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터줏대감 윤금순씨 손맛 가득 ‘콩탕'
원통서 직접 키운 ‘콩'이라 더욱 귀한 맛
손수 두들겨 요리한 더덕구이·황태구이
지역 특산물로 건강한 상 차림 ‘인제골'
한국식 두부의 정수 보여주는 인제 두부
매콤한 두부전골로 변신 ‘손가네손두부'
맛만큼 양도 어마어마한 철판짜장·짬뽕
군인들에게 특히 소문난 맛집 ‘일미반점'
소보로빵 800원 착한가격·오미자차 일품
어르신들이 無방부제 빵 굽는 ‘인제당'
오지라고? ‘하늘내린' 자연이 선물한 별미 천국!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예부터 인제는 오지로 인식됐다. 강원도의 교통요지였던 인제의 길이 날카로운 분단의 역사로 끊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제는 마치 수개월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최상의 맛을 내는 지역 특산품 ‘황태'와 같이 생명력 있는 극복의 이야기를 써 나간 고장이기도 하다. 분단과 오지의 이미지를 딛고 깨끗한 자연과 치유 도시의 대명사가 되어 가고 있는 인제의 음식에는 이런 생명력과 한반도 북쪽 ‘하늘내린' 자연이 선물한 축복이 가득하다.
# 윤금순씨의 콩탕=진짜 국산 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귀한 인제 시장의 맛이다. 한평생 이곳 인제전통시장에서 음식과 물건을 팔았다는 윤금순(78)씨가 직접 만든 콩탕 이야기다. 한입 떠 넣으면 녹진한 클로티드 크림을 한 번 더 졸여 넣은 듯한 부드러운 밀도가 혀를 휘감는다. 연이어 콩탕 안에서 부드러워진 배추와 무, 시래기가 식감을 자극하고, 목 뒤로 꿀떡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콩과 채소가 어우러져 아주 고소하고 부드러운 두유를 넘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비결은 원통에서 직접 농사지은 콩이라고. 정말 귀한 국산 콩탕의 맛을 보고 싶다면 대번에 추천이다. 5일장이 서는 날(끝 날짜 4·9일) 와야 하며, 이웃과 짝을 이뤄 같은 파라솔 아래 팔고 있는 비지도 일품이다.
# 인제골=인제 특산물로 한 상 건강하게 먹고 싶은 곳을 물어보면 다들 이곳을 가리킨다. 인제 더덕을 직접 두들겨 만든 더덕구이는 매콤달콤한 소스와 어우러져 입맛을 잔뜩 돋운다. 용대리 황태덕장에서 매서운 추위에 얼고 따스한 햇볕에 녹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황태구이는 쫄깃하고, 밥 위에 얹어 먹으면 어느새 밥이 모두 사라져 있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맛이다. 새우장과 떡갈비, 두부와 각종 전에서도 주방장의 내공이 느껴진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수민 대표의 어머니가 20여년 전 몸이 좋지 않아 인제에 온 이후 강원도가 좋아 눌러앉게 됐고, 식당을 시작하게 됐다고. 그래서인지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은 것으로 본다는 주방장의 마음을 음식으로 읽을 수 있다.
# 손가네손두부=한입 떠 넣으면 부드러운 식감과 동시에 코끝에서 고소한 콩의 향이 솔솔 풍긴다. 조개를 삶아 끓인 국물에 매콤하게 푼 양념이 인제식 두부와 찰떡궁합이다. 인제는 한국 두부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지역이다. 이미 인제 콩이 2011년부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지리적표시 농산물로 등록됐고,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던 지역의 일교차와 천혜의 기후 조건이 콩의 맛과 영양을 한껏 배가한다. 두부는 한중일 3국에서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지만, 인제식 두부는 한국식 두부의 정수를 보여주는 맛이다. 일본식 두부에 비해 단단하지만 성숙한 고소함, 중국 두부에 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맛이 강원 영서지역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듯하다. 매콤한 두부전골과 시원하게 어우러지는 김치, 고소함의 또 다른 정점을 터트리는 무나물과 먹으면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 일미반점=소화 잘되는 메밀면에 부추, 새우, 양파, 파 등 각종 재료가 듬뿍 올라가 있다. 해물은 부드러운 메밀면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톡톡 터지고, 고소한 맛과 쫄깃한 맛이 번갈아 등장하며 맛과 식감을 채운다. 따끈따끈한 짜장을 모두 먹고 밥까지 볶아 김치를 한입 얹어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일미반점 대표메뉴 철판짜장은 음식을 끝까지 따뜻하게 먹었으면 하는 함태훈(55) 대표의 바람에서 탄생했다. 일반 중국집처럼 다양한 메뉴에 철판짜장과 철판짬뽕을 추가했다. 철판짜장은 양이 어마어마해서 “저희가 ‘소(小)'자를 시킨 게 맞나요?”되묻게 될 정도다. 그 맛과 양에 군인들도 격하게 좋아한다고 소문난 집. 고향에 돌아와 2002년부터 식당을 시작했다는 함 대표는 맛있는 음식을 나눌 때 행복하다며 인근 부대와 복지시설로 봉사도 자주 다닌다고 해 마음까지 배불러진다.
# 베이커리 인제당=자그마한 시골빵집에 찾아오는 이가 있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보로빵이 800원 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엇보다 맛이 좋아 소문이 났다.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지역 어르신들의 소득, 일자리를 지원하는 이곳은 어르신들이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빵을 만들고 음료도 판다. 널리 알려진 맛에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았을 때도 언제 다시 문을 여느냐는 문의가 폭주한 지역 맛집이 됐다. 고소한 콩가루가 묻은 인절미빵을 한입 베어 물면 담뿍 담긴 크림과 팥이 입안을 휘감아 웃음이 난다. 귀여운 고구마 모양 빵 속에는 고구마, 치즈가 두둑해 속을 든든히 채운다. 인제 오미자로 만든 차는 달고 시고 맵고 쓰고 짠 다섯 가지 맛에 건강까지 얻는 기분이고 어르신들이 직접 쑨 팥죽은 맛이 조화로워 자꾸만 손이 간다.
인제=이현정·박서화기자 / 편집 이상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