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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고창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전북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마한 소국의 중심지를 고고학적인 자료를 활용하여 추정해 보면 12개소에 달하며, 고창지역의 경우 3개의 중심지를 상정할 수 있다. 첫 번째 중심지(Ⅳ-1소국)는 해안가 지역에 인접한 해리면·상하면·심원면 일대로서 주요 유적은 왕촌리·자룡리의 분구묘와 두어리·하련리의 주거유적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중심지(Ⅳ-2소국)는 고창읍과 고수면 일대에 해당하는데, 봉덕리·만동·남산리의 분구묘와 석교리·부곡리·봉덕·남산리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주거유적 등이다. 그리고 세 번째 중심지(Ⅳ-3소국)는 대산면·성송면·공음면 일대로서 성남리·광대리의 분구묘 유적을 들 수 있다.

 

 

특히 고창읍과 고수면·아산면 일대의 Ⅳ-2소국은 반경 5km 이내에 마한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서 봉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자료를 보면,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대형 분구묘 축조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고창 봉덕리 1호분은 5세기 이후 등장하는 대형 고분으로 4호 석실에서는 금동신발, 중국제 청자호, 은제장식대도, 청동탁잔, 성시구 등이 출토되었고, 5호 석실에서는 금동신발편, 대금구 등이 출토되엇다. 이러한 유물로 볼 때, 봉덕리 일대의 마한세력은 백제의 영역화 이후에도 상당한 정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고창지역은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이 명칭을 이어받아 백제시대에는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 또는 모량현(毛良縣)으로 불렸다. Ⅳ-2소국 중심지 일대에서 마한문화유적을 축조하고 영위한 주체는 현재까지 확인된 고고학 자료로 볼 때, 바로 모로비리국의 중심세력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주변의 마한 소국연맹의 맹주국으로서 그 위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창 해안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Ⅳ-1소국의 자룡리 분구묘에서는 주구 내에서 시유도기(施釉陶器)와 다량의 유공광구소호가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왕촌리 분구묘에서는 나주 신촌리 9호분 출토 원통형토기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출토품이 주구 내에서 다수 확인되어 영산강유역과의 교류 및 연관성을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서해안에 인접한 점을 고려할 때 고창지역의 마한 소국은 해상을 기반으로 한 세력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고창 남쪽의 중심지(Ⅳ-3소국)는 전남 영광과 바로 연결되는 지형으로 고창 대산면을 중심으로 성남리, 광대리에서 다수의 분구묘 및 주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인접한 지점에 영광 군동 분구묘 유적도 위치하고 있어 Ⅳ-3소국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자료들을 볼 때, 고창지역의 마한문화는 영산강 유역과의 교류나 고대 한일간의 문화교류, 나아가서는 마한에서 백제로 변화하는 시기의 모습도 종합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기고 desk@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