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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책“진실을 선점한 자의 시대”…윤리와 권력의 경계 묻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가 손보미, 장편소설 ‘세이프 시티’ 출간
기억 통제, 젠더화된 폭력, 여론 조작 등 사회적 문제 조명해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호수에 던져진 돌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 일렁이는 물결의 패턴이야.”

지난해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손보미 작가가 장편소설 ‘세이프 시티’를 출간했다.

 

이상문학상과 대산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손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현실화된 근미래, 철저하게 등급화된 도시를 배경으로 윤리적 딜레마와 권력과 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탐색한다.

 

소설은 여아 납치 사건을 수사하던 여성 경찰이 무고한 용의자의 거짓 자백을 받아냈으나 진범이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하는 비극을 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죄책감과 상사의 압박 속에 휴직한 주인공은 불면을 견디다 못해 구도심을 거닐다 화장실 파괴범과 여성 노숙자들이 대치한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다. 본능적으로 개입한 주인공은 중상을 입는다. 그리고 이 사건은 곧 시장이 원하는 ‘기억 교정술’의 첫 시험대상이자 대중 여론의 도구로 전환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아니야. 그건 나를 희생하는 거야.”

 

소설은 기억과 기술, 권력의 결합이 어떻게 한 개인의 정체성을 흔드는지 날카롭게 바라보며, 여성이 겪는 트라우마와 신체의 통제 불가능성, 사회적 고립 등을 조명한다. 언론과 여론이 내세운 주인공은 ‘범죄자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경찰’이 아닌 유산의 충격과 슬픔을 감내하지 못해 일을 내려놓아야 했던 여성, 호르몬과 신체 변화에 무력해진 채 조직 내에서 통제 불가능한 존재로 여겨지는 여성이다. 하지만 기술과 권력이 뒤엉킨 왜곡된 진실 앞에서 성별과 신체, 감정의 그늘 속에 밀려났던 한 경찰이 다시금 스스로를 바로 세우려 한다.

 

진실이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손 작가는 기술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기억 통제, 젠더화된 폭력, 여론 조작이라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