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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완주 삼례 비비정이 임실 비비정(?)

조선시대 완산팔경 명승지 ‘비비낙안(飛飛洛岸)’ 최적 조망지
동명인 정자, 전주최씨 집성촌 임실 성수면에 존재 ‘배경 관심’
철거된 삼례 비비정 100년 만에 복원, 편액 작가는 강암 송성용
1899년 임실 성수로 이건, 우암 송시열 비비정 편액·비비정기 보유
우암 선생 장비와 악비 뒷글자 따 비비정, 용기와 충효의 삶 기원

 

 

조선시대 완산팔경 명승지 중 하나인 ‘비비낙안(飛飛洛岸)’ 최적의 조망지인 삼례 비비정(飛飛亭)과 동명인 정자가 전주최씨 집성촌인 임실군 성수면 봉강리에도 존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만경강변 호산(湖山)에 자리잡은 비비정. 옛 동포귀범이 무색하게 만경강 수위가 크게 낮아졌고, 돛단배와 모래사장도 사라졌지만 해질녘이 되면 낙조가 장관이고, 기러기떼가 날아들라치면 여전히 비비낙안 절승지로 사랑받는 곳이다.

이런 역사적 명승지에 대한 아쉬움에 완주군은 지난 1998년 비비정이 사라진 지 100년 만에 복원, 관광자원화에 성공했다.

완주군은 비비정 안내 표지석에서 ‘조선 선조 6년(1573)에 창주첨사(昌洲僉使) 최영길에 의해 창건되었고, 그 후 영조 28년(1752)에 전라관찰사 서명구에 의해 중건되었다. 오랜 세월에 퇴락된 것을 19세기에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비비정 내부에 건 ‘비비정 복원기’에서는 ‘그 후 세월의 풍우와 세태의 변천에 따라 정자는 몇 차례 애환을 겪어야 했다. 구한말에는 자리도 보전하기 어려워 임실군 성수면 계월리로 옮겨진 바 있다. 군민들은 물론 이곳 승지를 찾은 시인묵객마다 빈터를 바라보며 애석히 여김이 컸었다.’고 복원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철거나 임실 이건에 대한 사연, 우암 송시열이 쓴 편액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밝히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다.

비비정을 창건한 최영길 첨절제사의 후손인 최낙기 우석대 평생교육원 교수는 “삼례 후정리 일원에서 살던 전주최씨 일가는 남원으로 이거했다가 임실군 성수면 계월촌으로 옮겨갔다. 송시열 비비정 편액과 비비정기를 토대로 1899년 비비정을 삼례에서 옮겨 건축했고, 1930년 현재 모습으로 중수했다”고 밝혔다.

또,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황경원은 저서 강한집에서 조선시대 삼례 토호들이 비비정을 철거하고 묘지로 조성한 사실을 안 전라관찰사 서명구가 크게 분노, 묘지를 없애고 현재 자리에 중건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며 “비비정과 관련된 대목은 조상의 묘비와 선비들의 저서에 두루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1790년 황경원은 강한집에서 비비정 편액과 비비정기를 1680년(숙종6년)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조선후기 신득구 문집 농산집 7권에도 비비정 중건기가 있다. 간재 전우 선생의 간재집 등에 1899년 비비정이 삼례에서 임실군 성수면 계월촌으로 이건된 뒤 1930년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최영길의 후손 최창열 유허비에는 최창열이 스승인 농산 신득구와 간재 전우에게 중건기와 이건기를 부탁한 내용이 있다.

최낙기 교수는 “현재 삼례 비비정 편액은 서예가 강암 송성용이 쓴 것이고, 애초 우암이 쓴 비비정 편액과 비비정기 원판은 현재 임실 비비정에 걸려 있다.”며 “우암은 용맹한 장비(張飛)와 충성스럽고 효성이 극진했던 악비(岳飛)의 뒷글자 비(飛)를 따서 비비정(飛飛亭)이라고 했는데, 이는 비비정에 오르는 사람들이 두 장군처럼 올바르게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호 jhkim@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