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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Bad Town 경기도 우리가 사는 집이란·(上)] 구도심 주거 현주소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네'

 

 

성남시 태평동의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0일 낮. 태평2동에서 4동을 향해 오르막길을 올랐다. 산을 깎아 만든 동네라더니 금세 숨이 차올랐다. 고개는 점점 앞으로 기울었고, 시야도 점차 좁아졌다. 큰길에서 벗어나 성인 2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골목길을 걸었다.

외부인은 쉬이 분간할 수 없는 '빨간벽돌' 다세대주택이 길 양옆에 빼곡히 들어섰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풍경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 노인이 길과 맞닿은 집 문을 열고 나왔다. 언뜻 보이는 집 안은 내리쬐는 햇빛이 무색할 만큼 어둑하기만 했다. 여든을 넘긴 이 노인은 담배를 사러 슈퍼에 간다고 했다. 

 

"없는 사람들 살기 좋은 동네"
성남 태평동 골목서 만난 노인
보증금 2천만원 전세 찾아 이사

 

그는 스무 걸음 정도를 걸으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이 노인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태평동을 '살기 좋은 동네'라고 소개했다. "없는 사람들한테 살기 좋은 동네지."

인천에 살던 그는 몇 년 전 태평4동의 반지하 집으로 이사 왔다. 전세보증금 2천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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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에 빛이 잘 들지 않고, 꿉꿉한 냄새가 나 두통에 자주 시달린다고 했다. "좀 나은 곳으로 가고 싶지. 근데 돈이 없어서 생각도 못하지." 그는 햇빛을 보며 담배 한 대를 태우곤 어두컴컴한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태평4동에서 2동을 향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제야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세월이 만든 낡은 집.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릇이 달그락대고, TV에서 나오는 뉴스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걷다 태평2동의 한 1층집 대문 앞에서 60대 여성을 만났다. 그는 이 동네에서만 40년 넘게 살았다고 했다. 이 여성은 집 안팎에 난 금을 보여주며 "(금을) 덕지덕지 붙여가며 이러고 산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푸세식 화장실 냄새 여름 고역"
40년 넘게 산 여성 멋쩍은 웃음

 

그는 옆집 대문을 열어 계단 아래에 있는 지하방을 가리켰다. 지하방 옆에 달린 '푸세식'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매년 여름이 고역이란다. 그럼에도 욕을 하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 그저 푸념일 뿐이었다. 화장실 바로 옆 지하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사람 살 곳이 못 돼요. 그래도 애들한테 손 벌릴 수는 없으니까. 좀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바람뿐이죠."

성남은 광주대단지사건을 촉발한 서울 철거민 집단 이주부터 분당, 판교 신도시 건설 등 국가 신도시 정책의 산물과도 같은 지역이다. 더불어 경기도 주거 격차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분당과 판교는 성남을 넘어 경기도를 대표하는 '살기 좋은 동네'가 됐다. 경기도의 올해 6월 말 기준 공동주택 집값 상위 30개 중 26개는 분당과 판교신도시에 위치한다. 반면 태평동 등 구도심의 낙후는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분당·판교와 극명한 '주거 격차'
마을 초입엔 '재개발' 서명 한창

 

태평동 초입인 태평오거리. 태평2·4동 주민 서너 명이 '전면 재개발'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조끼를 맞춰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었다. 재개발과 그 방식에 대한 주민들 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지금보다 나은 수준의 '집'에서 살길 바랐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이날 만난 한 주민의 말이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김대현차장,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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