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항에 중고차 수출단지를 조성하는 ‘스마트 오토밸리 조성사업’이 실패 기로에 섰다. 사업시행사(카마존)가 자금 조달과 착공 신고 기한 등 계약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서 인천항만공사는 계약 해지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년째 지연되고 있는 이 사업이 좌초될 경우 인천지역 주요 수출 화물인 중고차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 상태로 사업이 추진된다고 해도 경제성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인천항만공사가 서둘러 ‘플랜 B’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스마트 오토밸리 조성사업은 인천 중구 남항 배후부지 39만8천㎡에 총 4천370억원을 들여 친환경·최첨단 중고차 수출 클러스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인천항은 전국 중고차의 80%가 수출되는 곳이다. 하지만 중고차 수출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옛 송도유원지 일대는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지 못한 채 수십 년째 방치돼 있어 중고차 수출 클러스터 조성 요구가 컸다.
인천항만공사는 중고차 수출 환경을 개선하고자 스마트 오토밸리 사업계획을 세우고, 2023년 5월 카마존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사업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카마존이 계약서에 명시된 자기자본 조달과 착공 시기 등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올해 초 카마존의 증자기한을 6개월 연장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독촉 절차를 밟은 뒤 지난달 31일을 최종 이행 시한으로 정했으나, 카마존은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못했다.
현재 카마존 측은 2천2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현물로 출자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인천항만공사는 이 같은 출자 계획에 대해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카마존 측의 현물 출자 계획이 승인된다고 해도 사업계획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고차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마트 오토밸리 사업계획이 처음 세워진 6년 전과 비교하면 중고차 수출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넓은 부지에 차량을 세워 놓고, 바이어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구매하는 이른바 ‘마당 장사’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온라인 판매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시와 보관, 판매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대규모 중고차 수출단지보다는 정확한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한 소규모 시설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규모 시설의 특성상 조성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것도 문제다. 민간 사업자가 수익을 남기려면 임대료를 올려야 해 중고차 수출단지의 경제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임대료 부담 때문에 스마트 오토밸리에 입주할 수 있는 ‘문턱’이 높아지면 영세한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입주를 포기할 수 있다”며 “중고차 수출 클러스터가 조성된다고 해도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항의 중고차 수출 물동량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선 인천항만공사가 변화하는 중고차 수출 환경에 맞게 사업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과 군산 등 자동차 전용 부두가 있는 지역뿐 아니라 부산 등에서도 중고차 수출단지 조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파악하고 있다.
중고차 수출업체가 다른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면 연간 60만대에 달하는 중고차 수출 물량을 다른 항만으로 빼앗긴다. 인천지역 중고차 수출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중고차 수출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임대료가 비싼 인천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며 “인천항만공사가 중고차 물동량을 유지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