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오리농가 인근 도로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지난 18일 오후 2시께 통제된 상태로 철저한 방역이 진행 중인 이곳은 오리농가로 통하는 4개 도로 중 3곳은 포크레인, 트럭 등으로 막혀 있었고 1곳만 이동식통제초소가 설치돼 방역을 거쳐야만 농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통제초소와 200여m 떨어진 오리농장에서 지난 15일 오리 400마리가 폐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전남지역 농가에서 처음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항원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회색의 방역복,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고무 장화, 그리고 하얀 마스크를 쓴 초소 근무자 2명은 출입하는 차량의 번호를 기록하고 차량에 소독약을 연신 뿌리며 방역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로에는 하얀 산화제 성분 소독약 액체가 흘러 넘쳤고 광역살포기와 살수차량, 도로소독차량 등이 투입돼 발생농가 인근에 연신 소독약을 살포하고 있었다.
노효상 장흥군 가축방역팀장은 “이제는 겨울철 철새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면서 “한번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파되는 AI 특성상, 겨울철에는 거의 매일을 ‘5분 비상대기’ 수준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 곳곳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가금류 농가가 ‘초비상’이다.
특히 고물가에 난방비·전기요금 등 각종 사육비가 올랐는데 조류독감으로 출하를 앞두고 있던 오리가 살(殺)처분 되면서 방역까지 해야돼 이중고를 겪고 있는 농민들의 주름은 깊어지고 있다.
전남도 등에 따르면 전남에서는 551개 농가에서 2432만마리의 가금류를 키우고 있고 장흥에서는 28개의 농가에서 70만8000마리의 가금류를 사육하고 있다.
특히 오리는 전남의 225개 농가에서 385만마리를 키우고 있어 우리나라 오리 사육의 50~60%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지역에서 오리와 닭 등 가금류를 키우고 있는 농장 주인들의 한숨소리는 깊어지고 있다.
농장 주인들은 올해 고물가·고유가 등으로 사육 비용이 2배 이상 늘어 피해가 더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류비 뿐만 아니라 항생제와 면역증강제 등의 약품비, 전기요금 등이 모두 크게 오른 상태에서 AI로 살처분까지 하게 돼 ‘빚덩이’에 안게 됐다는 것이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AI가 발생한만큼, 올 겨울 안에 언제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농민들의 걱정거리다.
AI가 발생한 농장과 500m 떨어진 곳에서 1995년부터 오리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인(62)씨와 위인숙(여·58)씨 부부는 지난 16일 키우던 오리 3만1500여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지난 2017년 AI 확산으로 오리를 살처분한데 이어 두번째다.
김씨는 “2017년에 살처분 하고 1년 동안 오리를 못 키우면서 지금도 빚이 1억원이 넘는데, 올해 또 살처분 하면 빚이 더 생길 것 같다”면서 “특히 올해 오리 농사를 하는데 들어가는 거의 모든 비용이 두 배 이상 증가한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오리들이 살처분돼 손해가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일반적으로 오리는 부화하고 나서 15일 동안은 24시간 난방을 해야 해 기름값 상승이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전남지역 등유 가격은 지난해 10월 리터 당 822원에서 지난 10월 1398원으로 1년만에 70% 상승했다. 난방비로만 수백만원이 오른 셈이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인상된 농사용 전기요금도 농가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항생제, 면역증강제 약품비, 왕겨 등의 원료값, 인건비 상승도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상승했다는 것이 농민들의 설명이다.
키우던 오리를 살처분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농장주도 있다.
옆 농가에서 AI가 확진된 탓에 위재열(49)씨도 부화한지 6일된 오리 9100여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위씨는 “지난 2017년에도 AI 확산으로 키우던 오리를 살처분해 충격을 받아 최근 5년간 오리 사육을 하지 않았다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시 오리 농사를 시작했는데, 6일만에 또 오리를 살처분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방역당국의 실효성 없는 방역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20년째 오리농사를 짓고 있는 이경환(65)씨도 방역당국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출하를 5일 앞두고 오리를 살처분 한 이씨는 “하루아침에 키우던 오리 2만1500마리를 살처분 당하고 속이 너무 상해 오늘에서야 농장에 나와 봤다”면서 “소규모 농가에게 농장에 들어 갈때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소독을 할 수 있는 ‘전실’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차라리 장화가 깊이 잠길 수 있을 정도의 발판 소독조 설치를 지원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도현 전남도 동물방역과장은 “장흥에서 AI가 확진된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며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추울수록 생존율이 높아 이제부터 시작이다. 방역에 최선을 다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