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안으로 무등산이 가득 들어왔다. 초봄의 연둣빛을 지나 6월의 짙푸른 녹음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때, 나뭇가지에 흰 눈이 내려앉을 때, 미술관 안과 밖에서 바라다 보이는 무등산은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보이고 미술관은 그 풍경을 그대로 품는다. 안과 밖의 경계가 없고, 자연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의재미술관은 무등산에 오롯이 안겨 있다. ■ 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을 기리다 한국 남종화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의재미술관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무등산 국립공원에 터를 잡았다. 무등산 자락은 의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91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의재는 소치 허련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남종 문인화의 대가다. 1938년부터 광주에 정착한 그는 산수화와 사군자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고 연진회를 조직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국화의 명맥을 이었다.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이자 계몽가이기도 했던 그는 농업기술학교를 설립, 교육에 힘썼고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을 제창했다. 의재는
남도 외딴섬의 마지막 해녀들과 뉴욕 맨해튼에서 살아가는 한국계 이민자 극작가. 이들의 서로 다른 삶의 교차를 무대로 풀어낸 연극 엔들링스(Endlings)가 대전을 찾는다.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13-14일 이틀간 공연되는 엔들링스는 두산아트센터, 제주아트센터,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한 연극이다. 서울 초연 당시 개막 전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엔들링(Endling)'은 한 종의 마지막 생존 개체를 뜻하는 생태학 개념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본상 최종 후보에 오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의 감독이자 극작가 셀린 송(Celine Song)의 대표 희곡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절묘하게 풍자적이고 신선하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번 연극은 해당 개념을 바탕으로 지역성과 이주, 정체성과 소속의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한국 남도의 가상 섬 '아일랜드오브만재'에서 살아가는 마지막 해녀 세 명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이다. 사라져가는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전한다. 연출은 2022년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동시에
(재)거창문화재단(이사장 구인모)은 오는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10일간 수승대 일원에서 ‘제35회 거창국제연극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올해 연극제의 슬로건은 ‘Humans, A dramatic world Revealed in nature 인간, 자연속에 연, 극적인 세상!’으로 이를 담은 메인 포스터는 콜라주 기법의 유쾌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이번 연극제는 지난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까지 참가단체 공모를 진행해 국내외 152개 공연단체의 제안서를 접수했으며, 총 7개국 57개 단체 참가가 확정됐다. 공식 초청 공연과 경연 공연, 프린지 공연을 포함해 총 76회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으로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무대에 오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해외 초청작으로는 대만의 ‘더블씨어터 극단’, 벨기에의 1인극 ‘가르 상트랄 극단’ 외에도 불가리아, 스페인, 호주, 프랑스 총 6개국 6개 단체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연극제 개막과 폐막은 수승대 거북극장(옛 돌담극장)에 조성되는 특설무대에서 진행된다. 개막공연은 SBS 퍼포먼스 합창 배틀 프로그램 ‘싱포골드’ 우승팀 ‘헤리티지’와 국내 유스&
순교의 아픔을 넘어 세계를 향한 희망의 성지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안겼다. 평생을 약자와 함께하며 평화와 사랑, 화해를 실천한 그의 삶은 한국에서도 깊은 의미로 남아 있다. 충남 서산의 해미국제성지는 그 정신을 간직한 특별한 곳이다. 조선 시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이곳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국제성지’로 지정되며 평화의 상징이 됐다. 신앙의 역사를 품은 이곳은 이제 치유와 성찰, 공존의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거듭나며, 누구나 잠시 멈춰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 순교의 땅, 세계를 향한 성지가 되다 해미국제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병인박해 등 조선 후기의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순교자 1천여 명의 피가 이 땅에 스며 있다. 겉보기엔 평온한 언덕과 숲길이지만, 이곳은 오랜 시간 고통과 희생의 흔적을 간직한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 신앙적 가치를 인정한 교황청은 2020년 해미성지를 ‘국제성지’로 공식 지정했다. 이는 국내에서는 유일한 사례이며, 아시아 전체로 봐도 단 두
2025 춘천영화제가 11일 오후 2시부터 예매를 시작, 본격적인 축제 초읽기에 들어간다. 올해로 12회를 맞이하는 춘천영화제는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춘천예술촌과 메가박스 남춘천에서 열린다. 안준국·조현경 감독의 ‘미션’으로 문을 여는 영화제는 17편의 장편과 32편의 단편 등 총 49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춘천영화제의 유일한 경쟁 부문인 ‘한국단편경쟁’에서는 14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1,236편의 출품작 중 예심을 거쳐 선발된 작품들은 독립영화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한국단편쟁 심사위원으로 김금순 배우, 김영진 영화평론가, 장건재 감독이 위촉돼 춘천영화제의 정체성을 견고히 할 작품들을 선정한다. 독립영화의 정수를 선보이는 ‘인디시네마’ 부문에서는 5편의 장편영화와 3편의 단편영화가 소개된다. 이어 시대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 포커스’와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는 ‘애니 초이스’,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은 가치 있는 영화를 소환하는 ‘리플레이’도 영화제를 물들인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시간도 마련됐다. ‘변호인’, ‘강철비’ 등으로 강렬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양우석 감독을 ‘클로즈업’ 부문서 만난다. ‘액터스 체어’ 부
