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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부여 관북리 유적서 1400년전 '백제 피리'...삼국시대 관악기 첫 발견


충남 부여에서 1400년 전 백제 사비 시기(538-660)에 사용했던 '피리'가 발견됐다. 삼국시대 관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부여군과 공동으로 진행한 제16차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와 대량의 목간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충청권 고대사가 전설에서 실증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선 것으로, 부여가 지닌 역사 자산의 위상을 국가사 연구의 중심 축으로 끌어올린 계기로 평가된다.

 

연구소는 이날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 성과를 공개했다.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 남쪽 평탄 대지에 자리한 사비기 핵심 유적으로 1982년부터 발굴이 이어져 왔다.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 대규모 대지가 확인된 곳으로 사비 왕궁지의 유력한 중심 구역으로 꼽혀 왔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된 유물은 횡적(橫笛·가로 피리) 1점이다. 백제 조당 건물로 파악되는 7세기 건물지 인근 직사각형 구덩이에서 출토됐고 잔존 길이는 224㎜다. 대나무 재질에 구멍 4개가 일렬로 남아 있었고 일부는 결실된 채 눌린 상태였다. 유기물 분석에서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 이 구덩이가 조당 부속 화장실 시설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악기 판정의 근거도 분명하다. 인위적으로 뚫린 지공(指孔) 구조, 엑스레이 분석에서 확인된 입김을 불어 넣는 취공(吹孔)과 한쪽 끝이 막힌 형태를 종합해 세로 피리가 아닌 가로 피리, 즉 횡적으로 파악됐다. 이는 능산리 금동대향로의 도상 자료를 실물로 잇는 첫 사례다. 특히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학술적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의미는 음악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고 의례를 치르던 조당 권역의 생활 맥락에서 악기가 확인되며 사비 왕궁의 의례 체계와 궁중음악 운용 방식, 정치 공간의 문화적 기능까지 복원할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추정하던 백제의 소리 체계가 고고 자료로 검증 국면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목간 성과는 행정사 복원의 무게를 더한다. 삭설을 포함한 목간은 329점으로 국내 단일 유적 기준 최대 수량이다. 간지년이 적힌 목간의 '경신년'과 '계해년'은 각각 540년, 543년에 해당해 538년 사비 천도 직후의 문서 행정이 실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천도 이후 국가 운영이 얼마나 빠르게 제도화됐는지 시기까지 특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서 내용도 입체적이다. 인사 기록과 국가 재정 장부, 관등·관직 관련 자료, 삭설이 함께 확인돼 해당 공간이 백제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와 연동됐을 여지를 높인다. 국내 최초 편철 목간 가운데 '공사위소장군도족이(功四爲小將軍刀足二)'가 적힌 사례는 공적 평가와 인사 임용 체계를 보여주는 직접 증거다. 월 단위 식량 기록은 재정 집행의 실무 단면을 드러낸다.

 

도성·지방 행정 재편의 흔적도 확인됐다. 상·전·중·하·후부 등 5부 표기와 웅진·하서군, 나라·요비성 등 지명 자료는 사비도성의 중앙 행정 구획과 지방 지배 체계가 문서 단위에서 정비됐음을 시사한다. 백제가 단순 천도에 그치지 않고 통치 구조를 재설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문화 교류의 단서도 눈에 띈다. '입동'·'인심초'·'현곡개'와 함께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알려진 '전(畑)' 표기까지 확인되면서 사비기 백제가 동아시아 문자·지식 교류망 안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였다는 해석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함께 발견된 목간은 사비 천도 직후 시기 자료로 평가된다. 일부 목간에 ‘경신년’(540년), ‘계해년’(543년) 등 간지년이 남아 제작 시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한 538년 직후와 맞물린다. 내용도 행정 운영의 흔적을 담고 있다. 인사 기록, 국가 재정 관련 장부, 관등·관직 표기 목간이 다수였고 글씨를 삭제·수정하려고 표면을 깎아낸 삭설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이 일대가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와 연계된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사비도성 중앙 행정구역인 5부와 방·군·성 체계 재편을 읽을 수 있는 목간도 모습을 드러냈다. ‘입동(立冬)’, ‘인심초(人心草)’, 일본에서 만들어진 글자로 여겨온 ‘전(畑)’ 등이 적힌 목간은 당시 문화와 대외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다.

 

연구소는 “약 1500년 전 백제의 문서 행정 실태와 음악 문화를 함께 보여주는 실물 자료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