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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 나무 기행]스승 운곡<원천석> 선생 향한 태종<조선 이방원>의 애타는 기다림 지켜본 소나무들

횡성 태종대 숲

 

 

태종이 머물다 돌아간 바위 '태종대'라 불러
주변에 개복숭아·물푸레·낙엽송 등 서 있어
태종대 농수로 옆으로 치악산 둘레길 설치
총 3코스 자연과 교감하는 도보여행길 인기


우리 사회는 어느 한편에 속하는 걸 강요한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은 당파를 기반으로 했고 신분은 후손에게 대물림됐을 뿐만 아니라 양반은 무반과 문반으로, 사대부는 적통과 서자를 구별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과 반일, 해방된 조국은 반탁과 친탁, 그리고 이념은 남과 북 그리고 좌와 우를 강제했다. 그리고 민의의 실현 현장인 선거는 여당과 야당 선택을 해야 했다. 어느 한편으로 속하지 않는 경계는 양쪽으로부터의 공격과 압력이 집중돼 힘든 삶을 예고한다. 개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 또 사회는 일방통행을 강제하지 않으며 누구나 여러 방향의 길을 고를 수 있다. 인생의 길에서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가. 누군가가 어느 곳도 속하지 않고 '복판'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가를 알 수 있다.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은 조선 태종인 이방원의 스승으로 고려와 조선의 경계에 살다 간 인물이다. 운곡은 태조 이성계가 피로 살육하며 고려를 전복시키고 조선을 세우고 그의 아들들이 왕권 다툼을 벌이자 관직을 버리고 강림리에 은거했다. 고려의 충신 운곡은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한을 삭히며 누졸재(陋拙齋)라는 집을 짓고 숨어 지냈다. 누추하고 소박한 집에 살면서 망국 신하의 한을 안고 살았다.

태종은 왕위에 오른 뒤 옛 스승을 만나기 위해 태종대(횡성군 강림면 강림2리 2116)를 찾았다. 주변의 인재를 찾던 중 은사에게 관직을 내리고 정사를 의논하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운곡은 이 만남을 원하지 않았다. 태종이 이곳에서 빨래하는 노파에게 운곡의 거처를 물었으나 노파는 운곡이 일러준 대로 거짓으로 알려줬다. 끝내 스승을 찾지 못한 태종은 바위 위에서 스승을 기다리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이곳의 이름은 주필대라 불렸다. 주필이란 임금이 거동할 때 잠시 머무르거나 묵고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 태종대라 부르고 비석과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비각 아래 암벽에는 태종대라는 한자가 깊이 새겨져 있다.

운곡과 관련된 지명은 노구소마을, 횡지암(橫指岩), 변암(弁岩) 등이 남아 있다.

현재의 비각은 지난 1984년 해체 복원했다. 주필대 비석은 원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3m가량 옮겨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비각 주변엔 20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왕의 기다림에 동참하고 있다. 비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옆엔 사나운 날씨로 만난 진달래꽃이 안쓰럽게 자리 잡고 있다. 개동백, 밭배, 개복숭아, 말발도리, 신나무, 물푸레, 낙엽송 등이 태종대 주변을 나와 같이 맴돌고 있다.

태종대 암각 앞으로 농사에 이용할 수로가 지나간다. 상류 계곡에서부터 내려온 생명수는 마을 벼를 키워냈다. 조상들은 '한일자동펌프'가 나오기 전 시대에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농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수로는 농업유산의 하나다.

농수로 옆으로 산책로가 개설돼 있다. 치악산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치악산둘레길이다. 둘레길은 총 3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1코스(11.2㎞) 꽃밭머리길(국형사~제일참숯), 2코스(7㎞) 구룡길(제일참숯~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3코스(14.9㎞) 수레너미길(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횡성 태종대) 구간으로 가장 긴 코스로 자연과 교감하는 도보여행길이다. 태종의 기다림을 잊은 채 무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길이다.

사진·글=김남덕사진부장 kim67@kwnews.co.kr