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감염증이 세상을 멈춰 세웠다. 산행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최적의 선택이다. 설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신흥사(속초시 설악산로 1137)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다. 그 후 조선 16대 인조 22년(1644년)에 세 분의 스님이 똑 같은 꿈을 꾸고 현재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신흥사라 불렀다. 사찰은 창건 당시 주조한 1,400년 된 범종과 조선 순조가 하사한 청동시루, 극락보전(보물 제1981호), 경판(지방문화재15호), 보제루(지방문화재 104호), 향성사지 3층석탑(보물 제443호)과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있다.
설악산은 높이 1,708m로 우리나라에서 3번째 높은 산이다. 음력 8월 한가위에 눈이 덮이기 시작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고 해 눈과 관련된 설산, 설봉산, 설화산 이름으로도 불렸다. 울산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계곡의 맑은 물과 폭포, 숲 그리고 백담사를 비롯한 사찰들이 조화를 이뤄 경관이 아주 우수하다. 인제, 고성, 속초, 양양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산을 중심으로 생활권을 만들고 있다.
조선의 설악산은 양양도호부 관할이었다. 금강산과 쌍벽을 이루며 비경을 뽐내던 설악산은 많은 시인 묵객을 불러들였다. 와선대, 비선대, 계조굴에 남아 있는 셀 수 없는 암각된 이름은 조선의 선비들의 발걸음을 확인하게 한다. 단원 김홍도는 양양도호부 지역에 7점의 산수화를 남겼다. 낙산사, 관음굴, 토왕폭, 와선대, 비선대, 계조굴, 영랑호 등은 설악산이 조선의 명사들에게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신흥사로 가는 길목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51호로 지정된 나무로 높이 16m, 가슴 높이의 둘레는 4m로 육체미 대회에 나갈법한 몸매를 자랑한다. 육중한 몸짓을 한 나무는 커다란 설악산을 배경으로 서 있어서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수령은 5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며 매년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제삿밥을 먹고 있다. 설악동 입구 사거리에 잡리 잡은 서낭나무로 여기에 돌을 쌓으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어 돌무더기가 잔뜩 쌓여 있다. 수관 폭은 동서 21.4m, 남북 19.4m로 평균 20.4m다. 줄기는 지상 2.5m 높이에서 3개로 갈라져 있는데, 남북쪽 2개의 줄기는 죽었고 중앙의 것만 살아 있다. 밑둘레는 3.5m에 달한다. 오래된 고목은 넉넉한 품으로 감싸 안아 모든 풍경을 예사롭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자 종무소가 나온다. 종무소 주변엔 돌배나무가 꽃을 피워내고 행랑객을 손짓한다. 신흥사 본전인 극락보전은 인조 25년(1747년)에 건축돼 영조 26년(1750년), 순조 21년(1821년)에 크게 수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나 구조, 장식들이 예술적으로 우수하며 보존상태가 좋다.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삼박자가 갖춰진 건물이다. 극락보전 계단석의 삼태극과 귀면, 용머리 모양의 돌 조각은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화재다. 칠성각 주변엔 오래된 향나무가 권금성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설악산에서 이탈리아 포플러나무가 보인다. 1970년대 초 설악동 관광위락시설과 도로를 건설하면서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루나무로 불리던 나무다. 신흥사는 조계종의 상징이자 우리나라 산문의 중심이다. 그리고 조선 산수화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찰 주변의 나무들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글·사진=김남덕 사진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