음악을 통해 생명 나눔 운동을 펼치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최근 부산에서는 특정 이슈를 이끌어가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음악 공연이 활발해지고 있다. ■책과 음악의 색다른 조우 부산의 문화기획단체인 ‘문화유목집단동행’은 12일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에서 책과 음악이 만나는 특별한 공연인 ‘도서관 옆 음악당 두번째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음악과 이야기로 재해석하는 콘서트이다.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중심으로 그의 소설에 스며든 음악적 정서를 중심에 놓고 기획됐다. 정두환 문화유목집단동행 대표의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하루키의 문학 속 음악을 피아노 트리오(바이올린 이현우, 첼로 조명환, 피아노 정성혜)의 연주로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이번 무대는 그런 음악적 여운을 ‘이야기’와 ‘실연’으로 풀어내며, 관객이 문학과 음악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색다른 예술적 체험을 제공한다. ‘도서관 옆 음악당’ 시리즈는 문학과 음악이 서로를 매개하며 완성되는 복합 예술 프로젝트로, 지난 4월 도서관의 날(4월 12일)을 맞
세대를 아울러 학교하면 떠올리는 건 여전히 교과서다. 교과서는 근대 교육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학교(1895년 ‘소학교령’ 발표)가 도입되면서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 교과서다. 근대 이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학교 역할을 한 서당 등에서 수백 년 동안 주로 쓰던 교재는 성리학의 거두 주희가 엮은 ‘소학’(小學)이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은 오늘날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가 1895년 8월 간행한 최초의 국어 교과서이자 국정 교과서다. 제목에 ‘소학’이 붙었지만, 성리학의 ‘소학’ 내용은 이 책에 없다. 책 제목에서 주목할 부분은 ‘국민’이다. 이 책은 당시 민족주의 성향을 띤 개화파 조선 정부가 근대 이전 시대 통치 대상인 ‘신민’(臣民) 개념을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으로 전환하고자, 그 국민으로서 배워야 할 이념적·정치적 내용을 반영한 교과서다. ‘국민소학독본’은 가로 18.3㎝, 세로 28㎝ 크기에 144쪽 분량이다. 한지로 제본한 전통적인 선장본이다. 학부인서체 목활자를 사용해 국한문혼용체로 간행했다. 전통적 형태의 책으로 펴낸 근대적 의미의 교과서이면서 국한문혼용체를 썼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간다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바다와 숲, 호수, 역사적 명소까지 모두 한 곳에서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는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국내 최고의 석호이자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인 화진포다.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그곳, 화진포로 초대한다. 호안선 길이 16㎞ 광활한 석호 소나무 숲, 병풍처럼 그림 같은 풍경 겨울엔 철새들의 안식처 여름엔 훌륭한 피서지 ■ 모두에게 사랑받는 화진포 1971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화진포는 23만8천여㎡(72만평), 호안선 길이는 16㎞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의 석호다. 호수 주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까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화진포는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에 한자 울 ‘명’자와 모래 ‘사’자를 써 ‘명사’라는 말로 기록돼 있다. 화진포에는 잉어, 숭어, 향어, 붕어, 가물치 등의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겨울철에는 천연기념물인 고니와 같은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새하얀 고니 떼가 화진포에 내려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백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고요한 밤, 맑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우리에게 말 없는 위로를 건넨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별빛 아래 잠시 멈춰 서면 우주의 신비가 가깝게 다가온다. 양평군에선 이 같은 특별한 밤하늘을 만날 수 있다. 빛 공해가 적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덕분에 수도권에서 은하수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사계절 각기 다른 별자리가 반짝이는 양평으로 밤하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양동면 벗고개, 별빛 여행의 출발점 양동면 벗고개, 빛공해 적어 밤하늘 관측 최적 장소 은하수 자주 관찰, 가을·겨울철 별빛 더욱 뚜렷해져 양동면에 위치한 벗고개는 빛 공해가 적어 밤하늘 별 관측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은하수도 자주 관찰되며 가을과 겨울철에는 별빛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별 관측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별자리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오리온자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 주요 별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망원경을 가져가면 행성이나 별무리의 세부 모습도 관찰할 수 있어 관측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맑은 환경 덕분에 은하수를 볼 수 있는 확률도 높은 편이다. 벗고개에 별을 보기 위해 차량으로 진입할 땐 관측을 방해하
전 세계 인형극예술인들이 춘천 시민과 호흡하며 경계를 넘는 축제의 장을 완성했다. 제24회 유니마총회&춘천세계인형극제가 지난 24일 ‘퍼펫카니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지는 축제는 ‘경계를 넘나드는 인형’을 주제로 춘천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 기간 유니마총회에는 전 세계 54개국의 회원 200여 명이 참석하며, 춘천세계인형극제에는 21개국 1,100여 명의 예술인들이 100여 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축제극장몸짓에서 시작된 퍼펫카니발의 행렬은 운교사거리를 지나 춘청시청광장에 도착했다. 이날 춘천 시민들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들고 행렬에 합류, 예술가와 시민이 한 데 어울리는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거리 곳곳을 물들인 인형극인들은 올해 축제의 슬로건인 ‘경계를 넘나드는 인형’에 맞춰 주제공연을 펼쳤다. 이날 공연에는 육동한 춘천시장도 직접 참여해 춘천을 찾은 전 세계 예술인과 관객들에 환대를 보냈다. 축제 기간 춘천인형극장을 비롯해 1989년 축제가 시작된 어린이회관(현 KT&G 상상마당 춘천), 춘천문화예술회관 등 도시 곳곳이 예술로 물든다. 세대와 문화, 언어와 시간을 넘어 펼쳐지는 공연은 인형극이 가진 소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