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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통일신라시대 숟가락이 가장 많이 출토된 곳은?

20년 가까이 숟가락 연구 정의도 원장 ‘숟가락 연구 2’
조선시대 숟가락과 묻힌 사람들의 주 신분은 중인층
우리가 잘 몰랐던 숟가락 관련 궁금증도 풀어줘

 

이제는 ‘원장’이란 호칭 대신 ‘숟가락 연구가’란 별칭이 더 자연스럽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숟가락 연구를 시작했으니, 20년 가까이 됐다. 그래서일까. 숟가락 연구가란 말이 자신의 열정을 남들이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재)한국문물연구원 정의도 원장에 관한 얘기다.

 

오랫동안 숟가락 연구에 몰두해 온 그가 최근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 2>(경인문화사, 2만 7000원)를 펴냈다. 2014년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 이후 만 6년 만이다. 이번 책은 그때 연구가 더 필요해 다루지 못했거나 새롭게 발견한 내용을 담았다. 책의 요지는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숟가락이 본격적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것은 고려 시대 이후다. 숟가락은 11세기를 지나면서 고려의 무덤에서 부장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이는 고려말까지 이어진다. 숟가락은 11세기 고려 시대를 지나면서 부장품에 청동합이나 청자대접 같은 식도구와 함께 부장됐다.

 

통일신라 시대 출토된 숟가락 중에는 무덤만이 아니고 산에서 제사 지낼 때나 월지(안압지), 집수지나 우물에서도 나왔다. 이중 숟가락이 가장 많이 출토된 곳은 경주 월지다. 이곳에선 모두 26점이 출토되었는데 숟가락 술 잎이 타원형, 원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가늘고 긴 자루가 부가된 것이 특징이다. 한데 이곳에서 출토된 숟가락과 일본 나라 쇼소인(正倉院)의 숟가락 모양이 동일한 양식이다. 정 원장은 “신라에서 일본으로 숟가락이 수출됐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 정부가 신라 물품 중 구입하길 원하는 품목을 기록해 담당 관청에 제출한 문서인 <매신라물해>가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엔 ‘백동시 2구’(백동으로 만든 수저 2벌)라고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동으로 만든 숟가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뭘까? 이런 궁금증도 풀어준다.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3점의 숟가락이다. 이때 2벌의 젓가락도 함께 발견됐다. 청동 수저 2벌은 무령왕과 왕비의 관대 앞에 놓여 있었다. 나머지 숟가락 1벌은 왕비의 두침(머리에 괴는 물건) 부근에서 은장도자(銀裝刀子)와 함께 출토됐다.

 

 

조선 시대 전기까지 숟가락은 웬만한 무덤에서 대부분 출토된다. 그렇다면 그 숟가락과 함께 묻힌 사람들의 신분은 주로 어떤 계급이었을까? 흔히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가장 많이 묻혔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정답은 중인층이다.

 

책은 숟가락의 짝꿍과 같은 존재인 젓가락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조선 시대 분묘에서는 젓가락이 늘 숟가락과 함께 출토되지 않는 이유와 우리가 언제부터 젓가락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고고학 자료를 통해 하나씩 풀어간다.

 

지금도 저자의 숟가락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정 원장은 당분간 숟가락 연구를 계속할 거라 말했다. “숟가락은 우리에게 매우 흔한 물건이고, 또 일상적인 물건이다. 지금은 한·중·일 3국 중 우리가 숟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정작 여기에 대한 연구는 미약하다. 김치 담그는 게 우리 전통문화이듯이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