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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나무기행]기근에 백성 생명 지켜주고 성황목 추앙받은 노거수

평창 운교리 밤나무

 

 

#오래전부터 인류 구한 밤나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서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숲이 식량자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밤나무는 대표적인 과실나무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해 온 친근한 나무 중 하나다.

삼한시대 옛 무덤인 낙랑고분 및 경남 창원 다호리 가야고분에서 밤알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3∼4,000년 전부터 한반도 정착민들에게 중요한 먹거리로 자리하고 있었다.

북반구에 주로 분포하는 밤나무는 고려 예종 13년(1118년) 왕이 농경지를 제외하고 나무가 자랄 만한 곳에는 밤나무와 옻나무, 닥나무를 심으라는 명(命)을 전국에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의 법전『경국대전』에 밤나무 과수원 관리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속대전』에도 밤 생산을 많이 하는 백성에게는 부역 면제 등의 혜택을 줘 국가 차원에서 장려했던 유실수로도 유명하다. 예전부터 국가에서 직접 심는 것에서부터 생산까지 관리할 정도로 밤은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인식됐다.

#제사상 오르고 다산·부귀 상징

밤은 특히 조상을 모시는 제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과일이다. 밤알은 땅속에 심으면 껍질을 비집고 땅 위로 싹을 틔우는데 땅속 껍질은 오래도록 썩지 않는다. 밤은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근본을 잊지 않는 나무라고 여겼다. 옛사람들은 밤나무가 새로운 생명을 시작했어도 자신에게 생명을 준 어미를 잊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제사상에 모시고 있다.

또한 밤송이 안에는 보통 3개의 밤알이 들어 있는데 조상을 정성껏 모시고 학덕을 쌓아 3정승이 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근본을 잊지 않는다고 칭송을 받는 밤나무는 조상님 신줏단지나 사당의 위패를 만드는 자료로 이용됐다. 특히 개소리, 닭소리를 듣고 자란 나무는 효험이 없어 깊은 산속에서 자란 밤나무를 사용했다.

그 밖에 밤은 다산과 부귀를 상징한다.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면 부모님은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로 대추와 함께 신부에게 던져주는 풍습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초가 되면 밤꽃이 피어난다. 꿀을 생산하는 밀월식물로도 유명하지만 독특한 꽃향기로 여인들의 초여름밤을 달구기도 한다. 시큼한 냄새가 남자의 정액 냄새와 같아 양향(陽香)이라고도 불렀다. 예전에는 밤꽃이 한창 필 때는 아녀자들의 바깥출입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강릉 이율곡도 밤나무골 사람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대현 율곡 이이 선생은 밤나무골 사람이다. 율곡이란 호를 써서 자신이 태어난 곳을 알리고 있다. 과거 춘천도 밤 생산지로 이름을 알린 적이 있다. 지금은 공주가 주요 밤 생산지로 밤묵, 밤죽, 밤전 등 밤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과 막걸리가 생산돼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 최고령 밤나무 체계적 관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밤나무가 강원도 평창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49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는 이 나무는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36-2에 있다. 옛날에는 3~4가마의 밤을 수확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밤송이를 달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실을 내어주고 있다.

이곳은 과거 영서와 영동을 잇는 주요한 교통로로 밤나무 주변이 운교역창의 마방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만큼 성황목으로 이용돼 주민들에게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나무는 땅에서 약 1.5m 정도 높이에서 큰 가지가 세 갈래로 갈라져 옆으로 뻗어나가 남다른 풍치를 자랑하고 있다. 나무 높이는 16m, 가슴 높이 둘레가 6.5m 정도이며 가지는 동서 21m, 남북 26m로 뻗어 있다. 나무 주변에 데크를 설치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이용하다 보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보는 것은 물론이요. 지역민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이 즐겨 먹는 향토음식을 맛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옛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땅에서 현대인들이 과거와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빨리 가면 놓치는 것이 많다. 천천히 사는 습관은 여러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공감하게 만든다.

밤나무는 지금도 길가에 버티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옛 정취를 발산하고 있다.

김남덕사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