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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부산 정신사 속에 자리매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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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순국일, 추모제와 특강, 12일 학술회의 열려
“분열·대립 극복할 순일한 정신의 근거 상기해야”

 

부산진(현재 부산 동구) 좌천동 출신의 의사 박재혁(1895~1921). 11일은 박재혁 의사의 순국 100돌이 되는 날이다. 1920년 9월 14일 일제의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2·3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일제는 박재혁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박재혁은 사형 집행 전 12일간의 단식 끝에 대구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1921년 5월 11일 오전 11시 20분이었다.

 

의열단원 박재혁이 순국한 1921년은 우리의 독립운동 노선이 좌우로 분열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박재혁은 더더욱 중요하다. 박재혁이 품은, 온전히 하나였던 조선 독립 정신을 상기할 수 있다면 오늘날까지 파상적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상습적인 분열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박재혁은 현재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섬’인 한반도 분단 체제를 그 목숨의 안중에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재혁은 과연 무엇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가, 라는 물음은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박재혁은 우리 현대사의 열쇠 말 중 하나다.

 

부산 근현대사와 정신사에서 박재혁의 자리를 명확히 위치 짓는 것도 필요하다. 기미년 3·1 운동 이후 부산에서는 1919년 민족자본가들의 문화운동 단체인 기미육영회와 부산예월회가 결성됐으며, 1920년 청년운동 단체인 동래청년구락부와 부산청년회가 출범했으며, 이어 1921년에는 기장기독교청년회와 기장여자청년회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 부산부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일어났다. 부산진 동래 구포 기장 등지에서 이미 3·1 운동을 통해 표출한 부산 청년들의 결기는 점차 또렷하게 조직화 구체화되어 갔다. 그런 흐름 속에 박재혁은 의거를 통해 ‘살아 있는 조선 청년’ ‘뜨거운 부산 정신’을 선포한 것이었다. 순국 100돌을 맞으면서 박재혁 의거와 그의 목숨 바침이 부산 정신사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11~12일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회장 이경재)를 비롯해 삼일동지회 부산시교육청 부산지방보훈청이 한데 뜻을 모아 여러 행사를 연다. 11일 오후 2시 성지곡 어린이대공원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가 열린다. 이날 오전 10시 40분 박 의사의 모교 개성고에서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특강에 나선다. 특강 후에는 개성고 교정에서 ‘단재 신채호 모과나무 기념 식수’ 행사가 열린다.

 

12일 오후 2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6층)에서는 박재혁 의사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열린다. 학술회의에서는 ‘의열단운동과 부산: 의열단 계통의 독립운동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김영범·대구대 명예교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의 의미와 효과’(이동언·선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의열단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최경숙·부산외대 명예교수), 3건의 주제발표가 있다. 토론자로는 이준설(의열기념관 학예사) 노상만(개성고역사관장) 최정혜(부산임시수도기념관장) 씨가 나선다. 학술회의는 코로나로 인해 50명 미만 사전 초청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박재혁 의사 추모·선양 순회전시회는 3월 8일 개막했으며 28일까지 부산 초·중등학교를 돌며 진행 중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