤지엄 프로젝트의 하나인 식물세밀화 그리기는 예술가와 시민 활동가가 씨를 뿌린 적도 없고 의도를 지닌 누군가의 행위 없이도 양강섬에서 자생한 식물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의미 없었던 것의 재발견, 나아가 양평이라는 지역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를 시작으로 양강에코뮤지엄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수 지점인 양평의 양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변문화와 주변의 생태, 역사, 신화 등을 주제로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유산을 수집하고 지역의 청년 활동가를 발굴할 예정이다.

무엇이 어떻게 드러나고 어떤 이름을 얻을 것인가. 양강섬에서 잡초로 취급받던 그 모든 것에 이름과 가치를 부여하는 지역 활동가들의 따뜻한 시선, 조심스러운 한 걸음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롭고도 의미있는 에코뮤지엄을 완성하는 과정이 되길 응원해본다.

/조두호(양평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전문기자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